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개발 뒤 숨겨진 숙제, 스타트업이 제품을 통해 시장에서 생존하는 법
“시스템은 오픈하는 순간 시작입니다.”
이전 회사에서 담당했던 전사적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했던 수행사 개발자 대표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개발 관련 지식이 전무했지만, 현업 주요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중간관리자라는 이유 하나로, 전사적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총괄 담당자가 되었었더랬다.
수천 명의 직원이 사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젝트였기에, 책임감과 부담감이 상당했다. 본업에 더불어 시스템 구축을 떠맡게 되어 강도 높은 업무의 연속이었지만, 11년을 통틀어 했던 모든 업무 중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업무였다.
장장 1년의 구축 기간이 걸렸다. 요구사항 파악부터 수행사 선정, 현업 담당자들과의 인터뷰, 시스템 구축, 기능 개선, 테스트, 기능 개선, 테스트 또 그것들의 무한 반복. 목표했던 시스템 오픈일을 앞두고, 오류가 발견되어 눈앞이 깜깜해져 밤샘 작업을 하시는 대표님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잡고, 오픈 준비를 했던 것은 ‘아, 드디어 끝이다’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큰 오산이었다.
시스템이 오픈하자마자 전화, 메신저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사용법에 대한 문의에서부터 기능 개선 요구, 추가 기능 개발 요구, 같은 문의의 반복 또 반복. 하지만 우리는 힘들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대처를 해나갔다. 현업 담당자들을 모두 소집해 각 파트별 요구사항들을 사내 공유 파일에 아카이빙하고, 우선순위를 분류했다. 해당 요구사항들을 수행사에 전달해 개선/보완 내역들을 업데이트해달라고 요청하고, 매일 같이 점검을 진행했다. 떠들썩하고 정신없는 시간들이 흘렀지만, 하나하나 요구사항을 해결할 때의 쾌감과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스템이 아주 안정적으로 안착되기 까지, 퇴사 전 2년의 시간을 꾸준히 쏟아부었다. 열과 성을 쏟은 덕에 그 시스템은 내가 조직을 떠난 지금까지도 회사 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스템 구축 사례'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내가 처한 환경은 완전히 다르다. 과거의 시스템은 타겟 고객이 이미 정해져 있었고, 내가 구축한 시스템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고객들은 그 시스템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반면 스타트업의 제품은 다르다. 타겟 고객을 설득해 나의 서비스를 선택하게 하고, 사용 과정에서 만족을 주어 결제까지 이어지게 하며, 그다음에도 계속 우리 제품을 찾도록 유지해야 하는 훨씬 더 큰 과제가 놓여 있다. 단순히 내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를 반짝 구현해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는 냉정한 환경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는 것은 구현의 끝이 아니라, 고객과 진짜 제품을 만들기 시작하는 출발점과도 같다.
MVP를 시장에 내놓고 제품의 시장성 검증을 위해 고민을 하던 차에 2025년 초부터 지원사업과 각종 기관들에게 시스템을 배포하며 피드백을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교육 가이드에 따라 거창한 PMF 검증을 위한 설문조사를 계획하기도 했지만, 그때 만난 AC 대표님의 조언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설문조사보다 실제 사용할 기관이나 기업을 만나 피드백을 듣는 것이 가장 강력한 PMF입니다.
사용할 만한 곳들을 연결해 드릴게요.”
그 조언대로 실제 현장에서 날것의 피드백을 듣고, 이를 반영해 시스템을 개선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내부적으로 하는 가설 검증이나 형식적인 설문조사보다 현장의 목소리가 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이는 가장 정확한 지표임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빠르게 내놓고, 빠르게 망하라는 말이 스타트업계에 계속 들려오는 이유다.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은 없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는 게 아니라, 일단 내놓고 그 반응을 확인하며 고쳐 나가는 것. 결국 제품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우리 팀도 다르지 않다. 거창한 제품을 한 번에 구현하려 하기보다, 우리는 오늘도 기분 좋게 오픈 버튼을 누른다. 거기서 얻은 피드백으로 내일 더 나은 제품을 만들면 그만이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쌓아가는 것, 그게 우리가 제품을 고도화 해나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오늘도 고객들의 피드백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내일의 시스템은 오늘의 시스템보다 조금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우리 팀은 COO인 나뿐만 아니라 팀원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PM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시스템의 운영을 책임지는 우리 조직이 시스템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가 사용자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듣고 개선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PM의 시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요구사항(VOC)을 수집하고, 이를 시스템에 반영해 개선하는 루틴 자체가 곧 회사의 성장이 된다. 처음 오픈했을 때는 부족하고 오류도 많지만,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시스템은 견고해진다.
수천 명의 직원이 쓰는 거대한 시스템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 민첩한 시스템이 개선에 개선을 거쳐 언젠가 더 많은 사용자에게 닿을 때까지, 우리는 오늘도 기꺼이 피드백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COO로서의 효율적인 운영과, PM으로서의 날카로운 제품 개선. 이 두 가지를 놓치지 않으며 나는 오늘도 우리 시스템을 더 성장시키고 싶다.
시스템이 굴러가는 만큼, 우리 회사의 가치도 올라간다.
오늘도 우리는 오픈하고, 고치고, 또 다시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