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정학

1부: 압도적인 우위

by Felix Park


19세기 독일 통일의 주역이었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신은 어리석은 자들과 주정뱅이 그리고 미국인들을 특별히 돌보신다.’는 논평을 남겼다. 그의 이러한 논평은 비록 빈정거림의 일부였더라도 미국이 지닌 지정학적인 조건의 압도적인 우위를 어렴풋이 보여준다.


위치부터 자연환경까지 미국이 지닌 지정학적인 조건은 제국이 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압도적인 우위는 다음 세 가지로부터 기인한다: 1) 우호적인 자연환경, 2) 경쟁자로부터의 지리적인 고립, 3) 우호적인 자연환경에서 일찍부터 발생한 자급자족의 경제체제. 미국이 지닌 이 같은 세 가지 우위는 미국이 국제정치에 있어서 경쟁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조건들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자국이 지닌 지정학적 조건의 우위를 철저히 활용 및 방어하는 것에 국가전략의 초점을 맞추도록 만들어왔다. 따라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보환경을 살펴봄에 있어서 미국의 지정학과 국가전략을 살펴보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작업일 것이다.


미시시피 하천 유역: 제국의 심장


미국의 우위를 담보하는 첫 번째 조건은 중서부 지역을 관통하는 미시시피 하천 유역의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인류가 문명을 일구기 시작한 이래로, 하천은 수많은 제국과 국가들의 혈관으로써 그 역할을 해왔다. 미국 또한 이러한 보편적인 진리로부터 예외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지닌 하천 조건은 현대 그리고 역사상 그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그 크기와 비옥함에 있어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다는 것이다.


미시시피 하천 유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하천이 단순히 하나의 강이 아닌 가장 북쪽의 고지 미시시피 유역부터 뉴올리언스에서 끝나는 저지 미시시피 유역까지 6개의 대형 하천들의 결합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천 유역들은 단순한 하천 지대의 총합을 넘어서 물류의 원활한 유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연적인 수로 조건까지 동시에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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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nvironmental Concerns, Introduction of Oceanography

[Online] Available at http://www.iupui.edu/~g115/mod20/lecture02.html




그리스 신화의 테세우스 이야기는 수로(해로를 포함한)가 지닌 효율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 중에 하나일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아테네의 왕을 찾아 떠난 테세우스는 배를 이용해 아테네로 가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육로를 이용해 아테네로 떠난다. 그리고 그는 육로를 통해 아테네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였다. 그렇기에 테세우스는 모험을 마치고 아테네에 도착할 무렵에는 아테네의 정당한 왕위 계승권자 이전에 그리스 전역의 새로운 영웅으로서 그 위상을 먼저 인정받았다.


여기서 테세우스 신화가 지니는 신화적인 요인들을 배제하고 이를 지정학의 관점으로 살펴보자. 지정학적인 관점을 통해서 테세우스 신화를 살펴보면, 육로를 통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수로를 통한 이동과 비교하였을 때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육로를 통한 물류와 사람의 이동은 단순히 A라는 장소에서 B라는 장소로 길을 닦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육로는 이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의 안전과 편리함을 담보하기 위한 대규모의 기반시설을 요구한다. 그리고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러한 체계적인 기반시설의 건설과 유지는 이를 주도하고 감독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권력의 존재를 필요로 해왔다.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수로를 통한 물류와 사람의 이동은 다르다. 물론 수로(해로를 포함한) 또한 이를 순찰하고 유지할 인력이 없다면 상당한 위험이 존재한다. (교역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쉽게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수로를 이용할 때의 위험은 결코 교역과 이동을 멈출 정도로 발전하지 않는다. 자연적인 수로는 교역망을 유지하기 위한 대규모의 기반시설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대시대 이전의 수로를 이용한다는 것은 적절한 선박과 이를 운용할 인력 그리고 보편적인 수준의 운만 따라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지정학적인 분석을 통하여 육로와 수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신화 속 테세우스의 모험을 살펴보면 그는 당대 그리스인들로부터 영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스스로 획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모두가 두려워하던 위험천만한 육로를 통한 여정을 선택하였고 그 과정에서 겪은 난관을 극복함으로써 영웅이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로마인들이 지중해를 제패하고 안전을 담보한 이후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육로를 통한 물류와 사람의 이동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수로를 통한 물류와 사람의 이동이 육로를 통한 이동과의 비교에 있어서 언제나 우위를 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은 1803년 루이지애나 주를 프랑스 정부로부터 구입한 이래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효율적인 자연하천 유역과 함께 팽창하기 시작했다. 비옥한 중서부의 농경지대는 단순히 잉여 생산물만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미시시피 하천 유역을 통하여 연결되었고 이러한 연결은 각 도시들 간의 교역을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잉여생산물은 교역을 촉진하고 교역의 발달은 신용에 기반한 경제체제를 발전시킨다. 비록 이러한 자연하천을 통한 교역 시스템은 이후 더 발전된 교통망으로 대체되었지만 (처음에는 철도, 이후에는 고속도로), 이러한 발전된 교통망을 건설하는 비용은 수로를 통한 교역을 통해 비축된 자본을 통하여 건설되었다. (미국의 철도왕이라 불렸던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는 철도왕 이전에 ‘제독’ 또는 ‘선박왕’이라 불리는 미국 내 최대 여객선 사업자였다.) 따라서 미국의 미시시피 하천유역은 국제정치에 있어서 미국의 우위를 담보하는 핵심자산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이 지닌 지정학적 자산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에 앞서 이에 대한 안전보장을 확고히 하는 절차를 밟아야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안전보장 절차의 핵심은 미시시피 하천유역의 물류의 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핵심 도시; 곧 뉴올리언스(New Orleans)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연결되었다.


오늘날의 뉴올리언스는 프렌치 쿼터 지역의 나른함과 재즈로 상징되는 도시지만 19세기의 뉴올리언스는 지금과 같은 나른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뉴올리언스는 미국 중서부의 물류가 대서양을 통해 국제무역시장으로 나가도록 하는 핵심 출입구로서 역할을 하는 도시였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핵심 도시와 잠재적인 적성국(처음에는 스페인, 이후 멕시코)과의 국경선으로부터 300K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의 핵심 경제활동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뉴올리언스가 지닌 전략적 중요성을 1812년 미-영 전쟁을 통해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당시 뉴올리언스의 방위를 책임졌던 앤드류 잭슨 장군은 영국군의 파상공세에 맞서 뉴올리언스를 성공적으로 방어하였고,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훗날 그를 미국의 7대 대통령으로 만드는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그렇기에 앤드류 잭슨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의 당대 고위 정책결정자들에게 뉴올리언스는 국가의 핵심 경제활동을 담보하기 위한 핵심 요충지로 인식되었고, 이들에게 새롭게 독립한 멕시코는 자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합리적 공포를 제기하는 적성국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위험 인식을 바탕으로 한가운데 미국은 처음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국가안보전략의 방향을 수립하고 실행하기 시작했다.


제국으로의 여정: 통합된 북아메리카


미 해병대의 찬가는 다음과 같은 가사로 시작된다. ‘몬테수마 전당에서 트리폴리의 해안까지 우리는 조국의 전장에서 싸워왔다...’ 이 가사는 미 해병대의 초기 대외 원정의 역사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초기 미국의 국가 안보전략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첫 번째 국가 안보전략은 잠재적인 경쟁국이던 멕시코를 격파 및 종속시키고 북미대륙의 핵심지역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뉴올리언스에 대한 멕시코의 잠재적인 위협은 미국으로 하여금 다양한 정치, 군사적 옵션을 고려하고 실행하도록 하였다. 미국은 처음에는 국경지대에 정착한 자국 시민들을 통한 의도된 소요사태(텍사스 독립전쟁)를 이후에는 멕시코 북서부 지역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멕시코-미국 전쟁)을 통해 뉴올리언스의 영속적인 안전을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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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 Strategy of the US, Geopolitical Futures, 2016


멕시코-미국 전쟁의 승전과 함께 미국은 세 가지의 전략적 이점을 획득하였다. 첫째 미국은 전쟁의 승리를 통해 국경지대와 뉴올리언스까지의 거리를 늘린 것뿐만이 아닌 양국 사이의 국경지대를 사막과 산악지대라는 자연적인 방벽으로 채울 수 있었다. 이러한 자연적인 방벽 지대는 훗날 발생할지도 모를 멕시코의 반격 시도를 사전에 봉쇄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둘째 미국은 전쟁의 승리를 통해 지역의 잠재적 경쟁국가를 정치, 경제적으로 철저히 자국에 종속시켰다.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캘리포니아 지역의 병합을 통해 미국은 북미지역을 하나의 정치세력 아래로 통합했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정치적, 자연적 장애물 없이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세계 유일 국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 결과 미국은 제국으로서 국제무대에 등장하였다.


끝이 없는 안보 딜레마와 국가전략


역사 속에서 가장 흔하게 목격되는 진리 중 하나는 이전 시대의 성공이 그다음 시대의 숙제를 남겨놓는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북미지역의 정치적 통합과 태평양 연안지역으로의 진출은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 있어서 ‘바다로부터의 침공’이라는 새로운 안보 딜레마를 제기하였다. 이미 1812년의 미-영 전쟁에서 영국의 대서양을 통한 침공을 몸으로 겪었던 미국인들에게 ‘태평양으로부터의 침공’은 결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따라서 태평양 연안을 확보한 미국에 있어 앞으로의 안보전략은 곧, 기존의 대서양을 넘어 태평양으로부터의 침공까지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변경되었으며, 곧 미국이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활동하는 모든 국가들을 상대로 하는 국제정치 비즈니스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했다.


제25대 대통령이었던 윌리엄 매킨리는 미국-스페인 전쟁 (미-서 전쟁)을 통해 이와 같은 미국의 국제정치 참여를 공식화하였다. 미국은 미-서전 쟁의 승리를 통해 대서양(카리브해 연안)과 태평양 지역의 잔존하던 스페인 세력을 완벽히 축출하였고, 이는 곧 두 가지 전략적 이점을 미국에 가져와주었다. 첫 번째로 미국은 ‘먼로 선언’(Monroe Doctrine)을 통해 강조했던 서반구 지역에서의 다른 주요 강대국의 활동에 대한 분명한 경고를 미-서 전쟁을 통하여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두 번째로 미국은 스페인에게서 넘겨받은 필리핀을 본토 방어를 위한 핵심거점으로 삼아 서태평양 지역까지 그 영향력을 넓힐 수 있었다.


그의 후임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태프트 대통령은 각기 이러한 공세적인 안보전략의 이론적 기반과 정책사례를 제공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루스벨트 추론’이라고 불린 문건을 발표하여 ‘먼로 선언’이 지닌 논리적 결함을 공세적인 국제정치 무대 활동을 통해 극복할 것을 주장하였고, 태프트 대통령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장한 이론적 기반에 근거하여 ‘달러 외교’라 불리는 다른 강대국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자국의 경제적 활동을 극대화하는 방향의 외교 정책을 수립 및 진행하였다.


당대 다른 주요 강대국들이 산업과 경제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무제한적인 제국주의 정책을 펼치던 것과 다르게 미국은 풍족한 영토와 인구를 갖춘 통합된 북아메리카 자체가 바로 자국의 경제활동 및 산업부문에서 발생하는 초과 공급을 소화할 수 있는 제국 그 자체였다. 따라서 당시 카리브해 지역 및 필리핀으로의 진출은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제한된 제국주의 활동’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제국으로의 여정: 지역 강국을 넘어 국제질서의 주인공으로


모든 국가는 처음부터 제국이 될 것을 의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결함과 지정학적인 구조가 강제하는 압력들은 국제질서 속의 모든 국가가 서로를 불신하고 끝없이 경쟁하도록 만든다. 결국 모든 제국들은 제국이 되는 것을 의도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유혈이 낭자한 국제정치의 난장판 속에서 자국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사투를 벌이면서 제국으로 거듭난다.


미국에 있어 이러한 구조적 압력은 그들이 태평양 연안을 확보하는 순간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미국인들의 좋고 싫음의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은 국제질서가 부과하는 구조적 압력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국으로 거듭났다. 미 해군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전략가인 알프레드 테이어 머한(Alfred T. Mahan) 제독은 1890년에 이미 미국의 궁극적인 안보는 대서양과 태평양의 완벽한 지배에서 달성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의 예측은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마침내 현실화되었다


바다를 지배하는 것이 곧 국가의 생존을 담보한다면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압도적인 해군력을 통하여? 이는 훌륭한 전략이지만 최고의 전략은 아니다. 최고의 전략은 다른 국가들이 해군을 양성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오로지 잠재적인 경쟁국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지역에서 경쟁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실현된다. 그렇기에 ‘세력균형’ 정책은 곧 해군력 증강을 예방하는 가장 훌륭한 정책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독일의 부상에 따른 유럽의 세력균형 질서의 붕괴는 미국으로 하여금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 직접적인 참전을 하게끔 만들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러시아 제국이 붕괴한 직후, 곧바로 유럽전선에 개입하였다. 당시 독일은 양면 전선으로 분산된 전력을 제정 러시아의 붕괴와 함께, 서부전선으로 총동원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이는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패퇴 및 독일의 지배적인 국가로의 부상 가능성을 암시했다. 만약 특정 국가가 지역의 안보질서를 통제하는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할 경우, 해당 국가는 곧 지역단위의 끊임없는 경쟁으로부터 해방되어 대규모의 해군을 건설할 수 있는 정책 및 경제적인 여유를 확보하게 된다. 실제로 이미 독일은 대서양에서 활동하는 잠수함 전단으로 미국의 교역망에 피해를 가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독일이 유럽지역의 지배적인 국가로 부상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동일한 전략적 판단이 2차 세계대전에서도 적용되었다. 미국은 이번에는 스스로 패권국가가 되어 이러한 잠재적인 위협 상황을 완전히 제거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국은 두 가지 조치를 통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먼저 미국은 '무기대여 법'(Land-lease)을 통해 기존의 영국이 지니고 있던 대서양 지역의 모든 해군기지와 제해권을 확보하였다. 영국은 미국에 자국의 해양 지배권을 넘기는 것이 곧 제국의 종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장 자국을 위협하는 독일의 위협에 맞서 제국의 종말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미국은 더욱 직접적인 위협으로 판단되던 일본의 태평양 지역 확장을 태평양전쟁을 통해 격파 및 그 영향력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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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 Strategy of the US, Geopolitical Futures, 2016


현대 세계질서의 유래


2차 세계대전의 승전과 함께,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의 완전한 지배라는 목표를 달성하였다. 미국은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및 유럽에서의 세력균형이 곧 자국의 안전보장과 직결됨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을 통해 파괴된 기존의 유럽과 일본 등의 전통적인 강대국들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새롭게 부상한 소련을 견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소련의 대서양 및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막기 위하여 미국은 새로운 차원의 외교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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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 Strategy of the US, Geopolitical Futures, 2016


당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을 기획했던 조지 캐넌 (George F. Kennan)은 앞서 언급되었던 마한의 진정한 후계자였다. 그는 마한이 제시한 해상권 장악을 통한 국가 안전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시대에 걸맞게 갱신해야 한다는 필요성 또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그는 미국의 대소련 ‘봉쇄전략’을 기획하였다.


봉쇄전략의 핵심은 소련과의 상호 파괴를 유발할 수 있는 전면전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이 마주한 전략적 딜레마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미국은 소련과의 전면전에서 승리할지는 몰라도, 이 과정에서 자국 또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따라서 캐넌은 미국의 지속적인 우위를 합리적인 비용으로 담보할 수 있는 전략체계 (미국 주도의 글로벌 동맹 시스템)을 기획하였고, 이는 곧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질서의 유래가 되었다.


참고문헌 (영문판 참조)


https://thepacificwatch.com/geopolitics-of-am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