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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정 Nov 04. 2018

글쓰기 리즈시절은 어디로 갔나

왜 내 글은 재미가 없을까

“여보세요? 양남초등학교 교무실이죠?

저 졸업생인데 뭐 하나 여쭈어봐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1990년대 교내글짓기대회 수상작 모음집이 보관돼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새벽 봉창 두들기는 소리도 아니고.

‘교내글짓기대회 수상작 모음집’이라니.

졸업한 지 20년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


하지만 나름 절박한 마음이었다.

몇 달 간 한 자도 쓸 수가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기사’를 빼곤)

내내 나를 괴롭힌 이 한 줄의 의문 때문이었다.


‘왜 내 글은 재미가 없을까.’


서점에서 온갖 에세이란 에세이는 다 사서 읽어보고,

브런치에 올라온 수많은 작가들의 글을 읽어보아도,

세상에 이렇게 재미나게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많고 많은데

왜 내 글만 유독 이다지도 재미가 없단 말인가.


‘교내글짓기대회 수상작 모음집’은 나를 몇 달 간의 몸부림 속에서 꺼내줄 마지막 카드였다.


어렸을 때 한 가닥 안 했던 사람이 몇이나 있었겠냐마는, 나는 공부보다도 글쓰기에 자신 있는 어린이였다. 교내글짓기대회 전 날이면, 동네 극성 아줌마들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소정이가 이번엔 ‘운문부’에 나갈 건지, ‘산문부’에 나갈 건지를 물어보곤 했다. 5개 학교 대표들이 모여 글쓰기를 겨루는 ‘5지구 백일장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해 무려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떻게 글을 잘 썼던 걸까.


돌이켜보면 나는 공상에 자주 빠져있는 아이였다. 그 시절 내가 상상한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예를 들면 이렇다.

동네 구멍가게에는 주인 아주머니가 돈통을 놓고 앉아있는 골방이 있었는데, 그 안쪽에 있는 문을 열면 딴 세상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다. 어떤 날은 푸른 잔디가 깔린 큰 저택 마당, 어떤 날은 금이 꽉 들어찬 금고로 이어지는 계단의 모습을 떠올렸다. 온 동네 아이들이 밥 먹듯이 드나들던 구멍가게 주인은 왠지 돈을 많이 벌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문이 열리는 걸 아무도 본 적이 없는 동네 큰 나무 대문 집에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괴짜 노 과학자가 살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괴짜’라는 말 뜻도 정확히 모르면서 ‘저 안에는 괴짜가 살고 있는데 어린 애들을 잡아먹을 수도 있다’ 뭐 이런 이야기를 지어내 나이 어린 동생들을 겁주기도 했다.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도 많이 했다. 몇 십 년 뒤에는 해저에도 도시가 들어서고, 롤러코스터처럼 이어진 튜브를 타고 사람들이 둥둥 떠다닐 거라고 생각했다.


호기심도 많았다.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어떤 집에 누가 사는지 염탐했고, 학원이 있던 상가 꼭대기나 학교 근처 외진 골목을 쏘다니며 무서운 이야기를 떠올리곤 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했다. 엄마는 종종 구두를 수선집에 맡기고 오라고 시켰는데,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심부름이었다. 구둣방 할아버지가 구두를 고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글짓기 대회에서 구둣방 할아버지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구두를 고쳐주어서인지, 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계신 것 같다'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이후 교내글짓기 대회에 ‘구둣방 할아버지’라는 제목의 패러디 글이 여러 편 나오기도 했다. (동네마다 구둣방은 많았을테니)  


보고, 듣고,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됐기에 글짓기 대회 시간은 내게는 일종의 놀이와도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야기로 풀어내기 시작한 건, 엄마의 한 마디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엄마, 내일 학교에서 글짓기대회를 한 대. 근데 글은 어떻게 쓰는 거야?”

첫 글짓기대회를 앞둔 날, 나는 엄마에게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물었다.

“글은 솔직하게 쓰면 되는 거야. 네 머릿속 마음속에 있는 걸 그냥 솔직하게 쓰면 돼. 그게 제일 좋은 글이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내 글이 재미가 없어진 건 상상력이 부족해진 탓일까. 호기심이 고갈된 탓일까. 아니면 솔직하지 못한 탓일까. 지난 세월을 살며, 본 것도, 들은 것도, 겪은 것도 더 많아졌는데. 아니면 생각이 너무 많아서일까. 겁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답을 찾지는 못 했지만, 오늘만큼은 용기를 내어 허접한 글이라도 하나 써보았다.


양남초등학교 시절 글쓰기 비결을 찾아보겠다던 계획은?


물론,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글을 잘 쓸 수 있게 될까.

아, 나의 글쓰기 리즈시절이여.


덧.  

대문 사진은 나름 외모의 리즈시절이라 생각하는 때의 것.

그러고보니, 리즈시절은 돌아오지 않기에 리즈시절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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