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자령에 가서 찍은 사진을 돌려봤다.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강한 바람과 추위에 얼굴도 들지 못했다. 손 끝이 시리고 얼어붙는 듯 저려왔다.
인스타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선자령’ 사진을 구경했다. 내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인스타는 작품 같았고, 내 사진은 평범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자령은 강원도를 평창군에 있는 해발 1157M 봉우리다. 대관령(832M)에서 가장 높은 고지이자 백두대관 큰 축에 위치해 있다. 이 고개를 넘어야 강릉 앞바다가 보이고, 반대로는 이 고개를 넘어야 서울을 갈 수 있다. 바람의 신이 사는 동네인지 늘 강한 바람이 불어 춥고 시원하다. 쌘 서풍의 위력을 맞 볼 수 있는 곳이 여기다. 바람 만큼 문장의 위력도 크다.
‘아침의 문장’을 읽고 알게 됐다. 내 사진은 그냥 찍은 것, 반면 그들은 구도를 잡고, 더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여 가며 찍었다.
그제야 상상이 갔다. 칼 바람 앞에서도 밝게 웃고, 얼어 붙은 손으로 눈을 움켜 잡아 하늘로 뿌리는 포즈를, 신비로움을 위해 아직 길이 나지 않은 눈 밭을 서슴없이 들어갔다.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바지런히 돌아다녔다. 그 시간은 행복하고, 그 사진이 사랑받을 것을 그들은 알았다.
어느 것 하나도 그냥 되는 건 없다. 손에 든 카메라 셔터를 한 번 누르는 것과, 여러 번 누르는 수고의 결과물을 달랐다. 너무 쉽게 얻으려 했고, 편하게 취하려고 했다. 사진도 근성이 만든 작품이었구나. 사람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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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가 찍은 풍경 앞에서 번번이 나는 그의 어미가 된 듯한 속상함을 느낀다. 이걸 찍으려고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칼바람 맞으며 적막과 허기와 싸우고, 곱은 손 불어가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단 말이지.
작사가 양인자의 산문집 『그 겨울의 찻집』에서. 그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사진작가 김영갑(1957~2005)을 알고 난 이후에 썼다면, 화가 고흐 대신 김영갑이란 이름이 가사에 더 어울렸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고 썼다.
(출처 : 아침의 문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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