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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요리치료연구소 Mar 24. 2017

자폐어린이가 알려주는 열가지 이야기

자폐어린이가 알려주는 열 가지 이야기

[어른들이 알아야 할 자폐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엘런 노트봄 지음 신홍민 옮김 한울림스페셜 2008  



하나, 나는 무엇보다 먼저 어린이예요.

자폐증은 내가 가진 전체적인 특성의 한 면일 뿐이에요. 그것만으로 한 인간인 나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는 마세요.

나는 아이니까 아직은 많은 가능성이 있어요. 앞으로 내가 어떤 능력을 갖추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하나의 특징만 가지고 나에 대해 판단한다면, 많은 것을 놓칠 수 있어요. 이 아이는 어떤 일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어떻게든 나에게 전달되면, ‘에이, 노력한다고 되겠어?’ 하고 나도 지레 포기해버릴 테니까요.  


둘, 난 감각인지에 장애가 있어요.

매일 벌어지는 평범한 광경, 소리, 냄새, 맛, 감촉 등에 여러분은 별다른 느낌이 없을지 몰라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줄 수 있어요. 내가 살면서 접할 수밖에 없는 주위환경이 나에게는 큰 부담이 되거나 내 특성과 맞지 않아 부딪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여러분의 눈에는 내가 수줍음을 타거나, 아니면 도전적으로 보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건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일 뿐이에요. 식료품가게에 한번 들르는 일조차도 지옥에 가는 것만큼이나 싫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어요.  


셋,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꼭 구별하세요.

어른들 말을 일부러 듣지 않으려는 게 아니에요. 난 단지 말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에요. 여러분이 방 건너편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이 내게는 이렇게 들려요. “@7*&%#, 영희, #7*%+” 그러니 반드시 나한테 직접 와서 알기 쉽게 말해주세요.

“영희야, 이제는 책을 네 책상에 올려놔. 점심 먹을 시간이야.” 이렇게 말 해주면, 여러분이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음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러면 훨씬 더 쉽게 어른들의 지시에 따를 수가 있게 되겠지요.


넷, 난 구체적으로 생각해요.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뜻이지요.

“눈 좀 붙여!” 이렇게 말하지 마세요. 잠을 자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난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할 거예요.

“그건 식은 죽 먹기야.” 이런 말도 그래요. 일이 쉽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지만, 그 말을 들으면 나는 죽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고 할 거에요. 관용어, 곁말, 뉘앙스, 두 가지로 해석되는 말, 함축적인 뜻, 은유, 넌지시 하는 말, 비꼬는 말은 보통 나에게 효과가 없어요.  


다섯, 나는 어휘력이 부족해요. 그러니 인내심을 가져주세요.

나한테 지금 필요한 게 뭔지 말하는 게 쉽지 않아요. 나는 내 감정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때가 많거든요. 나는 지금 어쩌면 배가 고픈데 짜증까지 나있고, 실망스럽고, 무언가에 당황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장은 그런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그러니 위축되거나 흥분하거나 아니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드러내는 내 몸짓에 주의를 기울여 주세요.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내 입에서 내 나이의 발달단계를 훨씬 뛰어 넘는 말이나 대사가 쏟아져 나올 때도 있어요. 이럴 때는 내 말이 약간은 교수나 영화배우가 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몰라요. 이럴 때 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부족한 언어능력을 보완하기 위해서, 주위에 그런 말이 들릴 때마다 외워두었기 때문이에요.  


여섯, 내겐 말이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난 시각에 의존해요.

어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냥 말로 시키기보다는 하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좋아요. 여러 번 반복해서 보여주면 더욱 좋지요. 반복해서 보면 내가 배우기가 훨씬 쉽거든요.

내가 볼 수 있도록 시각일정표(visual schedule)를 만들어주면 하루의 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돼요. 어른들도 하루 일정표를 이용하듯이 나도 일정표가 있으면 다음에 할 일이 무엇인지 힘들여서 기억하지 않아도 되요. 한 활동에서 다음 활동으로 더 자연스럽게 넘어 갈 수가 있지요. 또한, 내가 시간을 관리하고 어른들의 기대에 따르는 데도 도움을 줄거에요.  


일곱, 내가 할 수 없는 것 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세요.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아이구나’ 또는 ‘고쳐야 할 점이 많은 아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어요. 이럴 때 난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어요. 아마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거에요.

나에게서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세요. 그러면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어떤 일을 하는데 오로지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세상에 거의 모든 일이 그렇지 않나요?  


여덟, 다른 사람과 사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어른들의 눈에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놀고 싶지 않아 운동장에서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요. 아니에요. 그건 내가 말을 걸거나 놀이에 끼어드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상황에 대처하는 법도 알려주세요. 다른 아이들이 발야구 같은 공놀이를 하고 있을 때 나와 함께 헤 보라고 아이들한테 이야기 해 주세요.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놀수 있다면 나는 기쁠 거에요. 시작과 끝이 확실하게 정해진 놀이를 할 때, 나는 최선을 다 할 수 있어요.

나는 얼굴 표정이나 신체언어, 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법을 몰라요.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적절하게 행동하는 방법을 필요할 때마다 가르쳐주는 사람에게 나는 고마움을 느껴요.  


아홉, 내가 자제력을 잃는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세요.

어른들은 내가 자제력을 잃었다거나, 발끈 화를 냈다거나, 짜증을 부렸다고 쉽게 말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가 여러분보다 훨씬 마음이 좋지 않아요. 하나 또는 여러 감각에 지나치게 많은 부담이 쏠릴 때 내게서 그런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에요.

내가 자제력을 잃은 원인을 알아낸다면 미리 방지할 수도 있어요. 일지를 만들어서 시간과 주위환경, 같이 있던 사람과 행동 등을 기록해두세요. 그러면 어떤 행동유형을 발견할지도 몰라요.  


열, 나를 무조건 사랑해주세요.

“내 아이가 이렇게만 해주면…….” “왜 저 아이는 이걸 하지 못할까?” 제발 이런 생각들은 떨쳐버렸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도 부모님이 여러분에게 걸었던 기대에 그대로 따라가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누군가 그런 부족함에 대해 자꾸 기억하게 만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거예요.

가족이 뒷받침 해 주지 않으면 내가 자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적어져요. 가족이 도와주고 이끌어주면 그 가능성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커질 거예요. 그렇게 자라겠다고 약속할게요. 난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에요. 나를 무조건 사랑해 주세요.


자폐어린이가 알려주는 열 가지 이야기

[어른들이 알아야 할 자폐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엘런 노트봄 지음 신홍민 옮김 한울림스페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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