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직은 너무 썰렁하고 추운 곳
나에게 아지트가 생겼다.
아지트가 필요해, 우리 또래의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 나이에 혼자 조용히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카페에 가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차려 입고 카페 나가는 것도 귀찮을 때 있지 왜. 그렇다고 집에서 입던 옷차림으로 가자니 그래도 영업하는 집인데 어중간한 아줌마, 아니 할머니지. 어중간한 할줌마(할머니와 아줌마 사이)가 우중중한 차림으로 가면 사장님이 싫어하지.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해봐도 나도 싫을 거 같아. 그래서 있잖아 왜 집안 일하다가 부아가 나거나, 또는 밖에서 일 끝나고 기운은 빠지는데 곧장 집으로 일찍 가기 싫은 날, 조용히 나 혼자 사색에 잠기고 싶은 날에 나만의 아지트에 가서 몸도 마음도 좀 쉬었다가 가고 싶은 그런 거. 그런 곳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매일 가는 카페의 커피갑을 모으면 한 달 임대료가 되려나.”
우리는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을 이야기하며 허허롭게 웃었다. 아지트를 갖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우리는 공감했고 동의를 표했다.
나의 아지트가 생겼다. 좋다. 명품가방을 구입해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 마음보다 더 많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웃고 떠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었던 친구의 바램이 나에게 왔다. 집에서 입던 옷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걸어와도 무난한 거리에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이 곳, 텅 빈 공간에 오래 된 책상과 노트북과 모니터를 데리고, 아니 모시고 왔다. 그리고 오래 된 커피 메이커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뭐 아쉬운 대로 커피를 내려 먹어야 되니 구석에 처박혀 있던 커피 메이커를 가지고 왔는데 영 아니다 싶다. 조만간 새로 구입해야 될 것 같다. 그리고 혹 라면이라도 끓여야 되니 냄비 하나, 수저 한 벌을 챙겼다. 이러다가 침대도 놓을 판이다. 아무튼 나는 이 경이로움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모르지만 썰렁한 공간을 날마다 한 움큼씩 온기를 채워 넣을 것이다.
아지트 생활 1일.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직장인처럼 9시에 출근을 했다. 집에서 나와 부지런히 걸으면 15분에서 20분 사이에 도착 할 수 있는 곳, 아지트를 오고 가는 걸음을 아침운동처럼 해 보려고 마음을 먹는다. 삐리릭, 문을 열고 들어 선 나의 아지트에서의 첫 작업은 노트북을 연결하여 음악을 크게 열어 놓는 일이었고, 임악을 들으며 테이블과 의자에 발 커버를 입히는 일이었다. 지난번에 테이블 셋팅하면서 바닥이 끌리는 것이 많이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커버를 구입해서 하나씩 입히고 나니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노트북과 모니터를 닦고 테이블을 닦고 그러면서 내 공간을 둘러보았다. 테이블과 의자와 노트북만 있지만, 오고가는 차들과 사람을 구경할 수 있는 창밖을 내려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발이 시려 왔다. 바닥이 냉골이다. 아직 불을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꽁꽁 닫아 둔 집이라 공기는 썰렁하지 않아 견딜 만한데 안 그래도 시린 발이 저려 왔다. 사다 놓은 욕실 슬리퍼를 꺼내 신었다. 그런데 욕실 슬리퍼가 너무 미끄럽다. 발바닥에 착 달라붙는 게 아니라, 발과 슬리퍼가 따로 노는 게 잘못하면 삐끗 발을 삘 것 같았다. 이런, 이곳에서 구입한 물건 중에 잘못 된 선택인거 같다. 그럼에도 욕실에서 잠깐 신을 것이라고 너그럽게 이해하고, 실내에서 신을 털신을 하나 장만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가스렌지에 냄비를 올려 물을 끓이고 일회용 드립 커피를 내렸다. 그런데 컵도 없다. 지난 번 갖다 놓은 보온통에 커피를 내리고 노트북 앞에 노트를 펼치고 연필을 올렸다. 딱히 뭘 적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던 지금 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써 보는 것이다.
다시 공부 1일차.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면서 할 일이 늘었다. 예전에 30대. 아 까마득하다. 한**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많이 들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글은 내 이야기를 나의 생각대로 자연스럽게 쓰면 된다는 생각을 건너 다시 글쓰기 강의를 다시 듣고 싶어졌다. 인터넷 강의를 찾아보았더니 초급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클릭을 하고 강의를 듣는 것도 1일이 되었다. 강의를 듣고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은 꾸준하게 글을 쓰고 책을 읽어야 되겠다는 작은 소망을 말한다. 나는 나의 아지트에서 이러한 일을 이루어 보려고 한다. 아지트를 오고 가면서 일어나는 생각과 내가 지금까지 해 왔고 잘하는 일을 계속하려고 한다. 세상은 변했고 나는 그 흐름에 부지런히 따라 가려고 노력중이다.
갑자기 춥다. 오후가 되니 실내의 공기도, 바닥도 싸늘해졌다. 집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내려가서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새우깡을 구입해서 올라 왔다. 물을 끓여 따스하게 라면을 먹었다. 생각해 보니 아침에 토스트 두 조각 먹은 게 생각났고 너무 흥분(?)해서 점심을 먹지 않았다. 오늘은 5시까지 못 있을 거 같아서 일찍 들어가야겠다.(집에 가서 또 할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 적어 본 나의 아지트 1일. 이 글을 마무리하고 퇴근해야겠다. 라면 국물 덕분으로 몸이 따뜻해졌다. 난방? 버틸 수 있는 데까지 아껴 보리라.
사무실을 정리한 지 3년이 훌쩍 넘었다. 애써 외면해 버린 지난날의 일들이 왜 이 공간에서 생각이 나는지. 3년 2개월 만에 다시 내 공간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