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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verselow Apr 02. 2022

어느 20학번의 만우절


  대학교에서는 매년 만우절에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여러 행사가 열린다. 어제 인스타를 보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매년 만우절은 나에겐 좀 울적한 날이 될 것 같다는 생각.


  세상에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는데, 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구체적인 삶의 목표로 잡고 살아가는 것들은 (현실적이기만 하다면)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약간의—어떤 경우에는 상당히 큰—행운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 목표 자체가 아닌,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곁가지들이야말로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때 야자시간에 죽어라 공부하다가 창밖을 봤는데 저녁노을이 너무 예뻤다던가,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갔는데 너무 재밌었다던가 하는 것들. 시점이 고등학교에 멈춰 있다는 점은 양해를 부탁한다. 대학교에서는 2년간의 비대면 수업 덕분에 그런 걸 딱히 경험해본 적이 없다 보니 그렇다.


  왜 그것들이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인가 하면,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어서 그렇다. 나는 죽을 때까지 수만 번의 저녁노을을 보겠지만, 그 저녁노을들이 과연 고등학교 1학년 초여름 어느 저녁에 선선한 바람이 불길래 창밖을 봤더니 강렬하게 비치고 있던 그 저녁노을과 같은 느낌을 줄 것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30살의 내가 사무실 창밖으로 본 저녁노을이 그때 그 저녁노을보다 시각적으로 더 예쁠 수는 있겠지만, 인생은 2D가 아니라 4DX다. 그때 그 느낌과 냄새와 소리와 그걸 보고 했던 생각들은 절대 똑같이 재현되지 않는다. 스무 살 때 엄마가 나에게 옷을 사주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네 나이에만 입을 수 있는 옷들이 있는데, 그때 못 입거나 안 입으면 나이가 들어서 아쉽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지금 즐기라고. 나는 옷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그 말을 흘려 들었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옷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에서 만들어나가는 추억 자체에 관한 얘기였지 싶다.


  그렇다고 내가 대학생활에 대한 추억이 아예 없느냐 하고 물으면, 사실 그렇지는 않다. 친구들과 학식도 먹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가고, 연애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했다. 아예 학교를 떠나서 사회로 나가면 그런 것들도 나름 소중하게 느껴질 테다. 하지만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기 때문에 나는 만우절, 더 넓은 범위에서는 새내기 때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추억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내가 노력해도 절대 얻을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나보면 별 거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말은 그걸 겪어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어쩌면 나도 그냥 교복을 입고 잔디밭에 앉아 술을 마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대학에 입학해서 모든 게 처음인 파릇파릇한 스무 살과 새내기 때 기분을 내 보려고 노력하는 3학년이 같을 수는 없다. 본인이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고 즐기면 그만이긴 하겠지만.


  사실 새내기 때의 즐거운 추억이 없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더 이상 그렇게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진로를 위해 졸업 계획을 꽤나 타이트하게 짜 뒀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조금만 원래 계획에서 벗어나도 내가 구상해둔 모든 것들이 약간씩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는 물론이고 심적 여유도 없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도 이제 고학번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것 같다. 대학생활의 이런저런 추억이 없는 게 아쉽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내가 지금 고작 이런 생각을 할 땐가? 하고 묻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너무 싫다. 위아래 학번들이 다 느껴본 대학생활의 즐거움은 별로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인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시기가 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모든  누군가를 탓할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지난 2년을 거치며 이미 받아들인  오래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아마 며칠이 지나면 깨끗이 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일들을 미뤄가며 오랜만에 이런 글을 길게  이유는, 그냥  번쯤은 억울하다고 어딘가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재무학회 세미나 뒤풀이가 끝난 뒤에 막차를 타고 집에 오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때도 지금 놀아도 되는 건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면서 노는데 그런 계산을 하지 않고 그냥 놀고 싶은 대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택이긴 하지만 진로 계획 때문에 취미 동아리 활동도 제대로  해본  대학생활은  일을 하느라 밤을 새기만 하다가  끝나버리게 생겼는데 노느라 밤을 새면 얼마나 즐거울까,  그런 생각들. 푸념에 가까운, 찌질한 생각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글로 남기는 이유는, 흘러간 나의 새내기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생각도 휘발되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그렇다. 요즘 들어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앞으로 일기라도 써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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