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정답이 있지만, 삶에는 해설지가 없었다.
경력 없는 상태로 대도시에서 기간제 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처음엔 기초 튼튼 인턴교사, 교과교실제강사, 시간제기간제로 경력을 쌓았다. 상처에도 불구하고 난 참 긍정적이었다. 엄마한테 '이렇게 밑에서부터 굴러야 잔뼈가 굵어지겠지?'라고 말했었다. 이렇게 3년이 지나고 반 학기 짜리 기간제 자리에서 학생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것도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한다고 했던 사람이 못 가르치겠다고 도망가는 바람에. 그리고 반년은 또 놀았고, 우연히 한 사립학교 기간제로 들어가 4년을 일할 수 있었다. 비어 있던 자리였고, 같은 수학 과목 부장님들이 세 분이나 계셨는데 아버지뻘로 모두 예뻐해 주셨던 덕분이었다. 지금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4년까지 연장이 끝나면 다시 공고를 통해서 계약해야 하는데 서류에서부터 탈락하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았던 모양이다. 면접 위원이었던 한 부장님이 서류 안 냈었냐고 전화가 왔었으니 말이다.
처음에 서른 군데 넣어서 한 곳에서 면접 보러 오라고 했다면, 이제는 기간제 원서 서류를 한 열 군데 넣으면 서너 군데에서 면접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다행히 어딘가 한 군데 붙으면 또 1년을 열심히 다녔고, 해마다 반복했다. 우연히 인력풀에 등록해 놓은 것을 보고 연락이 오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인력풀로 채용된 것은 딱 한 번이었다.
매년 이렇게라도 일자리를 구하면 다음 해 밥벌이를 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일자리를 구하기까지는 겨울방학이 그냥 '겨울'이다. 마음에 살얼음이 껴서 초조한 상태로 보내게 되는 불안한 변수다. 그럼에도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학생들이 '선생님 내년에 저희 학년 하세요?' 아니면 '내년에 저희 반 담임해 주세요'라고 할 때다. 이럴 때마다 움찔하는 것은 고쳐지지가 않는다. '내년에 선생님 없어, 선생님은 계약직이라 마지막이야'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냥 '아직 몰라~ 너희들 말 안 들어서 좀 쉬어야겠어'라는 말로 대신했었다. '정교사'라는 참값에 도달하지 못하고, 늘 언저리를 맴도는 '근삿값'이었다. 이렇게 1년짜리 인생으로 겨우겨우 연명하며 이어져 오는 내 목숨에 피가 마를 것 같았지만, 3월이면 새싹처럼 내 마음에도 새싹이 돋아났다.
ep4. 오** 부장님, 이** 부장님, 최** 부장님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은데 제가 떳떳하지 못한 것 같아 주저하는 마음이 더 컸어요. 예쁘게 봐주시고,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세 분께 정말 많은 가르침 배웠습니다. 찾아뵙고 인사드릴게요!
ep5. 수학에서 0.999... 와 1은 같다. 수학에서는 같은데 현실에선 아니다. 도달하지 못한 채로 1인 척하면서 아이들의 '내년' 이야기에 그토록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관계의 단절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너희들을 만나서 좋았고 행복했어. 너희들과 연속함수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 누구에게도 점점 마음을 열지 않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ep6. 기간제라고 0점짜리 인생은 아니야! 돈으로 나를 증명해 보이겠어. 다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어떻게든 돈 벌면 되는 거잖아! 대통령도 재벌들 앞에서는 도와달라고 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