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냄새 때문이었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무취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여자 냄새가 났다. 달콤한 과일향이 섞인 여자향수 냄새였다. 그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 그때 남편에게 물어봤어야 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내 후각이 예민하다 생각했다. 남편을 너무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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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두고 친구들과 이런 얘길 나눈 적이 있다.
만약에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 거야?
진아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바로 이혼해야지.
얘기를 꺼낸 민정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말했다.
- 글쎄, 하룻밤 그냥 잔 것뿐이면 그나마 괜찮을 거 같아. 사랑하네 좋아하네 그러면 진짜 싫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이혼은 안 할 거 같아.
진아는 민정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 왜? 만약 바람을 피웠다면 당장 이혼해야지. 절대로 용서하면 안 돼. 어떻게 같이 살 수 있겠어?
진아와 민정이의 반대되는 답변이 꽤나 인상적이라 그런지, 그날의 대화내용이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나도 진아도, 민정이도 결혼을 했고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그날의 대화가 떠올랐다.
살기 싫을 거 같지만 그래도 이혼은 안 하겠다고 했던 민정이는 빛의 속도로 이혼했다. 그녀는 캠퍼스 커플이었던 남편과 결혼했고 딸을 낳고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았다. 그녀의 남편은 회사 신입 여직원과 바람을 피웠는데 남편이 잘못했다고 빌면 용서해 줘야지 마음을 먹고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은 이혼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민정이가 했던 말처럼, 하룻밤 잔 게 아니라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일이 생겼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며 바로 이혼하겠다고 했던 진아는 이혼하자는 남편의 요구를 거부하며 소송 중이다.
그녀는 소개팅으로 만난 직업 좋고 집안도 좋은 남자와 결혼했고 아들 둘을 낳고 잘 살았다. 그녀의 남편은 능력 있고 잘난 남자였다. 결혼 후, 여자문제로 계속 문제를 일으켰는데 그때마다 잘 수습하고 넘어가는 듯했다. 그러다가 또 여자문제가 터졌고 오히려 남편 쪽에서 이혼을 원한다고 했다. 진아 남편은 습관적으로, 아니 의도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혼은 안 할 거라 했던 민정이는 바로 이혼했고 바로 이혼하겠다던 진아는 이혼만은 안 된다며 버티고 있다.
그때 나는 어떤 대답을 했었지? 기억나지 않는다.
진아와 민정이의 상반되는 대답을 들으면서 혼자 생각하다가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건, '나는 어떻게 할까?' 가 아니었다.
외모에 신경 쓰는 사람도 아니었고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도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이야기할 때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친구들은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생각했고
나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만약에, 절대로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어떤 일이 생길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까.
그때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