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대표와 잠 못 드는 COO

몽상가 CEO와 현실주의자 COO가 만드는 보완의 미학

by 글쓰는 COO

11년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면서, 나는 '내 사업'을 꿈꾸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배우고 싶은 것들이 차고 넘쳤고 큰 기관의 무거움에 지치기도 했다.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는 '1인 기업 운영'이라는 목표가 생겼고, 홀로서기를 위한 준비를 해가던 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대표님을 만났다.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스타트업의 COO로 합류를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스타트업의 세계를 직접 경험하며 단단해지는 것이 더 빠른 지름길이라 믿었다.


커다란 조직의 일개 '과장'이었던 나에게, 'COO'라는 직책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무게의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이 조직에서 내 역할은 뭐지? 뭘 더 해야 하는 걸까?'

다양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조직이 작을수록 개인의 역량은 실시간으로, 아주 투명하게 날 수밖에 없기에. COO로서 나의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공공기관 재직 시절보다 훨씬 치열해졌고, 문득문득 피어오르는 막막함에 이른 새벽에 눈을 뜨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중심을 잡아나갈 수 있었던 건 역설적이게도 나와는 너무나 다른 '대표님과의 케미' 덕분이었다.



1. INTJ 전략가와 ESFJ 실행가의 상관관계


합류 초기에는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는 목표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대표님의 모습이 생소했다.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나에게 그 모습은 '꿈꾸는 몽상가'처럼 느껴졌다.


'정말 이룰 수 있는 목표일까?'

'그래서, 그 목표를 이루려면 뭘 해야 하는 거지?'

하는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하지만, 그 방향성에 맞춰 정신없이 달려 나가다 보니 어느새 대표님 머릿속 꿈들이 어느새 하나씩 실현되고 있었다. '꿈을 이루려면, 꿈을 꿔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명확하지만, 나는 여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명제가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INTJ 대표님의 Vision: 대표님의 머릿속에는 우리 회사를 멋지게 키워내 EXIT을 하는 모습이 명확하게 그려져 있다. 그 목표를 위해 늘 몇 수 앞을 내다본다.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치밀한 분석력으로 시장의 본질을 바라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거시적인 방향성을 제시한다. 가끔은 너무 높은 이상처럼 보여 '저게 가능할까?' 싶을 때도 있지만, 그 통찰력은 우리 회사가 당장의 눈앞의 이익이 아닌 본질에 집중하게 만든다.


ESFJ COO의 수행 방식: 나는 대표님의 비전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 노력한다. 대표님이 커다란 스케치를 그리면, 나는 그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자원이 필요하고 어떤 순서로 움직여야 할지 정리를 한다. 좋은 팀원을 채용하고, 팀원들의 컨디션을 살피고, 행정과 회계의 디테일을 챙기며 실질적인 근육을 붙이는 과정이다.



2. 이상과 현실의 충돌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근 가장 큰 고민은 '채용'이었다. 대표님은 조직의 비약적인 성장을 위해 공격적으로 인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운영자인 나의 관점에서는 당장의 예산 상황과 현금 흐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있어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시점이다"라는 대표님과 "곳간이 버텨야 사람이 남는다"는 나의 현실적인 걱정이 충돌했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고민 끝에 메일을 남겨두면, 대표님은 항상 진심이 담긴 답장을 보내왔다. 자신의 방향성은 잃지 않되, 나의 걱정을 덜어주는 절충안과 함께였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단순히 감으로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채용 확대를 위한 내부적인 기준'을 만들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매출 지표나 투자 지표가 달성되었을 때 인원을 충원할지 명문화한 것이다.



3. '비현실적인 꿈'을 꾸려는 노력


현실주의자로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3n년이다. 당장 눈앞의 숫자와 효율을 따지는 습관을 버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대표님과 함께 일하며 나는 조금씩 '비현실적인 꿈'을 꾸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 요즘 이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을 읽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과거의 나였다면 "말도 안 돼"라며 밀어냈을 일들을, 이제는 "어떻게 하면 가능하게 만들까?"라는 질문으로 바꿔 생각해 본다.


'꿈꾸는 자가 결국 꿈을 이룬다'는 것을 곁에서 목격하며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3n 년간 현실주의자로 살아온 나에게, 대표님이 던지는 '비현실적인 미래'는 매일 새로운 자극이자 도전이다. 물론 여전히 숫자를 계산하고 리스크를 따지는 일은 내 몫이지만, 이제는 그 조율의 과정이 우리 기업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몽상가의 청사진과 현실주의자의 리스트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이 에너지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다 줄지 궁금하다.


분명한 건, 우리는 이미 어제보다 더 멀리 와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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