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처럼 청명하고 화창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오늘, 다섯 번의 (감사) 인사를 받았다.
그저 손가락 까딱하고 눈빛만 보내는데.
지하철 4호선은 대체로 붐빈다. 시간대를 불문하고.
매번, 앉을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고 타는 데, 오늘은 자리가 제법 많았다.
평소처럼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하지 않고 그냥 계속 멍하게 있었다.
객차 안, 내 시선이 닿는 범위에는, 서 있는 승객이 많이 보이진 않았다.
그러다 누가 내 앞에 섰는데, 짐이 무척 많다. 배낭을 메고, 종이백을 두 발 사이에 놓고, 한 손엔 노트북 가방을 끼고, 다른 손은 스마트폰을 쥔 채,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체구도 작고 연약해 보이는 그 사람은, 과잠을 입고 있어 대학생으로 추측했다.
두세 정거장쯤 지났을까. 맞은편에 빈 좌석을 발견, 나는 무심히 지나치려다 말고, 그 학생의 노트북을 툭툭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다음은 눈을 마주친 후, 뒷자리를 가리켰고, 학생은 뒤를 보더니, 곧바로 좌석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앉으면서 두 번 더 목례를 한다. 그렇게 이동하다, 이촌역에서 정차할 때, 학생이 내리며 나에게 또 인사를 하는 데, 다 합하면 다섯 번이다. 와....
나는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는데, 만약 같은 곳에 내렸다면 몇 번은 더 인사를 주고받았을 것 같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번에 많은 감사의 인사를 받다니,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웠다.
실은 예전에 지하철을 탔을 때- 출근시간대라, 너무 붐볐고 나는 앉을 생각은 꿈도꾸지 않았다.-
내 앞의 어느 여자분이 나에게 뒤쪽 빈자리를 알려줬고, 그 길로 편하게 이동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나도 빈좌석이 생기면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어디서 시작된 건지 몰라도, 행복이 전파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돈을 쓴 것도 아니고, 특별히 힘을 쓴 것도 아닌데, 감사 표현을 몇 번이나 받으니, 그 기분이 하루종일 이어진다.
작은 일이지만 이런 것들이 모이면 삶의 윤활제가 된다.
문득 그런 상상을 해본다. '혹시 어제 내가 겪은 유쾌하지 못한 일을 달래주려고, 천사가 온 걸까.'
물론 말이 안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우리가 천사를 본 적은 없지 않은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알 길이 없지.
반면, 최근의 뉴스를 보면 사람이 정말 이토록 잔인하고 악랄할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무섭다.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가 싶은 생각도 자주 한다. 종종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도, 이야말로 쓸데없는 시간낭비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다 또 이렇게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어느새 "세상은 아직은 살만하구나."라는 생각으로 무장해제하게 된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되도록 많이 해야겠다. 끌림의 법칙이 있다고 했으니, 서로 좋은 기운을 가진 이들이 내 곁에 더 많아질 거라 믿는다.
오늘 K대학교 점퍼를 입은 여학생, 복 받으세요~. 아니, 구체적으로, 원하는 회사에 취업하세요.
진심을 담은 이 말이 씨앗이 되길.
* 어제의 유쾌하지 못한 일은, 적은 뒤 서랍에 담아 두었다. 세 번 쓰면 기분이 달라지곤 했다. 말로 하면 더 잘 풀리는데, 그러질 못하니, 글밖에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