관찰자의 시선

스물여덟 어떤 흐린 날 카페에서의 사색

by 연수

오늘은 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이다.

평소라면 '공휴일'이라는 명칭에 더 마음이 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공휴일'보다 '부처님 오신 날'에 더 주목하게 된다.

얼마 전 제니의 새 음원 <ZEN>의 뮤직비디오 해석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된 뒤로, 불교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지난 내 몇 달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법륜 스님의 <<인간 붓다>>,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 등을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관련 서적을 찾아볼수록 호기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참선'이 뭐지?

왜 언어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걸까?

부처는 내 안에 있다면서 왜 스님들은 단체 생활을 하는 걸까?

절에서 생활하는 스님들은 내가 볼 수 없는, 혹은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걸까?

결국 절 안에서 무언가를 쓸고 닦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며 살아가는 그들이 나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책에서 찾기란 어려웠다.

그래서 직접 관찰해보고 싶었다.

그들은 어떤 표정으로 어떤 공간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 사람들일까?


마침내 관찰의 기회가 찾아왔다.

석가탄신일을 기념하여 집 근처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봉녕사에서 큰 행사를 한다고 했다.

내 남자친구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종종 절밥을 먹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절에 가본 적이 없었다.

두려운 마음에 남자친구를 앞세워 형형색색 드리워진 연등길을 지나 조심스럽게 절에 입장해 보았다.

들어서자마자 우선 엄청난 규모의 사람들에 놀랐고, 귀에 때려 박는 영험한 노랫소리에 두 번 놀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기대했던 대로 스님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기는 어려웠다.

스님들의 생활공간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고, 대신 절을 올리거나 부처님 목욕 행사 등에 참여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가끔씩 특정 행사를 주관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들었던 대로 온화한 표정을 머금고 있었다.


문득 이들은 지금 이 순간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이들에게 그저 잠시 머물렀다 가는 관찰자에 불과하다.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행동 양식이 모두 새롭게 느껴지고 아주 작은 현상에 대해서도 '저건 왜 저리 있을까', '저런 행동은 왜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을 품고 지켜본다.

하지만 막상 그 속에 동화되어 있는 관찰 대상들은 그저 이 모든 게 익숙할 것 같다.

매년 찾아오는 행사에 이미 정해진 절차에 따라 능숙하게 행사 준비를 진행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관찰자로서의 나 말고, 관찰 대상으로서의 나는 어떨까?

스님들이 매일 절에서의 업무를 보고 참선 수행을 하듯, 나는 매일 연구실에서 업무도 보고 연구 주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기도 한다.

관찰 대상의 입장에서 지겹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한 이 공간이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내가 절이라는 공간에 들어섰을 때처럼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의 흐름으로 나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의 간극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와 '타인'은 상호작용을 통해 관찰자이거나 관찰 대상이 된다.

내가 타인을 관찰하면 내가 관찰자이고 타인은 관찰 대상으로 존재하게 된다.

타인이 나를 관찰하면 타인이 관찰자이고 내가 관찰 대상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를 관찰하고 있지 않으면 나는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

'나'도 나를 관찰할 수 있다.

'나'는 관찰자이면서 동시에 관찰 대상일 수 있다.

내가 나를 관찰하는 관찰자가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앞서 나는 관찰자의 입장에 서게 되면 그 대상의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지고 작은 현상에도 의문을 품게 된다고 했다.

내가 나의 관찰자가 되면, 내가 관찰 대상으로서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부분을 발견하거나 어떤 세부적인 것에 의문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테오도르 준 박은 <<참선>>이라는 책에서 이런 현상을 가리켜 '화두(話頭)'를 던져서 '대의심(大疑心)'을 일으킨다고 표현했다.

줄곧 '화두법(話頭法)'이란 뭘까 마음속에 품고 지내 왔었는데,

부처님 오신 날 절의 풍경을 관찰하다가 문득 이 화두법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즉, 내 안의 방향으로 관찰자의 시선을 갖도록 촉구하는 것이 화두(話頭)의 핵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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