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 실패, 10년 차 기간제교사의 인생 낙찰기(1)

수학은 정답이 있지만 삶에는 해설지가 없었다.

제1장: 항등식의 착각: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공식






2008년 지방대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입학했다. 졸업하면 교사가 되는 줄 알았다. 그것도 잠시, 전국에서 모여든 동기들과 떠들썩하게 모여 술도 먹고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교원임용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선배들을 보며 나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2학년이 되니 전공이 늘어났다. 점차 정답을 찾아가는 것에 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극한(lim)이라는 것이 점점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준 이상부터는 떨어져 있어도 같은 것으로 본다고? 고등학교 때 배웠던 수학과는 사고체계가 달랐다. 그래도 재밌었다. '수학자들 똑똑해~'라고 생각하면서. 3학년이 됐고 전공은 더 늘어났다. 위상수학, 대수학, 미분기하학.. 수학의 세상은 정말 컸다. 아니! 컵 하고 도넛하고 동형이라니요.. 아니! 1+2와 2+1이 다른 세계가 있다니요.. 아니! 점이면 점이지 점을 확대하면 점이 아니라니요.. 하나하나 개념을 쌓아가면서 이해하고, 문제 풀고, 외우기를 반복했다. 4학년이 됐다. 기대되던 교생실습도 즐거웠고, 교생 대표로 연구수업도 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시험 통과를 위한 공부. 친구와 스터디도 하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고등학생이 야자 하듯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문제를 풀었는데 틀렸다는 건 내가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아서였다. 정답은 항상 존재했다. 문제에서 원하는 바로 그 정답을 찾아내야 했다. 학교에서 봤었던 졸업시험은 임용 시험처럼 출제됐었고, 졸업시험은 원만하게 통과했다. 오예~ 교수님들도 칭찬해 주셨다. 그리고 그해 겨울 첫 번째 임용은 떨어졌다. 선배들이 해주는 이야기로는 초수가 붙기는 어려워~ 이제 봄날의 교생도 없고,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도 없고, 공부에 집중해 보라는 이야기에 그래!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사이 공부해 보겠다는 내 소식을 접한 교수님이 대학원 다니면서 학부생들 시험지 채점도 하고, 연구비도 받으면서 공부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부모님도 흔쾌히 해보라고 하셨다.



대학원생이 됐다. 달라진 것은 5학년이 된 나였고, 똑같이 공부했다. 정답이 무엇인가? 수학에는 항상 정답이 있었다. 다른 답이 나온다는 것은 풀이 과정 어딘가가 틀렸다는 것이다. 만약 정답이 있다고 해도 풀이 과정이 틀린 상태에서는 정답으로 인정이 되지 않았다. 정답을 찾아 헤매던 나의 대학원 시절, 아주 치열했다. 또 해외 논문 한 줄 한 줄 번역하고 정리하며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적용도 시켜보면서 석사 논문을 완성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서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었지만, 교수님 마음에 맞는 정답을 찾기 위한 논문 작성도 끝냈고, 이학석사 수학교육 전공자로 대학원을 졸업했다. 석사 가운을 입고 웃으며 찍은 사진 속의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정답이 있는 학문을 이토록 치열하게 파고들었으니, 내 인생의 정답인 '임용 합격'도 이제 계산기만 두드리면 나올 순서라고. 내 삶도 그렇게 정교하게 계산해서 답을 찾아나가면 정답에 도달할 것 같았다. 하지만 수학처럼 명쾌한 논리로 흐르지 않는다는 그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ep1. 극한을 배우며 기준치 안에만 들어오면 같다고 간주하는 개념이 신기했다. 하지만 나의 임용 성적은 그 합격이라는 기준치 안에 단 한 번도 '수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