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
[그런데 판사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니 변호사에게 메시지가 와있었다.
오전에 변호사와 4차 재판에 제출할 서류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회의에 들어가는 바람에 대화가 끊겼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당황스러워서 바로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법원에는 3월쯤 정기 인사이동이 있어요. 인사이동에는 마찬가지로 판사도 다른 법원으로 이동하거나 하구요. 지금 4차 재판 날짜가 나오긴 했지만 만약 상대 쪽에서 4차 재판 때 우리에게 추가로 뭘 요구 한다거나, 혹은 판사가 더 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혹시라도 재판을 한 번 더 해야 한다고 하면 판결은 다른 판사가 할 수도 있습니다.”
“4차 재판이 1월이니까,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되면 추가 재판을 2월로 요청할 수 없을까요?”
“구정이 있는 달에는 재판이 많이 열리지 않아요. 일단.. 그럴 일이 없길 바라야죠.”
전화를 끊고 난 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 인생의 결말을 누가 결정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이야기를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 같은데,
법원의 인사이동으로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다니 무력감이 느껴진다.
그동안의 재판 기록, 진술, 증거, 그리고 내 표정까지 누가 기억해주는 걸까.
여태까지 싸워온 흔적은 문서로 남아있겠지만 그 여정을 모르고 인계 받을 새로운 판사가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나는 분명 재판을 받는 입장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일련의 과정이 행정 절차의 일부가 되어버린 게 견디기 힘들었다.
서류 몇 장, 증거 몇 개, 몇 번의 재판, 혹시 모를 판사의 변경.
내 마음의 속도와 다른 법원의 시간 사이에서 나란 존재는 점점 더 흐려지고 있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환기를 시킬 겸 창문을 열었다.
겨울 바람이 거실로 밀려 들어온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는 순간, 마치 내가 투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아내와의 싸움을 시작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거짓을 바로잡고 싶었고, 배신에 대한 최소한의 정의를 확인 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의라는 게 종이 위의 문장처럼 느껴졌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업무 중 하나일 뿐이다.
커피를 타며 휴대폰을 보니 저녁 여덟 시가 넘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났었네. 배도 고프지 않다.
오늘은 이상하게 시간 감각이 없었다.
커피 잔을 들고 조용히 앉아있는데,
내 삶의 모든 게 ‘대기 상태’에 들어간 것 같았다.
재판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이 싸움이 정말 끝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끝이 오긴 할까.
온다면 이 끝남 뒤에 나는 무엇으로 남아있을까.
창문을 열어 놨지만 밖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세상 참 고요하구나.
그래서 내가 무너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나 보다.
커피는 반도 마시지 못하고 남겼다.
양치질을 하고 거실 불을 끈 뒤 방에 들어가 누웠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12월 31일.
올해 마지막 날이었다.
모든 연말 모임을 취소하고 혼자 버텼지만 그날만큼은 사람 냄새가 그리웠다.
약속을 잡고 친구와 대학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늘 회사에서 다들 조기 퇴근을 시켜줘서 시간이 좀 남아 집으로 갈까 하다가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다. 뭐 라도 보람차게 올 해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었다.
대학로에 도착하니 이곳은 올 해의 마지막날 답게 젊은 아이들이 떼로 모여 북적북적 했다.
누군가 약속이 늦었는지 빠르게 어딘가로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젊음이란 참 좋다.
저 모습마저 당연해 보이니까.
내가 저렇게 뛰었다면 누군가는 저 사람 무슨 일이 있나 보다 싶을 거다.
친구는 5분 정도 뒤에 지하철에서 내린다고 했다.
대학로 초입에 붕어빵을 파는 노점이 있었고 사람들이 줄을 서있어서 나도 따라 섰다.
오랜만의 붕어빵이다.
내 것 하나와 친구 것 하나를 사고 계산을 하니 막 친구가 도착했다.
뭘 먹을까 하다가 쭈꾸미 집에 들어갔다.
매운 걸 못 먹는데 오늘은 자극적인 걸 먹고 싶었다.
뭔가 살아있다는 자극을 받고 싶었던 마음으로 기억한다.
아내가 집 나간 상황을 알고 있는 친구는 나를 위로해주었다.
2차로 맥주 집에 이동해서 병 맥주 네 병을 시켰다.
맥주를 많이 마시고 싶다기 보단 네 병을 시키면 할인이 있어서 시켰다.
오랜만의 서양맥주다.
그러고보니 20대 때는 맥주창고 같은 곳을 가면 비싼 서양 맥주를 마셨는데,
지금의 내 또래 아저씨들 테이블을 보면 전부 국산 맥주였다.
저 사람들은 돈을 벌면서도 왜 저런 싼 걸 먹지 싶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 마음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어있었다.
가게 안에 다트 기계가 있어 친구와 술값 내기를 했다.
아슬아슬한 점수차로 내가 이겨 얻어먹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배도 부르고, 따듯하다.
밖으로 나가니 인생네컷 가게가 보여 친구에게 사진을 찍자고 했다.
친구가 무슨 둘이 사진이냐고 했지만 오늘을 남기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올 해의 마지막을 기록하지 않으면 올 해가 나에게는 안 좋은 기억으로만 가득할 것 같아 친구를 졸라 사진을 찍었다.
친구와 헤어지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나누었다
내년엔 복이 올까?
올 해엔 복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는데.
아니야 오겠지.
와야지.
와야만 한다.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어느새 새해가 되었네.
이제 정말 한 해가 끝났구나.
올해는 잃는 해였다면,
내년은 잃은 걸 인정하고 버티고 극복하는 해가 되겠지.
그래 천천히 극복해보자.
극복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