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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Oct 22. 2023

태도의 문제

가을날처럼 청명하고 화창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오늘, 다섯 번의 (감사) 인사를 받았다.

그저 손가락 까딱하고 눈빛만 보내는데.


지하철 4호선은 대체로 붐빈다. 시간대를 불문하고.

매번, 앉을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고 타는 데, 오늘은 자리가 제법 많았다.

평소처럼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하지 않고  그냥 계속 멍하게 있었다. 

객차 안, 내 시선이 닿는 범위에는, 서 있는 승객이 많이 보이진 않았다.

그러다 누가 내 앞에 섰는데, 짐이 무척 많다. 배낭을 메고, 종이백을 두 발 사이에 놓고,  한 손엔 노트북 가방을 끼고, 다른 손은 스마트폰을 쥔 채,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체구도 작고 연약해 보이는 그 사람은,  과잠을 입고 있어 대학생으로 추측했다.


두세 정거장쯤 지났을까. 맞은편에  빈 좌석을 발견, 나는 무심히 지나치려다 말고, 그 학생의 노트북을 툭툭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다음은 눈을 마주친 후,  뒷자리를 가리켰고, 학생은 뒤를 보더니, 곧바로 좌석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앉으면서  두 번 더 목례를 한다. 그렇게 이동하다, 이촌역에서 정차할 때, 학생이 내리며 나에게 또 인사를 하는 데, 다 합하면 다섯 번이다. 와....

나는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는데, 만약 같은 곳에 내렸다면 몇 번은 더 인사를 주고받았을 것 같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번에 많은 감사의 인사를 받다니,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웠다.

실은 예전에 지하철을 탔을 때- 출근시간대라, 너무 붐볐고 나는 앉을 생각은 꿈도꾸지 않았다.-

내 앞의 어느 여자분이 나에게 뒤쪽 빈자리를 알려줬고, 그 길로 편하게 이동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나도 빈좌석이 생기면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어디서 시작된 건지 몰라도, 행복이 전파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돈을 쓴 것도 아니고, 특별히 힘을 쓴 것도 아닌데, 감사 표현을 몇 번이나 받으니, 그 기분이 하루종일 이어진다.

작은 일이지만 이런 것들이 모이면 삶의 윤활제가 된다. 


문득 그런 상상을 해본다. '혹시 어제 내가 겪은 유쾌하지 못한 일을 달래주려고, 천사가 온 걸까.' 

물론 말이 안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우리가 천사를 본 적은 없지 않은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알 길이 없지.

반면, 최근의 뉴스를 보면 사람이 정말 이토록 잔인하고 악랄할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무섭다.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가 싶은 생각도 자주 한다. 종종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도, 이야말로 쓸데없는 시간낭비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다 또 이렇게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어느새 "세상은 아직은 살만하구나."라는 생각으로 무장해제하게 된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되도록 많이 해야겠다. 끌림의 법칙이 있다고 했으니,  서로 좋은 기운을 가진 이들이 내 곁에 더 많아질 거라 믿는다.


오늘 K대학교 점퍼를 입은 여학생, 복 받으세요~. 아니, 구체적으로, 원하는 회사에 취업하세요. 

진심을 담은 이 말이 씨앗이 되길.




* 어제의 유쾌하지 못한 일은, 적은 뒤 서랍에 담아 두었다. 세 번 쓰면 기분이 달라지곤 했다. 말로 하면 더 잘 풀리는데, 그러질 못하니, 글밖에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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