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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크다스 Oct 17. 2023

셀러브리티와 와인

보이는 게 ‘급’이 되는 세상


이 글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셀러브리티>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집안의 사업이 망한 후 화장품 방문판매원으로 살아가던 서아리가 우연히 SNS 인플루언서로 성공하면서 휘말리게 되는 지독히도 소란하고 잔인하게 화려한 이야기, 셀러브리티. 2화를 여는 아리의 독백은 관심이 비즈니스가 되면서 과열된 SNS의 민낯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어떻게든 날 알리고 날 보이는 데 안달 난 세상. 날 보인 뒤 남들을 알아가는 과정을 ‘소통’이라고 하지. 그런데 그런 행위와 선택 뒤에 다른 욕망과 계산은 없는 걸까? 관심이 곧 돈과 지위가 되는 세상, 당신들은 꿈꿔 본 적 없어?


일반인도 유명해지기만 하면 웬만한 연예인 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의 협찬을 제안받고 포스팅 한 건의 대가로 몇 백만 원을 받는다. 각종 행사에 초대되고 유명인과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는 덤. 기회가 주어진다면 선뜻 나서긴 어려워도 호기심은 가져볼 만한 삶이다.



거짓과 질투, 배신으로 얼룩진 세계

넷플릭스


아리의 시작도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처음 초대받은 행사에서 인플루언서가 되는 치트키와 함께 이 세계의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된다. <셀러브리티>에서 꽤 자주 등장하는 와인도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아리를 행사에 초대한 인플루언서 오민혜와 시비가 붙은 인플루언서 비니맘이 아리의 하얀 생 로랑 트위드 원피스에 레드 와인을 뿌려 버린 거다.


아리는 엄마의 수선집에 맡겨진 시현의 원피스를 망가트려 난처해졌지만 궁금했던 이 세계의 비밀을 알게 된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을 때 유명해지고 싶다면 나보다 유명한 사람을 이용하면 된다는 것. 그리고 유명인이 된 후에는 그 삶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도 배신하는 게 이 세계에선 흔한 일이라는 것.



허세와 비뚤어진 욕망의 상징

넷플릭스


<셀러브리티>에서 와인이 중요한 메타포로 등장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와인을 마시는 장면의 등장인물과 상황을 비교해 보면 와인이 '계급'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아리가 행사에 입고 나간 원피스의 주인, 윤시현은 5선 의원의 딸이자 가장 막강한 법무법인 집안의 며느리로 SNS를 안 해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상류층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회적인 영향력을 좋은 일에 쓰고 싶어 하는 품격 있는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첫사랑 민혁이 선물한 생 로랑 원피스를 입고 약속 장소에 나온 시현에게 민혁은 '늘 시키던 걸로 시켰어'라며 와인을 건넨다. 태어날 때부터 상류층이었던 두 사람이 와인을 마시는 장면은 오랜 시간 몸에 밴 습관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인다.


그럼 아리를 파멸로 몰고 간 악플러 은채가 와인을 마시는 장면을 어떨까? 밖에서는 가짜 명품백을 들고 부자인 척 거짓말을 습관처럼 하지만 은채의 현실은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쓰레기로 가득한 어두운 방이다. 카드 연체로 택시비조차 현금을 내야 하는 형편에 SNS로 인플루언서들을 욕하고 조종하며 와인을 병째로 들이키는 은채의 모습은 부자연스럽고 모순적이다.



뭐든지 '급'을 나누는 세상에 대한 염증

넷플릭스


와인을 마시는 것 자체가 허세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대로 알고 마시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술인 건 맞지만 잘 모르고 마셔도 그 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은채의 술 취향이 와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은채가 와인을 마시는 모습은 질투와 분노의 감정을 화풀이하듯이 입 안에 털어 넣는 것처럼 보였다. 오민혜가 자신의 비밀이 폭로된 후 추락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마시던 와인도 몹시 불안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취향에는 계급이 있을 수 없다. 아리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좋은 취향으로 성공해 그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재벌인 민혁의 신발을 가사도우미가 벗기는 장면으로 비난을 받기도 한 <셀러브리티>에는 유난히 '계급'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누가 말해도 참 불편한 마음이 드는 단어다. 단 한 사람, 시현의 사이다 발언을 빼고 말이다.


급? 그건 누가 정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익명의 세계에서도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느냐, 팔로워 숫자가 K인지 M인지에 따라 급이 나뉜다. "난 쟤랑 급이 달라" 아리에게 벌어진 잔인한 일들은 은채 하나가 아니라 이런 세상에 지친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뻔한 신데렐라 이야기, 소재만 자극적이고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해 공개됐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 이 작품을 꽤 인상 깊게 봤고 칭찬하고 싶다. D.P, 더 글로리, 마스크걸도 마찬가지지만 좋은 콘텐츠는 현실에서 우리가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를 제시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화려한 패션으로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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