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 실패, 10년 차 기간제교사의 인생 낙찰기(2)

수학은 정답이 있지만 삶에는 해설지가 없었다.

제2장: 공집합의 시간: 갈가리 찢긴 수험표






처음 몇 번의 겨울은 내년을 기약하자는 마음으로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몇 번의 겨울을 더 지나고 나서는 내게 능력이 없다고 느껴졌다. 수능 수학에서는 1등급 맞았었던 나였고, 국가장학금(대학 입학 당시 수학과 과학 등급이 높으면 장학금을 주는 제도가 있었다.)도 4년 내내 받았었던 나였다. 이 점수가 맞는지 싶기도 하고, 시험 채점 기준도 비공개로 하는 이 시험이 과연 공정한가 싶기도 했다.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기 싫었다. 분명 열심히 했는데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나이는 점점 많아졌다. 나보다 못했던 동기들도 하나둘, 후배들의 합격 소리도 듣게 됐다. 이대로 가다가는 30살이 되어서까지 취직도 못 하는 신세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사범대가 아니었다면 취직 준비라도 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사립학교 임용 시험에 최종까지 여러 번 갔었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말았다. 27살 때, OO고등학교 최종 면접 당시 '아버지 직업이 국회의원이냐?'라고 물어봤다. 너무 어렸던 나는 '아니요!'라고 이야기하고 나와서 엄마에게 이런 걸 물어보더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며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었다.



다시 임용 공부를 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졌다. 임용 합격을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하지만 또 이 실패의 상처를 받기 싫었다. 상처에 상처가 또 덧나 아물지 않은 상처에 또 베이고 또 베여서 도망쳤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고, 마음으로도 입 밖으로도 "후회 없어! 난 최선을 다했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텅 빈 공집합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입 밖으로는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 없다'라고 씩씩하게 뱉어냈지만, 내 마음의 연산 결과는 늘 오류를 뱉어내고 있었다. 임용이라는 닫힌구간에서 탈출했지만, 내 안의 공집합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채 시린 겨울 칼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선생님'이라는 꿈을 오답 처리한 채, 생존을 위한 다음 차수로 넘어갔다.




ep2. 장학금 4년, 수능 1등급, 이학석사라는 화려한 원소들이 내 집합 안에 가득했지만, 원소가 하나도 없는 공집합처럼 '임용 합격'이라는 단 하나의 원소가 없어 내 인생 전체가 공집합처럼 느껴졌다.


ep3. 수학은 공정했는데, 현실의 고차방정식은 부정부패라는 변수를 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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