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12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이를 위해 텅 빈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했다. 아이가 있기 전부터, 나는 빼빼로 데이를 기점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했고, 구정이 끝나면 정리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모형이지만 작고 푸른 나무와 각종 귀여운 장식품, 반짝반짝 빛나는 전구가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었다.
아마 본가의 이유가 클 것이다. 나와 동생은 나이차가 많이 나서, 내가 고등학생 때도 본가는 연말에 항상 트리가 있었다.
아이가 이 집에 오면, 이걸 보고 좋아하겠지? 아이의 그 미소를 볼 연습을 하며 트리에 불을 켰다. 불빛이 거실을 채웠지만, 온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연말이 이렇게 조용할 수도 있구나.
밖에선 사람들 웃고 떠들고, 어딘가에서는 “올해도 수고했어요” 라는 말이 오가겠지만 내게는 올해가 끝나는 게 아니라, 나의 세상이 끝나는 느낌이었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간 뒤, 나는 모든 연말 모임을 취소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그 시끌벅적하고 따뜻한 자리에서 돌아왔을 때 이 집의 공기가 더 차가워질 게 두려웠다.
TV 소리도 없고, 아이의 웃음도 없다. 난방기 소음만이 유일한 소리였다. 트리의 반짝이는 불빛이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크리스마스가 와도, 새해가 와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내게 이 겨울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단어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시계가 새해를 향해 가는 동안, 내 시간은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올 해 크리스마스는 수요일이었다.
이브 날에는 정상 출근을 했고 회사에서 세 시쯤 업무 마무리하고 퇴근하라고 해서 집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낼 모레 봐요. 메리크리스마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직원들은 서로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며 저마다의 방향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길이 춥진 않았다.
다행히 아내가 크리스마스 날에는 아이와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내일 아이를 볼 수 있었고, 아이가 요새 푹 빠져 있는 캐릭터들의 장난감을 주문한 것이 현관 앞에 배송완료 메시지가 와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포장지를 사서 정성껏 포장해줘야지.
포장지를 들고 트리 앞에 앉아 네 개의 장난감 박스를 정성껏 포장했다. 괜찮다. 이 정도면 아이가 좋아하겠지 생각하며 포장한 박스를 트리 앞에 두고 사진을 찍었다.
저녁 일곱시쯤 되서 어플을 켜 배달 주문을 했다. 집에 냉장고가 없어진 뒤로 시켜먹는 배달 메뉴는 주로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는 걸로 한정되었다. 치킨이나 피자 같은 건 남은 것을 보관할 데가 없어 다 버려야 한다. 고민하다 김밥 두 줄을 시켰다.
기본 김밥 한 줄과 참치 김밥 한 줄을 먹으며 참 초라한 크리스마스 이브구나 생각이 들자 입맛이 사라져 반도 먹지 않았다. 앞으로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항상 이러려나.
다행히 냉장고가 없어도 상관없는 술은 있었다.
그래, 오늘 같은 날 한 잔 마셔야지.
그러고보니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뭘 했더라. 휴대폰을 열어 사진첩을 들어갔다.
아 맞다, 이혼 소송 초기 단계여서 아이한테 티 안내기 위해 일부러 더 다같이 다녔을 때 구나. 그 땐 눈이 왔었나 보다. 공원에서 아이와 눈사람 만드는 사진이 있었다.
작년 크리스마스도 아팠구나. 올 해도 아픈데. 내년엔 조금 괜찮을까.
술 맛이 떨어진다.
아이 사진을 더 볼까 고민하다 폰을 뒤집었다. 티비라도 있었으면 뭐라도 틀어 놨을 텐데. 많이 이른 시간이지만 그냥 자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공허함에 익숙해져야 했다.
크리스마스 당일,
패밀리 레스토랑 앞에서 아이와 아내를 기다렸다. 몇 분 뒤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쫄래쫄래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귀여운 녀석. 자기 몸에 비해 커다란 패딩을 입고 있는 모습마저 예뻤다.
“아빠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 아들도 메리 크리스마스.”
아이와 문 앞에서 인사를 한 뒤 아이를 안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아이와 나는 소파 자리에, 아내는 맞은편에 앉았다.
“아빠 그거 뭐야?”
아이는 아까 처음 봤을 때부터 내가 들고 있는 커다란 쇼핑백을 계속 흘긋 거렸다.
“아들, 혹시 산타 할아버지가 할머니네 왔다 갔어?”
“응. 트리 밑에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두고 갔어.”
하면서 아이는 어떤 장난감을 받았는지 자랑했다. 다행히 아내가 준비한 것과 겹치지 않았다.
“아빠가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로 나오니까 글쎄 선물이 트리 밑에 있는 거 있지? 산타 할아버지가 아들이 어제 어디서 자는지 몰라서 두 군데 모두 선물을 두고 갔나봐.”
어제 미리 찍은 선물이 놓인 트리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와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도 갔었나 보네?”
“그랬나봐. 이제 뭔 지 볼까? 아빠도 궁금하네?”
아이가 말하는 ‘우리 집’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쑤셨다. 하긴 할머니네 며칠 가 있었다고 작은 나이 평생동안 불렀던 우리 집이 금방 바뀔까.
“우와!”
네 개의 선물 박스에는 각 다른 캐릭터들이 들어있었고 모두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기뻐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따듯해 졌다.
“아빠는 어른이니까 선물 안 받지?”
“아빠한테 선물은 우리 아들인데? 오늘 이렇게 같이 만나니까 아빠도 선물 받은 거지.”
“그럼 다음 크리스마스에도 또 보자?”
“그래, 그러자.”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 앞에서 아내와 아이를 보냈다.
아이는 나에게 포옹을 해준 뒤 아내 손을 잡고 횡단 보도를 건넜다. 건너편에 도착한 아들이 뒤돌아 손을 흔들었고 나 역시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그렇게 점점 멀어지는 아이가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그 자리에 서서 아이를 보내 주었다.
집으로 들어오니 전구 설치 후 한 번도 끄지 않은 트리의 불이 약해지고 있는 건지, 낮이라 덜 밝아 보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희미해 보였다. 저 불을 끄고 싶지 않아 배터리를 갈아 꼈다.
크리스마스의 온기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집에 오는 길에 사온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바닥에 앉아 반짝이는 트리를 보며 홀짝였다.
아메리카노가 느리게 식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