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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Oct 17. 2019

대장내시경 하려다  
다신 못 볼 뻔한 엄마

60대 딸이 겪는 80대 엄마

엄마가 국가검진을 했는데 혈변이 있으니 2차 검진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평생 대장내시경을 한 번도 안 했으니 한 번쯤은 해봐도 되겠다 싶다.

연세도 있으니 종합병원에 알아봐 드려야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차일피일 미뤄졌다.


며칠 후 엄마가 1차 검진했던 동네병원에 예약을 해두었다고 한다.

종합병원에서는 75세 이상이면 안 해준다는 수면내시경도 해준다니 의아했지만 별 일 있겠나 싶었다.


약 마시는 날, 저녁 6시쯤 시작하겠거니 짐작하고 시간 맞춰 일찍 퇴근해 들어갔다.

이미 2/3 정도 약물 마시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퇴근해 들어오면 같이 시작하자고 했는데 역시나 성질 급한 엄마다. 

물 양을 제대로 마시고 있는지만 확인하고 저녁을 챙겨 먹었다. 

엄마가 거실로 나오더니 도저히 더는 못 마시겠다고 한다.

두 번이나 토했고 도저히 더는 못 먹겠단다.

지금까지 먹은 게 아까우니 조금만 더 힘내시라 했다.


설거지를 하고 안방에 가봤다. 침대에 이불 쓰고 누웠는데 춥다고 한다.

전기매트를 켰다. 온도를 더더 올리라고 해서 최대로 올렸다. 

혹시 모르니 패드를 하고 푹 주무시라 했다. 잠들면 괜찮겠지 했다.

조금 있다 또 가보니 전기매트 불을 끄란다. 

껐다. 또 끄란다. 자꾸 끄란다. 벽을 보며 불빛이 보인다고 한다.

두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비비며 "저거, 저거... 끄라고..." 하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살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탈수 증상이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검사는 포기해야겠다.

보리차를 끓여 드시게 하니 엄청 맛있게 홀짝홀짝 들이키신다.

다행이다. 안도하는 순간 폭포수처럼 토해냈다.

이불 위가 한강물이 되었다.

놀라서 이불을 싸서 안으니 소변도 한강물이다.

아차 싶다. 119에 연락을 하고 상황을 설명하니 출발한단다.

남편은 이불을 걷어 화장실로 뛰고 걸래를 들고 와 바닥을 닦고,

나는 엄마 패드와 옷을 갈아입히고 내 옷도 갖춰 입고, 응급실행 가방도 쌌다.

엄마 눈빛을 보니 넋을 놓은 상태다.


119 대원이 엄마에게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으니 제대로 대답한다.

응급차 안에 누운 엄마가 춥대서 가져온 파카를 덮어드렸다.

응급실로 들어가니 대뜸 뇌 CT를 찍자고 한다.

내시경 약이 안 맞아서 토했는데 CT는 웬 말이냐며 망설이는데

싫으면 싫다고 말하란다.

"싫어요."

엄마는 계속 온몸을 떨며 춥다고 해서 이불을 두어 겹 덮고 파카를 이불 안에 넣어 팔로 감싸게 했다.

간호사가 갖다 준 환자복을 갈아입히는데 앞섶과 바지가 토사물로 젖어있었다. 이것 때문에도 추웠겠다. 패드도 갈아 채우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잘하지 못하니 옆 침대 보호자가 도와주신다. 와중에 손목을 삐끗했다. 엄마의 몸무게는 73킬로그램이다.

30분이 흘렀다. 성질 급한 나는 당직의사에게 다가가 건조한 말투로 물었다.

"CT를 안 찍으면 치료 과정도 없는 건가요?"

"아닙니다. 기다려보세요."

그제서야 엄마 팔에 링거가 꽂혔다.


집안 정리를 다 한 남편이 오고, 카톡방에서 소식을 들은 둘째 동생 부부도 왔다.

간호사에게 소변줄을 끼워달라고 부탁 했다. 

그 상황에서 화장실을 드나드는 건 낙상의 위험이 있을 것 같아서다. 

동생부부가 교대를 해줘서 집에 오니 새벽 두 시 반이다. 

엄마는 밤새도록 화장실을 가야겠다고 난리를 쳤단다. 

소변줄이 끼워져 있어도 뇨끼를 느끼는 건 왜일까? 


다음날 오전, 밤새 고생한 동생부부와 교대를 했다. 

엄마는 여전히 지치지도 않고 화장실을 가야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떼를 썼다. 

몸싸움까지 하면서 막느라 애를 먹었다. 


의사 소견은 그랬다.

고령자에게는 대장내시경 자체도 위험하지만, 검사를 위해 먹는 하제(물약) 또한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 

고령자는 다량의 물을 한꺼번에 들이켜면 전해질 균형에 이상이 올 수 있다. 

게다가 토하는 과정은 뇌압이 올라갈 수 있는데, 방치해 두면 심하게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전해질 균형을 원상태로 돌아오게 하려면 단시간에 하면 위험하고 2~3일에 걸쳐서 서서히 해야 한다. 

그래서 입원을 하고 링거(식염수?)를 맞는다. 응급실에 온 건 참 잘한 일이다. 

제대로 요약을 했는지 모르겠다. 


소통이 안 되고 떼를 쓰는 엄마의 상황을 응급실 주변 사람들은 일시적인 섬망 증세니 크게 걱정할 일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엄마의 정신이 영 돌아오지 않을까 봐 겁이 났다. 

오전 당번 시간 동안에만도 소변통을 네다섯 번 비웠다. 그러면서 엄마가 간간히 잠을 자고 깰 때마다 표정에서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정도를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집에서 토한 직후부터 다음날 입원실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만 15시간 정도를 기억하지 못했다. 

119차 탄 것, 응급실, 동생 부부의 밤샘 간병 등 어느 것 하나 기억하지 못했다. 


오후 2시쯤 회복의 기미가 보여 입원실로 옮겼다. 때맞춰 시골에서 귀촌 중이던 오빠네 올케언니가 도착했고, 우리 모두는 안심하고 귀가했다. 만 1박 2일 동안 올케언니의 재잘재잘 덕분에 엄마는 아주 편안한 회복기를 보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 생각 없이 대장내시경 하려다 다신 못 볼 뻔 한 엄마. 이번 참에 엄마 손도 여러 번 잡아보고 용변도 처리해줘 보고 더럽다는 생각도 안 들고, 눈도 맞춰보고 했는데 머리를 빗어주진 못했네. 처음으로 오래 살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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