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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대디 Dec 27. 2019

아내와 뜨거운 밤

눈도 깜빡일 수 없고, 손을 뗄 수 없는 그런 밤





최근 들어 아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웃음기는 사라지고, 자꾸만 심심하다고 했다. 육아 슬럼프.. 같은 건가? 아내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아내에게 개인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오후 9시 아기가 잠들 시간이 오면 아내는 안방으로, 나는 서재로 향한다. 모유 수유를 하기 때문에 아기를 재울 때 나의 역할은 거의 없다. 나는 이때 잠깐 게임을 하거나 밀린 일을 하거나, 만화를 그린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처가댁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 식사 후 처남이 닌텐도 스위치로 테트리스를 하자고 했다. 아내는 도통 게임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 아내도 학창시절 유행하던 테트리스는 해봤나 보다. 아내는 승패와 상관없이 테트리스하는 것 자체를 즐거워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가 닌텐도 스위치를 사고 싶다고 했다. 테트리스가 재밌다고... 테트리스를 하기위해 닌텐도 스위치까지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내가 좀 더 알아보겠다고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들뜬 아내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PC로도 같은 버전의 테트리스 게임이 있었고, 짬짬이 모아둔 용돈으로 게임 타이틀을 구매했다. 아들이 잠든 어느 날, 아내에게 거실로 나오라고 톡을 했다. 짜잔~ 아내는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침 식사 후 아내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육아 슬럼프가 왔던 이유는 사실 아주 작은 상실감 같은 것부터 시작한 것 같다고. 엄마 껌딱지가 된 아들, 때마침 찾아온 남편의 공모전 준비와 외주들로 인해 서재에서 나오지 않는 남편. 그동안은 함께 있어 느끼지 못했던 작은 서운함이 눈덩이처럼 조금씩 불어난 것 같다고. 사실 아내에게는 내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아내에게 오전이나 오후 중 원하는 시간대를 말해주면 2시간 동안 아기를 전담 마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시간 동안 밀린 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잠시 외출을 하라고. 애기 재우는 밤 시간을 이용해서 짬낸 2시간의 공백을 채우겠노라고. 아내의 눈이 반짝였다. 


'탁, 탁, 탁' 

아내는 2시간의 자유시간에 맘 편히 이유식을 만들고 있다. 밀린 가계부를 정리하고, 가끔 반신욕을 한다. 나는 아내에게 더 적극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말해봤다. 집안일하지 말고, 즐기는 시간으로 만들라고. 아내는 말했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거야. 마음 편히 내가 하고 싶은 게 이거였어.' 아내는 아내로서의 역할을 더 잘하고 싶었나 보다. 그 역할을 감당하기에 버거워진 그 시점부터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었나 보다. 내가 원하는, 제시하고 싶은 무언가를 아내에게 주장하지 말기로 했다. 그저 아내가 그날 뿌듯하고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 그것에 내가 생각한 방향과 다르더라도 존중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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