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의 일주일, 조리원에서의 이주일을 보내고 집으로 온 첫날. 조리원을 먼저 나온 엄마들이 집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난 뒤 다른 엄마들에게 처음으로 전한 단어를 나도 입에 올리게 되었다. 그 단어는 바로 ‘멘붕’.
조리원에서 밤에 수유를 하지 않더라도 새벽 2시까지, 또 아침에도 종종 가서 들여다본 내 아들은 언제나 쌔근쌔근 잘 자고 있었다. 순하다, 기특하다, 예쁘다, 온갖 좋은 단어들이 머릿속으로 지나갔고, 이 정도만 하면 집에 가서 아들을 잘 돌볼 수 있으리라 여겼다.
조리원 퇴소 후, 친정집 내방에 놓인 아기 침대와 나의 침구가 나란히 있는 걸 보면서 ‘그래 아들아, 둘이서 잘해보자.’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신생아실에서 얌전했던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난 나이든 엄마고, 임신과 출산을 기다려왔으므로 할 수 있으리라, 겪지 않은 일에 자신감을 가졌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바로 그날 밤 산산이 부서졌다.
아이는 밤새 울었다. 도대체 새벽녘 찾아갔을 때마다 본 얌전한 내 아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기저귀도 갈아주고, 젖도 물려보고, 젖양이 모자라서 그렇겠구나 싶어 분유도 타서 먹였지만 아들의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결국 맞은 편 방에서 자던 엄마가 온 뒤에야 조금은 해결이 되었지만 그날밤 내가 느낀 막막함은, 처음 출산을 경험했을 때 호르몬 이상으로 눈물을 줄줄 흘려대면서 느꼈던 막막한 기분과는 완전히 달랐다. 출산의 경이로움과 내가 사람을 낳았다는 놀라움, 세상에서 잃고 싶지 않은 존재가 생겼다는 두려움은 그저 한편의 시와 같은, 산모이기에 겪은 아름다운 감정이었을 뿐, 지금부터 느낀 나의 막막함은 이제부터 헤쳐 나가야 하는 리얼 와일드 월드였다.
아이가 울면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의 유일한 화법인 그 울음이 말하고자 하는걸 내가 알아듣고 아이가 원하는 걸 해주고 싶은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일방적인 소통이라는 생각이 든 건, 잠을 못자 멍한 아침이 되어서였다.
아이는 울고, 나는 아이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떠올려보니, 의사소통 안되기로는 신생아만한 게 없다는 생각도 들고, 전적으로 아기가 하는 말인 울음을 내가 알아듣고 이해해줘야만 하는 이 일방적인 관계에서 나는 무조건 약자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날 새벽, 친정엄마 품에서 다소 안정을 찾은 내 아이를 보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는 그 무력감 앞에서, 나는 또 엄마에게 나 역시 같은 존재로 태어났고 자랐을 거라는 생각에, 또 한 번 막막해졌다. 어떻게, 이 은혜를 보답해야 하나. 아이를 낳고 보니 내가 생각하는 건 아주 단순해졌다. 내 아이를 사랑하고, 내 엄마에게 고마워하는 일.
그리고 하나 추가한다면, 나는 내가 여태 아이를 키운다고만 생각했으나, 아이 역시 나를 엄마로 키워간다는 것. 앞으로의 육아에서 나는 또 무엇을 느끼고 엄마로 성장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