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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러 Oct 06. 2020

10월 1일에는 저를 칭찬해주세요

내정식의 추억

10월 1일은 내 나름의 기념비. 매년 이 날이 되면 나는 칭찬받고 싶다. 바로 일본에서 첫 회사생활을 시작한 날이기 때문.


특히나 2020년 10월 1일은 내가 일본에서/HR로서 일한 지 만 5년 꽉 채우는 날.


토닥토닥, 이번 한 해도 채우느라 고생했어.

신기하게도 올해 10월 1일에는 5년 전과 똑같은 업무를 맡았다. 바로 내년 입사자들의 ‘내정식’.


이제는 익숙하게 여기는 단어지만, 일본에서는 합격통지를 받고 정식으로 입사하기까지를 내정 기간이라 하여, 한국과는 다르게 내정자, 내정식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내정자여도 아직 정식 입사자는 아니기에 회사에 있어 내정자는 아주 소중한 존재.

그들에게 '당신은 정식으로 내정자입니다'는 세리머니를 하는 것이 내정식. 으레 보통의 입사식처럼 사장이 내정서를 전달하여 내정자임을 인식시킨 뒤, 후반 프로그램으로 내정자끼리의 친목을 다지는 연수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친목을 다지는 연수가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내정자들이 입사까지 이어지기까지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동기'이기 때문.

그들 입장에서 보면 이 날 처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는 셈이기에 HR로서는 이 첫 만남에 꽤 공을 들인다.

아이스 브레이크, 자기소개, 팀별 대항 워크.. 내정 기간 동안 내주는 과제도 개인이 아닌 그룹과제가 보편적.

5년 전의 나는, 입사 첫날부터 내정식 진행을 돕게 되었다.

그때는 회사의 사정으로 10월 1일이 아닌 2주 정도 뒤의 날에 내정식을 치렀다.


당시 내가 준비했던 건 내정자 전원 당일 경로를 메일로 확인, 경리에 연락해 개별 교통비 지급 준비, 연수 뒤 뒤풀이 장소 물색 및 예약, 뒤풀이 참석 여부에 대해 전화로 확인 등 아주 부분적인 것들이었다. 그때 일본어를 워낙 못해서 뒤풀이 참석 전화를 한 명 한 명 돌릴 때마다 내정자들이 전화 너머로 침묵과 함께 당황해하던 게 선명히 기억난다.


어..? 응..? 일단 회사 HR이니 무례하게 다시 물어볼 수도 없고, 그런데 이 사람이 하는 질문은 못 알아듣겠고..


이런 반응이었다.

2016 입사자들아, 그땐 미안.


게다가 처음 참석하는 세리머니에, 연수 프로그램에.. 아이스 브레이크 시간에도 나 혼자 아이스를 깨지 못하고 얼어있었다. 내 상사이자 내정식을 담당했던 H상은, 옆에서 한 마디라도 하라며 눈칫밥을 줬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참, 지금 생각해보니 머리색도 다들 검정인 가운데 나 혼자 밝은 갈색이었다.. HR실격이었다.

 


올해는, 글쎄, 코로나의 영향으로 일본의 6할 이상의 기업들이 온라인 내정식을 진행했다고 한다.


우리 회사는 반반. 온라인도 하고 오프라인도 했다.


두 번의 내정식을 5년이 지난 뒤의 나는, 스스로 기획에서 실행까지 모두 준비할 수 있었다. 당일 경로 확인을 위한 메일은 간단히 쓸 수 있었고 내정식 프로그램 상 연계해야 하는 여러 팀들과의 협업, 등단하는 스피커들에 대한 사전 코디네이터 등..  

물론 반성해야 할 점도 있지만 내정식 내내 나 스스로가 무척 즐거웠다. 그리고 내정자들도 모두 만족해했다(고 믿는다).


코로나로 뒤풀이 등은 없었지만 그런 게 없어도 주어진 프로그램 시간 내에서 충분히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고, 심지어 내가 사회를 보며 전체 진행을 했다!



사람의 성장은 '측정'하는 것이 아니고 '직감'하는 것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만큼 성장이라는 건 눈에 보이는 것,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그냥 말없이 무한 토닥토닥을 해주고 싶다.


일본에서 회사 생활을 5년이나 하며, HR로 5년이나 있으며 과연 나는 성장했을까? 중간에 멈추진 않았을까? 아니 오히려 역행하진 않았을까? 부정적인 생각들도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이 날만큼은 일단 뚜껑을 닫겠다.



토닥토닥, 이번 한 해도 채우느라 고생했어.

토닥토닥, 5년간 타지에서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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