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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정 Jan 17. 2018

딴짓을 시작하다

딴짓 한 번 하는데 이렇게 긴 글이 필요한 걸까

나는 애당초 딴짓이라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이다.   


쉽게 말하면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못 한다는 뜻이다.   


대화를 하는 중간에 휴대전화 문자에 답장을 한다든지, 티비를 틀어놓은 상태에서 전화통화나 어떤 일을 동시에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통화를 하다 티비의 한 장면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말이 없어지고, 나를 잘 아는 상대방은 “너 지금 뭐 보고 있지?”하고 금방 알아차리곤 한다.   


멀티태스킹이 불가한 성격은 타고난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땐 음악을 들으면 능률이 오른다는 친구들을 따라 했다 밤새 공부는 포기한 채 음악 듣는 데 정신이 팔리기 일쑤였다. 티비를 보며 밥을 먹는 - 남들에겐 식은 죽 먹기인- 일도 내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밥을 먹을 때마다 엄마는 옆에서 쉴 새 없이 내 볼을 툭툭 건드렸다. 티비를 보는 순간, 내가 음식을 볼에 물고 도통 씹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 집에서는 식사 시 티비 시청 금지령이 내려졌다.  


사람이 쉽게 잘 변하지 않는다고, 이런 multi-tasking disability – 여러 일 동시불가- 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계속됐다.


2006년 나는 한 지역 MBC의 사회부 기자가 됐다. 인력도 부족하고, 막내를 잘 뽑지 않는 지역 MBC의 특성상 4년 내내 하루 서너 시간씩 자며 사건사고를 챙겨야 했다. 2008년부터는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게 돼 그야말로 휴일도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2010년엔 서울 MBC로 자리를 옮겨 또 한 번 정신없는 사회부 기자 생활을 계속해나갔다.

   

잘 시간도 부족하고, 체력적으로도 힘든 직업 때문에 일 말고 딴짓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치더라도, 돌이켜보면 나는 정도가 좀 심했던 것 같다. 쉬는 날에도 남의 기사를 찾아보거나 시사 프로그램을 모니터 하는 게 일상이었고, 심지어 외국으로 떠난 여름 휴가 며칠 동안 한국에서 큰 사건이 벌어진 걸 알게 되고는 “아 저기 갔어야 되는데, 휴가 날짜를 잘못 잡았네”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취재를 잘 못하거나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어떤 누구와 무엇을 해도 기분이 잘 풀리지 않았다. 이 정도 되면, 누군가는 이른바 ‘워커홀릭’이라 칭하겠지만, 내가 내린 진단은 그저 ‘딴짓을 잘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딴짓의 필요성

내 인생에도 '딴짓'이 필요하다고 느낀 계기가 크게 두 번 있다. 2012년이었다. 내가 속해 있는 MBC 노조가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에 들어갔다. 물론 파업이라고 해서 놀기만 한 건 아니었다. 매일 집회도 나가고, 노조 일도 조금 도왔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시간이 갑자기 너무 많이 생겼다. 한 달, 두 달…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가는데 파업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온갖 시사 프로그램과 다큐를 돌려보고, 이 책 저 책을 읽어보아도 시간은 자꾸 남아돌았다. 그 때 문득 깨달았다. 나란 사람에게 다른 취미라는 게 없다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쌓일 때 악기를 다루거나 운동을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다 음악에 관해, 운동선수에 관해, 또는 영화에 관해 전문가 못지 않은 지식을 쌓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의 일 말고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당장 하는 일 말고는 잘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평가에 관해서라면 일가견이 있는 우리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지 하는 일 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다.   


그래, 사람이 살면서 취미라도 하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것 저것을 닥치는 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기타도 배워보고, 캘리그라피도 해보고, 도자기도 구워보고, 음식도, 빵굽기도 배웠다. 다행히 나와 잘 맞는 취미 하나를 찾았다 싶었을 때, 170일간의 기나긴 파업이 끝났다.   


몇 달 시도했다 손이 아파 포기한 기타
나름 소질을 보았던 슈가케이크 만들기

나는 시사매거진 2580팀으로 복귀했다. 회사는 파업 전보다 더 어려운 시기로 접어들었다. 많은 동료들이 보도국 밖으로 쫓겨났고, 회사는 대체 인력을 고용했다. 꼭 써야만 하는 기사를 쓰기가 더더욱 어려워졌다. ‘공정방송’을 하겠다며 이렇게 오랫동안 싸웠는데, 전보다 일을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보도제작국에선 매일같이 기사를 망치려는 부장과 부원들 사이의 싸움이 계속됐다. 취미고 뭐고, 다시 나는 딴짓은 1도 모르는 똥멍청이로 돌아왔다. 아니 전보다도 일에 점점 더 집착하게 됐다. 애타는 마음과는 다르게 회사는 점점 망가져만 갔다. 매일이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하는데 눈이 갑자기 너무 아프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결막염이 왔나.' 다음 날 안과에 갔다. 안과 선생님은 내게 결막염은 맞지만, 내가 가야 할 병원은 따로 있다고 했다. 안면마비가 온 것 같다는 것이었다. 급히 근처 내과에서 의사소견서를 받아 찾아간 종합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은 내게 얼른 일을 쉬라고 했다.


“이번 주 방송인데요.”  

“이번 주 방송이고 뭐고, 지금 바이러스가 신경 조금만 안쪽으로 더 먹어 들어갔으면 몸까지 마비될 뻔 했어요. 빨리 회사에 말하고 쉬세요. 안 그럼 얼굴도 안 돌아와요.”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을까.

안면마비, 사실 뭐 그리 큰 병도 아니건만, 의사 선생님의 말에 나는 한 대 세게 얻어 맞은 것 같았다.   


일이 조금만 잘못돼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회사가 망가지는 걸 마치 내가 망가지는 것처럼 느끼는 것. 쉬는 날에도 일과 나를 정신적으로 분리하지 못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딴짓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이로부터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딴짓에도 DNA가 따로 있나

두 달 간의 병가 이후, 나는 보도 관련 부서 밖으로 쫓겨났다. 물론 열심히 새 부서에 적응하려 노력했고, 배운 것도 많았지만 일에 정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보도 관련 부서에 있을 때보다 쉬는 시간은 더 늘었다. 그제서야 나는 잊고 있던 ‘딴짓’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쉬는 주말마다 무언가를 하러 나섰다. 돌이켜보면, 몰입할 어떤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때가 처음이었다. 내 안에도 딴짓을 할 수 있는 DNA가 조금은 있었다는 걸. 나에게도 무언가를 하는 동안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딴짓을 할 때 내가 즐겁다는 걸. 내 표정이 다르다는 걸. 딴짓이라는 게 내 삶을 건강하게 한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한동안 열심이었던 도예


지난 해 말, 끝날 것 같지 않던 기나긴 암흑의 세월이 끝나고, 나는 다시 사회부 기자로 돌아왔다.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어렵게 다시 찾은 기회이다 보니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오랜만에 하는 일이다보니 재미있다는 생각도 든다. 관성이라는 건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건지, 다시 쉬는 날에도 자꾸만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 가지 장애물이 더 생겼다. 나이가 들다 보니 더욱 게을러진 것이다. 딴짓도 마음을 먹고 또 먹어야 겨우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다. 나는 이제, 의무적으로라도 딴짓을 좀 해야겠다. 


딴짓 하나를 하려고 하면서 이렇게 장황한 글이 필요한 걸 보니, 아직은 돌아갈 길이 먼 것 같다.


2018년 1월 나의 첫 브런치.

딴짓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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