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서 오히려 좋아
제주도에는 참 비가 많이 옵니다.
여행객에게 날씨는 매우 중요한데, 컨트롤할 수 없는 비 소식은 당황스럽게 만들죠.
개인적으로 맑은 날씨를 좋아하는데 비가 오면 활동성도 줄어들고 마음에 비처럼 추적거리는 우울이 아지랑이처럼 퍼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행 계획 짜는 걸 잘 못하고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여 남편이 일정을 짜주었습니다. 대신에 제가 할 일은 군소리 없이 잘 따라와 주는 것이었죠. 그런데 군소리 없이 잘 따라다녀야지 하면서도 마음에 안 들면 툴툴거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주도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싸우고 말았어요.
서로의 입장은 팽팽했죠. 믿고 맡긴 나의 믿음과 그런 자신을 좀 더 배려해주지 않는다는 남편의 서운함.. 별 것 아니었지만 렌터카 안에서 열렬히 싸워댔습니다. 언성도 높여가면서요. 웃긴 건 온 마음을 다해 싸우고 나니 서로에게 미안해지더군요. 우리는 곧 화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여행 초기에 싸운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 서운했던 걸 얘기하면서 마음을 한번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싸우지 않고 대화로 풀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파이팅 넘치게 싸운 뒤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게 되어 그 뒤 여행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비 오는 에코랜드가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가 내리다 말다 하는 순간에 서로 우산을 펴주기도 하고, 하나의 우산을 함께 쓰고 팔짱을 끼고 다니던 그 순간들이 예쁜 추억이 되었습니다. 펼쳐진 풍경은 말할 것도 없었죠.
에코랜드는 기차를 타고 에코로드를 돌면서 꽃밭과 예쁜 정원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비를 품은 피톤치드가 가득하게 올라와서 상쾌한 공기와 풀내음이 코 한가득 들어왔습니다.
도시 속에 있을 때 비가 오면 불편하고 짜증스럽기만 했는데, 이렇게 여행을 와서 여유 있는 마음이 되어서인지 오히려 비가 와서 한적한 테마파크가 선물 같이 느껴졌어요.
에코랜드 정보 및 입장권 안내 / 내돈내산 후기 ▼
에코랜드 근처에는 예쁜 숙소가 하나 있습니다.
남편과 커플 원피스를 사 입고 놀고 싶은 마음에 프라이빗 풀빌라가 있는 곳으로 골랐어요.
게다가 독채여서 남들 눈 신경 쓰지 않고 편한 게 즐길 수 있는 곳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밤에 켜지는 알전구가 무척 예뻤습니다. 미니풀 온도도 적당했고요.
야외 풀인데, 사생활 보호가 잘 되어서 편하게 놀면서 커플 사진을 원 없이 찍었네요.
야외 풀에서 놀 때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물속에 있으면서 비를 맞으니 색다르게 재밌더군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놀아보겠어 하며 물장구를 쳐대면서 10대 아이가 된 것처럼 깔깔거리고 웃었네요.
침실에서는 통유리를 통해 야외 미니풀이 보이는데 알전구에 반짝이는 예쁜 밤을 안주삼아 맥주 한 잔 하면서 쌓여온 대화를 풀어냈습니다. 평소엔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맥주덕인지 예쁜 숙소에 마음이 녹아서인지 술술 나왔습니다. 앞으로 미래에 어떻게 살고 싶은지 꿈 많은 부부는 깊은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감사하게도 서로가 지향하는 방향은 같아서 대화가 깊어질수록 서로가 나의 배우자가 되어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는 동반자가 나의 배우자라는 건 참 감사한 일입니다.
가성비 좋은 프라이빗 개인풀 숙소, 풀빌라소랑 정보 / 내돈내산 후기 ▼
여행을 다녀오면서 비가 오면 날씨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하기 일쑤였지만, 제주도 여행을 통해 비 오는 날, 오히려 기억할 거리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씨보다는 나의 마음을 돌보고 함께 여행 간 사람이 있다면 같이 좋은 추억을 남기고 오는 것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여행이 저에게 주는 선물로 마음그릇을 조금 더 키워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