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아버지와는 으르렁 대기만 했던 애증의 관계라 생각했는데,
참 이상하게도 아버지와의 따뜻한 추억이 많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어렸을 때 몹시 활짝 웃고 찍은 사진이 있는데,
자전거 뒤에 앉아서 아버지 허리춤을 붙잡고 다리를 쭉 뻗은 채 환하게 웃는 내 얼굴.
앞에는 동생이 보조 안장에 앉아 있는, 사진은 엄마가 찍었을 법한 그런 단란한 장면.
이제는 손자를 보신 지금도 가끔 아버지는 내 어린 시절을 아련하게 더듬으면서
"나 출근도 못하게 저것이 교문리 사거리까지 쫓아왔는데..." 하고 말끝을 흐리신다.
아버지를 너무너무 좋아하던 꼬맹이 소녀는, 사춘기 이후 아버지 말씀마다 토를 달고
아버지 하시는 것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아줌마가 되었다.
우리 아빠 너무 좋아~~를 외치던 소녀는
우리 아빠는 왜 그래를 더 많이 하던 처녀로 자랐고, 한동안 아버지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 아버지가 출근하셨다가 잠깐 집에 들르셨는데, 갑자기 거실 등 스위치 위에다가 바스락바스락 뭔가를 붙이시는 것이 아닌가.
"아빠 뭐예요?"
아버지는 다 붙이셨는지 내쪽으로 몸을 돌리셨는데, 그 뒤로 보이는 건 손에 들고 흔들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태극기. 지금이야 태극기의 쓰임에 대해 각자의 정치적 가치관이 다르지만 몇해전만 해도 국기엔 보편적 국민의 가치관이 담겨있었다.
"누가 이걸 바닥에 버렸더라고. 태극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되는데. 내가 얼른 가져왔다."
난 그 순간... 이런 아버지 아래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참으로 복 받았다 생각했다.
아버지의 사소한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삶의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기준,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 나는 이런 것들을 아버지를 통해 온 몸으로 배워왔단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해 직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에 돌입하셨다.
진단을 받고 처음으로 병원으로 가는 아침,
여느 날처럼 아버지는 집안 곳곳의 불을 끄면서 전기를 아껴야 한다고 다짐을 하셨다.
지나친 알뜰함이 그동안은 그렇게 싫었는데,
집안 곳곳을 단속하는 아버지의 손길을 보면서,
나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 따뜻한 아버지의 세상 안에서 얼마나 안락하게 살아왔는가... 하고 깨달아서 가슴이 뭉클, 왈 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날 병원으로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내게 참 잊을 수 없는 잔상으로 남아있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위아래 다른 디자인으로 각각 어울리게 멋지게 차려입었지만, 병원으로 가는 아버지도 떨리고 무서우셨을 테고 보내는 나도 무섭고 외로웠다.
아버지가 계셨기에 내가 이렇게 클 수 있고
내 아들 데리고 일상의 잔소리를 하며 살 수 있다는 것, 가슴 벅차게 감사한다.
아빠, 사랑해요.
그리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