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을 떠나 데이터의 바다로
어젯밤 퇴근길, 나는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서야 깨달았다. 방금 30분 동안 어떤 길을 지나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을.
네비가 그린 파란 선. 그 선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돌렸을 뿐이다.
어느 거리를 지났는지, 신호등이 몇 개였는지, 창밖 풍경이 어땠는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된다. 네비는 망설임도 없이 최적의 경로를 계산해 낸다.
실시간 교통정보, 과속단속 카메라, 예상 도착시간까지. 완벽하다.
그래서 우리는 묻지 않는다.
이 길이 정말 '나에게' 최적인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던 목적지인지.
고등학교 3학년,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중환자실 유리문 너머로 어머니가 보였다. 온몸에 연결된 튜브들. 규칙적으로 울리는 기계음. 의사가 설명했다. "쇼크 상태입니다. 혈압을 올리는 약을 투여했고..."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유리문 안쪽에선 의사, 간호사, 약사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는? 그저 유리문 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력감이 나를 약학으로 이끌었다.
미국 약대 입학, 대학병원 취직, 중환자실 약사.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만 보며 걸었다. 지겹도록 반복된 시험들, 떨리던 발표들, 수십 차례의 압박 면접을 지나 마침내 나는 대학병원 약사 레지던트로서 첫 발을 디뎠다.
이제 나는 유리문 안쪽에 있었다.
삐익, 삐익, 삐익.
호출기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트라우마 응급호출. 이미 10시간째 근무 중이었다.
15살도 채 안 된 환자. 자살 시도로 머리에 총을 맞았다. 베테랑 간호사들도 정맥 확보에 실패했다.
의사 한 명이 뼈에 직접 바늘을 삽입했다.
날카로운 목소리.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나는 핸드폰에 저장된 응급 노트를 뒤적거렸다. 정답이 없다. 글자가 흐릿하게 보였다.
순간 선배의 조언이 떠올랐다. "You can't make them more dead." 최악의 상황에선 모든 걸 쏟아부으라는 말이었다.
"네! 주입하세요."
환자의 맥박은 희미하게나마 안정화됐고, 내 다리의 힘은 풀렸다.
뭔가를 해냈다는 느낌보다, 다시는 이런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대체 나는 뭘 증명하려고 이러는 거지?'
목표지향적인 사람들은 목표를 찾는 걸 좋아한다. 삶의 의미이자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에너지가 다 떨어져 가니 비로소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왜 중환자실 약사가 되고 싶은지 생각이 들었다.
난 별로 이타적이지 못한 사람이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었던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계셨을 때 무력감을 느꼈다는 것. 또 하나는 중환자실 약사 자리는 희소하고 경쟁이 치열해서, 가장 뛰어난 레지던트들만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
내가 좇아온 이 목표는 과연 내 간절한 꿈이었을까, 아니면 남들이 원하고 쉽게 얻지 못하는 '한정판 운동화' 같은 꿈을 따라 한 것일까?
어느새 소명감보단 성취욕이 점점 커져 있었다. 난 내 역량을 보여주는 걸 좋아하고 돈을 많이 벌고 싶고, 내 성장에 비중을 많이 두고 싶은 사람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레지던트 2년 차를 하지 않고 일반 약사로 일하면서 돈이나 벌자라는 생각이 들 때쯤, 우연히 병원 IT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에 익숙했던 내게 IT는 두려움이 없는 영역이었다.
일을 할수록 숨겨진 DNA가 깨어나는 듯한 기묘한 흥분을 느꼈다.
무엇보다 난 타인에 비해 이쪽으로 재능이 있었고 미래지향적인 나에게 흥미 면에서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남들과 경쟁하며 끼이며 어떻게든 통과하려던 길에서 벗어나, 나는 전국에 10개 남짓 존재하는 희소한 IT 레지던시라는 새로운 경로를 발견했다.
망설임 없이 2년 차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남들을 따라가던 길에서 이탈하여 뜻밖에 발견한 새로운 나.
바로 이 순간, 나는 깨달았다.
가장 빠른 길은 모두가 가는 길이 아니라, 나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이 선택은 내 커리어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IT 레지던시를 마치고 나자 약사 업계에서 보기 드문 포지션이 열렸다. 자택근무가 가능했고, 원하는 곳에서 빠르게 취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희귀성 덕분에 다른 약사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발상의 진짜 힘은 그 이후에 나타났다.
나는 이 경험을 투자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2020년 팬데믹 초기, 모두가 주식시장에서 도망칠 때 나는 본질을 봤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있었지만, 정부의 전례 없는 유동성 공급과 기술주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견고했다. 대중이 패닉셀을 하는 동안 나는 테크 기업들을 사 모았다.
역발상에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 단순히 다르기 위해 다른 것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르게 선택하되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월가의 유명한 투자자인 하워드 막스는 이렇게 말했다. "투자자의 성과는 대중의 의견과는 다르면서도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서 나와야 한다. 단순히 남들과 다르기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올바른 역발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역발상을 평가하는 기준을 **'본질'**로 정했다.
중환자실 약사가 되려던 당시 내가 놓친 본질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싶은가?"였다. IT 레지던시를 선택할 때의 본질은 "내 강점은 무엇이고, 미래에 가치 있는 스킬은 무엇인가?"였다. 투자에서의 본질은 "공포는 일시적이지만, 경제 시스템과 기업의 가치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가?"였다.
감정적인 개인들이 뭉쳐 대중을 만들고, 대중이 만들어지면 공감대로 무장해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때 역발상가는 그 이슈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대중의 선택과 타이밍이 적절한 것인지 파악한 후 상황에 따라 대중과 반대로 행동하게 된다.
대중이 몰리면 레드오션이 만들어지고, 그것과 반대로 행동한 역발상가는 자연스럽게 블루오션에 위치한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지금 따르는 그 파란 선은, 네비가 정해준 최단거리는, 정말 당신의 목적지로 가고 있는가?
앞으로 쓸 이야기는 완성된 답이 아니라, 여전히 쓰이고 있는 일지에 가깝다.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제의 역발상이 오늘의 정답이 되고, 오늘의 정답이 내일의 함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역발상가는 항상 배우고 관찰하고 때로는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때로는 틀린 선택을 하고, 그 안에서 배운다.
이 글은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공식이 아니다. 다만 내가 길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순간들, 대중과 반대로 걸었을 때 느낀 외로움과 확신,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한 결과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혹시 당신도 지금 네비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면서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지 않은가?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나만 멈춰 서 있는 것 같아 불안하진 않은가?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대중이 달려가는 그 길 옆에, 당신만의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동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