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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의사 송태호 Dec 10. 2019

음주에 대한 몸의 반응
(오장 육부의 하소연)

동네의사 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某년 12월 某씨의 오장육부가 모여 회의를 열었다. 회의를 주재한 장기는 뇌선생. 금일 회의의  안건은 12월 들어 잦아지는 某씨의 음주에 대한 대책이다. 각자 하는 일이 바빠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작년에 일어난 음주로 인해 주인이 겪은 심각한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한 장기도 빠짐 없이 회의에 참석했다. 먼저 회의를 주최한 뇌선생이 발제를 한다. ‘ 작년 이맘 때 아무런 대책 없이 우리의 주인인 이 작자가 저지른 만행으로 여러 장기 여러분들이 심하게 고초를 당한 것이 사실 아니오? 올해는 이 시기에 미리 각자 해야 할 일을 정해서 작년과 같은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공사다망한 중에도 소집을 하였소. 격의 없이 좋은 의견들을 내면 내가 정리하여 작년과 같은 참사를 막아보고자 하오.’


생사가 달린 일이니 회의에 참석하긴 했지만 회의 중에도 각자 할 일은 해야만 하니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각자의 손은 자기 일을 하느라 바쁜 장기선생들이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제일 처음 간장선생이 나섰다. ‘ 누가 뭐래도 술이 들어오면 제일 고생은 내가 하는 것 아니오? 가뜩이나 이것저것 만들고 해독하고 할 일도 많아 쉴 틈이 없는데 이 때가 되면 만사를 제쳐 놓고 알코올을 분해 하는데 전력을 다 해야 하니 내 몸이 많이 축나는구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알코올을 무찔러도 소주 한 병을 분해하려면 하루 이상이 걸리지 않소? 1차,2차 차수를 거듭하다 보면 나는 며칠 내내 들어온 알코올 뒤치다꺼리 하느라 몸이 상하오. 게다가 2~3일에 한번만 마셔주면 그럭저럭 꾸려나갈 텐데 매일 새로운 적들이 몰아 닥치니 작년에는 결국 탈이 나지 않았소? 그 후유증으로 내 세포 사이에 지방이란 놈들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하는 일을 방해하니 이건 설상가상이요. 게다가 비타민이나 무기질등 알코올을 무찌르는데 꼭 필요한 자재가 지금 충분치 않소. 넋두리는 해 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는 상태요.’


한번 물꼬가 터지니 할 말들이 많아진 모양새다. 그 중 가장 빠르게 말을 받아낸 위장선생 ‘ 내가 한국사람 몸에 있어 만성염증을 달고 사는 거야 팔자려니 하지만 주인이라는 작자는 궤양도 앓은 적이 있는 판국에 꼭 맥주만 좋아하오. 낮은 도수의 술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위산을 분비하는데 궤양이 도질까 걱정이고 높은 도수의 술은 피가 날까 걱정이요. ‘ 말을 마친 위장 선생은 옆에 있던 소장 선생을 툭 친다. 장기들 끼리도 친분에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딴 생각 중이던 소장선생, 불의의 일격을 맞고 어버버 하다가 ‘ 사실 내가 알코올을 90% 정도 흡수하지 않소? 안주발이라도 충분하면 어떻게든 흡수를 막아 보겠는데 이건 뭐 그냥 깡 술이니.. 미안하오. 다 내 탓인 듯 하구려.’ 듣고 있던 식도와 대장선생도 거들길 ‘ 우리도 항상 염증을 달고 사는 형편이라오. 언제 피가 날 지 몰라 항상 긴장상태이지. 어쩌겠소? 이 몸에 사는 우리 죄인게지.’


한쪽에 있던 췌장선생이 나선다. ‘ 사실 내가 알코올이 쥐약이잖소. 술만 들어오면 내가 일이 하기 싫소. 이렇게 계속 일을 안 하다가는  당뇨까지 올까 걱정이요. 그리고 이 주인은 술만 마셨다 하면 뭘 그리 많이 먹는지. 소화효소를 내보내야 하는데 일이 하기 싫소. 이러다가 만성 췌장염 급기야 췌장암이 생겨 여러 선생들에게 피해라도 끼칠까 고민이요.’


회의 도중에도 하던 일을 멈출 수 없어 부지런히 일하던 심장선생이 한마디 거든다. ‘ 내 사정도 살펴주시오. 알코올만 들어오면 여기저기서 피가 모자라다고 해 일만 죽어라 하는구려. 과로로 내가 먼저 망가질 지경이오.’


주요 장기라고 전면에 앉아서 듣고 있던 폐선생 ‘ 그나마 내가 열심히 알코올을 분해해야 하는데. 해봐야 10% 밖에는 안되긴 하지만 그거라도 어디요? 간장선생에게는 도움이 될 텐데. 그런데 이 작자가 담배를 피워대니 그마저도 힘든 형편이요. 한마디로 내 코가 석자요.’


한 쪽 구석에 있던 피부선생과 신경선생, 신장선생, 뼈선생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지만 각 장기선생들의 하소연이 너무 거창해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조차 못하고 있다.


회의가 길어지자 뇌선생이 서둘러 결론을 낸다. ‘ 자. 자. 알코올이 들어오면 내 정신이 혼미해져서 여러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미안하오. 나도 이러다 치매가 올까 걱정이긴 하오. 내 어떻게든 주인에게 비타민과 무기질을 챙겨먹게 하고, 음주 전에 식사를 하게하며, 1주일에 2회 이상의 음주는 막아 보려 노력하겠지만 장담은 못하겠소. 아! 이 인간이 또 술 먹을 생각을 하는 모양이요. 어떻게든 살아남읍시다. 이만 해산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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