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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 김선생님 May 25. 2024

그냥 한번 해 보세요

오늘 반찬은 한국어입니다   제16화  중화제육덮밥







[ 오늘의 반찬 ] 

V(동사)아/어/여 보다


 저는 중화제육덮밥을 먹어 보지 않았지만 한번 만들어 봤어요.     

 그냥 한번 해 봤어!

 일단 한번 해 보세요. 두 번, 세 번도 괜찮아요.





  올해 2월부터 남편의 근무지가 서울로 바뀌며 우리는 주말 부부 생활을 청산하게 되었다. 주변 결혼 선배들에게 소식을 전했을 때의 반응은 극명하게 둘로 나뉘었다. 가족이면 역시 함께 붙어살아야 한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부류와, 그 좋은 걸 왜 끝내려 하냐며 안타깝게 탄식하는 부류.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든 상반되는 두 가지 반응 중 하나를 보여서 좀 재미있었다. 우리가 지금의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될지 인생 최고의 결정이라고 축하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이제부터 진짜 부부로서의 생활이 시작될 것이며, 집에서 함께 챙겨 먹는 끼니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리라는 것.



  요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차릴 수 있는 밥상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한편으로는 약간의 걱정이 들기도 했다. 주말에만 볼 때도 매주 한 번씩은 꼭 제육볶음을 해 달라고 하던 남편의 제육볶음 사랑이 늘어난 끼니 수에 맞는 비율로 더 커질 것인가 하는 기묘한 걱정이었다. 매일 오후에 ‘먹고 싶은 거 있어?’라는 메시지를 입력할 때마다 슬금슬금 피어나오던 그 긴장감이란. 하하.



  이제는 더 이상 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로맨틱함과 가끔씩 느껴지는 묘한 긴장 사이를 식빵에 버터를 바르듯 부드럽게 오가며 지낸 지 어언 백일쯤 지났을 때였다. 뭔가 이상했다. 최근 들어 남편이 제육볶음을 먹자고 말하는 걸 거의 듣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정말 확실히 수상했다. 이 사람이 이럴 사람이 아닌데……. 당장이라도 ‘요즘은 왜 제육볶음 먹자고 안 해?’ 묻고 싶었지만 그 질문과 함께 우리 집 식탁에 제육볶음 폭격 명령이 다시금 떨어질지도 모르기에 쉽사리 안일한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궁금하기는 무지 궁금한데 묻지도 못하는 의문과 갑갑함에 싸여 몇 주를 보낸 어느 날 점심. 오후 수업에 들어가기 전 강사실에 앉아 와작와작 프로틴 바를 씹어먹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 화면에 메시지 배너가 떴다. 남편이었다. 점심은 먹었냐는 물음에 우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보내고 프로틴 바로 대충 때웠다고 이야기하며 되물었다. 오빠는? 이어지는 남편의 답장에 그간의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난 여기 중국집에서 중화제육덮밥 먹었어. 요즘 맨날 감. 진짜 맛있음 ㅋㅋ’   



  

  그으래, 그런 거였단 말이지……. 그럴 수 있지. 밖에서 자주 먹으니까 집에서는 먹자고 안 할 수 있지. 얼마나 맛있으면 맨날 먹을까? 내가 해주는 제육볶음이 제일 맛있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나? 아니지, 더 맛있는 제육볶음을 찾은 거지.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나는 요리사도 아니고. 맞지, 맞지. 근데 진짜 얼마나 맛있길래 그럴까?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남편 몰래 유튜브에 중화제육볶음을 검색했다. 잠들어 있는 옆 사람이 깰 수도 있으니 휴대폰 스피커를 끈 채로 편집된 자막에만 기대어 레시피 영상을 하나 시청했다. 유명한 중식 셰프가 가게에서 직원식으로 자주 내는 제육볶음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중국식 고추장인 두반장을 넣는 게 맛의 비결인 것 같았다. 두반장을 제외한다면 필요한 양념 재료는 모두 이미 집에 있었다.



  슬쩍 옆을 보았다. 세상 모르게 쿨쿨 잠들어 있군. 안심하고 새벽배송으로 구이용 돼지 앞다리살과 두반장을 샀다.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아무래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질투하고 있었다. 예쁘고 화려한 여자도 아니고 멋지게 커리어를 빛내는 주위 사람도 아닌, 고작 제육볶음을!



  다음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새벽배송 박스를 뜯고 정리하는 날 보며 남편은 물었다. 뭐 샀어? 아아, 그냥 앞다리살이랑 두반장 샀어. 두반장? 왜? 어어, 저녁에 이걸로 뭐 해먹으려고. 뭐 먹을 건데? 으음, 중화제육덮밥? 남편은 눈을 한번 비비고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우와. 나 생일인가?”      



    





  먼저 전기압력밥솥에 밥을 안친다. 생각할수록 황당하다.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는 음식을 만들어 보는 건 처음이다. 심지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스스로 제육볶음을 만들기로 했다니. 두반장 병을 한 손으로 잡고 여기저기 들여다본다. 굉장히 짠 양념이라고 해서 색이 아주 진할 줄 알았는데, 맑은 주홍빛 빨강이 투명한 병 안에서 손을 흔든다. 네에,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중국식 고추장이시라고 들었는데 고추장이랑은 좀 다르게 생기셨네요……. 뚜껑을 따서 코를 들이밀고 냄새를 맡아 본다. 쌈장과 흡사한 향이 난다. 젓가락으로 조금 찍어 맛을 본다. 짜다. 꼭 쌈장에 고추장을 조금 넣고 센 불에 볶은 듯한 맛이다.



  국그릇을 하나 꺼내 양념을 계량한다. 밥숟가락으로 두반장을 네 숟갈, 고추장 두 숟갈, 설탕 여섯 숟갈, 고춧가루 네 숟갈, 다진마늘 두 숟갈, 굴소스 한 숟갈을 퍼 놓는다. 거기에 따뜻한 물을 조금 넣고 각각의 양념 재료가 고루 섞이도록 저어 준다. 큼직한 볼에 돼지고기 앞다리살 500그램과 함께 준비한 양념을 쏟아붓는다. 양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고기와 양념을 주물럭거린다. 이때 고기에 양념이 잘 밸 수 있도록 뭉쳐 있는 고기는 하나하나 떼어 낸다.



  고기를 10분 재우는 동안 야채를 손질한다. 대파 두 대를 각각 반으로 갈라 5센티미터 길이로 썬다. 영상에서 본 셰프는 양파도 넣었지만 양파를 먹지 않는 나는 평소처럼 쪽파로 대체한다. 쪽파도 얇은 줄기 다섯 대 정도를 대파와 같은 길이로 자르고, 푸른 잎 끝부분을 얇게 종종 썰어 음식 장식용으로 따로 빼 둔다. 마지막으로 청양고추 세 개를 비스듬히 썰어 놓는다.



  불을 켜고 웍을 올린다. 식용유를 듬뿍 둘러 센 불에 계란프라이를 만든다. 노른자 위로 기름을 끼얹어 가면서 튀기듯 조리한다. 촉촉하고 뜨겁게 익힌 계란프라이는 새 그릇에 내려놓은 다음 웍에 기름을 조금 더 두른다. 그러고는 준비한 고기와 양념, 야채를 모두 털어 넣어 중간보다 조금 강한 불로 볶는다. 중국집 요리사가 된 것처럼 손동작도 크게 크게 해 가면서. 모든 재료들이 뜨거운 기름옷을 입으며 익어 가는 모양을 보고, 군침 도는 소리를 들으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데 갑자기 재채기가 난다. 청양고추가 많이 들어가서 매운 향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불을 끈다. 음식을 접시에 내기 전에 고기를 하나 집어 먹어 본다. 알쏭달쏭한 맛이다. 짭짤하고 매콤하고 감칠맛 있는 것이, 제육볶음이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무엇인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든다. 잠시 고민하다가 찬장 문을 열어 화유를 집는다. 모름지기 중식은 불맛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던가. 조리하는 모습은 대강 따라해 봤지만 화력이 약한 가정집 화구로는 중국집의 그 불맛을 결코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빨간 제육볶음에 붉은 화유를 둥글게 한번 두른 다음 뒤섞으며 마무리한다.



  중국 식당에서 볶음밥을 시키면 으레 나오는 길쭉한 타원형 그릇과 얼추 비슷한 생김새의 그릇을 꺼낸다. 잰 발걸음으로 압력밥솥으로 가 뽀얀 흰밥을 그릇 왼편에 푼다. 오른편에는 방금 막 완성해 뜨거운 열을 내고 있는 제육볶음을 인심 좋게 가득 담는다. 미리 튀겨 둔 계란프라이는 하얀 밥과 빨간 제육볶음을 공평하게 반반 차지할 수 있는 위치에 얹는다. 밥과 제육볶음이 각각 경쟁적으로 피워올리고 있던 수증기 위에 계란프라이가 이불처럼 덮인다. 잘게 썬 쪽파잎도 여기저기 슬쩍슬쩍 뿌린다.  



   

  “한번 먹어 볼래?”



  남편은 한껏 신이 나서는 얼른 젓가락을 집어들고 고기부터 한 점 맛보았다. 두어 번 씹더니 바로 탄성을 내지른다.



  “맛있어? 다행이다. 근데 어때? 그 식당에서 먹은 거랑 좀 비슷해?”


  “진짜 비슷한데 조금 달라. 근데 이게 훨씬 더 맛있어.”



  이번에는 계란프라이와 제육볶음, 밥을 모두 섞어 먹어 보고서는 말없이 감탄사만 반복하며 먹는 일에 집중했다. 남편은 음식이 정말 맛있을 때는 별말 없이 정말 열심히 먹기만 하는 편이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안심하고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저를 들었다. 스톤웨어 그릇에 수저가 부딪치는 소리가 꼭 풍경 소리처럼 또랑또랑하고 경쾌하게 들렸다.



  계란후라이 노른자 상단에 숟가락 끝을 수직으로 가져다댔다. 얄팍한 계란을 이리저리 쪼개며 근방에 있는 제육볶음과 밥을 휙휙 섞었다. 흰밥을 점차 물들이는 빨간 양념을 보니 혀 아래에서부터 단침이 올라왔다. 한술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따뜻했다. 자극적인 짠맛에 놀라기도 전에 매운 양념이 치고 들어왔다. 얇게 썰린 앞다리살은 감칠맛 도는 양념을 꽉 잡고 있으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잃지 않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간간한 불향이 콧속을 지나갔다. 자주 먹어 무척 익숙한 제육볶음 맛에 독특하고 새로운 풍미와 향이 곁들여져 식사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그런데 오늘 왜 중화제육볶음 만들어준 거야?”



  남편이 물었다.



  “아, 그건…….”



  절로 수저질이 멎었다. 뭐라고 대답하는 게 좋을지 몰라 그릇에 남은 쪽파 장식의 개수만 괜히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넷……. 고개를 들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특별한 이유 없어. 그냥 한번 해 봤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내겐 이런 것쯤은 별일도 아닌 것처럼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흥.          








  ‘(동사)아/어/여 보다’를 가르치는 날에는 아침부터 마음이 들뜬다. 학교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먼저 들러서 과자 진열대를 쭉 탐색한다. 한국 과자 중에서 학생들이 아직 경험해본 적이 없을 법한 과자를 하나 고른다. 귀여운 과자를 품에 안고 가볍게 교실에 들어간다.



  수업이 시작하면 언제나 자동적으로 내뱉던 인사말인 ‘여러분, 안녕하세요?’도 그날만큼은 하지 않는다. 그냥 칠판 앞에 서서 과자 봉지를 뜯어 먹는다. 그러면 학생들의 시선이 대번에 내게 집중된다. 선생님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니 당혹스러워하는 기색도 보인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음식 먹지 말라고 했는데……. 뭐지? 머릿속으로는 아마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놀란 얼굴들을 보면 금방 웃음이 터질 것만 같지만 꾹 눌러 참아야 한다. 그렇게 네다섯 개쯤 과자를 집어먹고서는 심드렁하게 묻는다.



  “여러분, 이게 뭐예요?”


  “과자예요.”


  “이 과자를 알아요?”


  “아니요, 몰라요.”


  “여러분이 이 과자를 먹었어요, 있어요?”


  “아니요, 없어요.”


  “아아, 여러분이 이 과자를 안 먹어 봤어요. 그럼…….”



  제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학생 한 명에게 다가가 과자 봉지를 슥 내민다. 그리고 바로 슬쩍 제안한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배우처럼 천연덕스럽게 묻는 것이 키 포인트다.



  “탐 씨, 한번 먹어 보세요!”



  탐 씨는 잠시 망설이다가 배시시 웃으며 과자를 먹어 보았다. 비슷한 상황으로 몇몇 학생들을 거치며 ‘-아/어/여 보세요’, ‘-아/어/여 봤어요’를 사용해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오늘 수업에서 다룰 문형의 기본적인 의미를 체득하게 된다. 모든 학생들이 이 단계에 이르렀다 싶으면 오늘의 주인공을 정식으로 소개한다. 이때 ‘한번 먹어 보세요’의 ‘한번’은 학생들이 이전에 달달 외워 알고 있는 숫자 ‘하나’가 아닌, 시험 삼아 하는 시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정보도 빼먹어서는 안 된다. 별로 어려운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쉽게 이해하며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 수업 시간에 과자 먹기라는, 평소에는 금지된 행동도 실실 웃으며 해 보면서.




  내가 ‘(동사)아/어/여 보다’를 특별히 좀더 사랑하게 된 데에는 최근에 만난 학생 중 한 명이 큰 역할을 했다. 스페인에서 온 이네스 씨였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이네스 씨가 책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수업 시간 내내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길래 무엇이 문제일지 궁금해하던 차라 아주 반가웠다. 학생은 교재의 예문 중 ‘프랑스어를 한번 공부해 봤어요’의 ‘한번’에 손가락을 콕 집고는 질문했다.



  “선생님. 이거 ‘한번’은 ‘하나’가 아니에요. 맞아요?”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업 시간에 해주었던 설명을 간단히 반복했다. 이네스 씨는 단호한 음성으로 ‘오케이’라고 답하더니 다시 질문했다.



  “그럼, 한번 공부해 본 후에, 또 두 번, 세 번 공부해요. 이것도 괜찮아요?”



  이번에는 내 쪽이 아리송해졌다. 가만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 맞지. 일단 한번 시도해 보고, 다음에 또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해봐도 되는 거잖아. 생각을 거듭할수록 정말 옳은 접근이었다. 어찌 보면 ‘-아/어/여 보다’가 담고 있는 진정한 뜻을 이해하고 있는 건 한국어 교사인 내가 아닌 이네스 씨 같기도 했다. 그날 학생과 ‘한번’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나눠 보는 동안 자꾸만 웃음이 났다. 무척 익숙한 우리말에 독특하고 새로운 풍미가 곁들여지자 말하는 재미도 더해졌다. 정말 짜릿했다.  



   

  그 학기의 마지막 주차에는 기말 말하기 인터뷰 시험이 있었다. 이네스 씨의 차례가 왔다. 1분의 준비 시간 동안, 늘 멋지고 단호하던 이네스 씨가 바들바들 떨었다. 전날 진행된 듣기 시험을 왕창 망쳐 버렸기 때문에 시험 불안이 심한 모양이었다. 이미 한번 유급한 적이 있기에 이번만큼은 꼭 진급하고 싶어할 텐데. 사실 이네스 씨가 기말 듣기 시험을 무진장 망친 건 맞지만, 다행히 중간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둔 덕에 2급으로 진급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건 시험을 채점한 나만 알고 이네스 씨는 모르는 정보였다. 준비 시간이 끝났는데도 이네스 씨는 입을 떼지 못하고 불안해했다. 이미 안정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확 말해줄 수도 없고 정말 답답했다.



  나는 그냥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이네스 씨에게 한 뼘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그날처럼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면서.



  “이네스 씨, 괜찮아요. 한번 해 보세요. 그냥 한번 해 보세요.”



  말을 마치고 씩 웃으며 학생의 푸른 회색빛 눈동자를 메시지를 전하듯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불안함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시선이 한곳에 멈추고, 곧이어 이네스 씨가 대답했다. 언제나 그러했듯 멋지고 단호하게.



  “오케이. 한번 해 보다.”



          





  중화제육덮밥을 만든 날로부터 며칠이 지날 때까지 남편은 무척 신나는 음성으로 나를 부를 때마다 이름 대신 ‘세상에서 제육볶음을 제일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뜨거운 제육볶음의 수증기처럼 뿌듯함이 하늘까지 솟아올랐다. 수상한 점은 그 후에도 우리 집에서 제육볶음을 만드는 빈도가 조금도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남편은 얼마 전에도 회사 근처의 중국집에서 중화제육덮밥을 주문해 먹었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사랑스러운 종류의 거짓말에 대해서만큼은 진실을 굳이 열어 보려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 또한.



  그래도 다가오는 주말에는 중화제육덮밥을 한번 만들어 보려 한다. 이번에는 양파도 한번 넣어 볼 것이다. 양파를 한번 먹어 보기까지 할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한번 해 본다. 아, 이미 한번 해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일단 한번, 아님 두 번, 그래도 아니면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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