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편지

꿈을 위한 시스템

by Felix Park

N에게,


N, 지난번 편지에서 나는 너에게 어떻게 나의 하루를 프로젝트화 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인지 설명하겠다고 했다. 사실 이러한 삶은 너무나도 건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이미 한번 손에 쥐고 있던 안정된 삶을 던진 과거는 나에게 안정성을 포기한 대가로 끊임없이 불안과 마주하고 이 불안을 나의 동료로 삼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그리는 것이 곧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과정임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진하는 삶은 내가 지닌 ‘열정’이 아닌 신체적⠂정신적 ‘에너지’의 지속적인 유지를 통해서 달성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충동적이고 관대한 친구가 아닌 냉엄하고 차가운 관리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는 곧 나 자신의 삶을 주기로 구분하여 프로젝트화한다는 의미이겠지.


하루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바라본다는 것


마침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라는 것은 나에게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라는 것은 사실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구분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 인위적인 구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영역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120% 활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을 그려나갈 것이고, 어떤 이들은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날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결코 100% 또는 120% 활용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매일매일 계획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이다. 업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잘 안 풀리는 순간도 있듯이, 잘 풀리는 하루도, 잘 안 풀리는 하루도 있을 거다. 중요한 건 그러한 상황을 마주하면서 감정적인 흔들림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마치 업무상 수행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의 핵심 부분을 달성하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듯이, 나의 하루도 그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실행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지 않을까?


명상으로 시작하는 아침, 일기로 마무리하는 저녁


그렇기에 이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나의 하루는 현재 두 가지의 핵심 부분을 반드시 실천하고 있다. 첫 번째는 아침을 여는 명상이다. 불성실하게 놓치는 때도 있었지만, 단순한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실천하면서 명상을 함께 시작한 지는 벌써 3년이 돼가는 것 같다. 그동안의 굴곡도 있고, 여전히 모자란 부분도 많지만, 명상은 나 스스로의 심리적인 불안감과 혼란스러움을 청소하고 상황을 있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끔 도와주는 파수꾼을 배치하는 행위 같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나 스스로를 다잡고 현재 나의 육체적, 심리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점검하는 행위는 이제 나에게는 하나의 리츄얼 (Ritual)이 되었다.


두 번째는 그동안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일기를 쓰는 행위다. 기존에도 아침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짜서 썼지만, 띄엄띄엄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좀 더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침에 쓰고 저녁에는 이를 점검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있었는지를 함께 쓰는 편이다. 이러한 행위는 지금은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습관이 되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나의 자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photo-1471107340929-a87cd0f5b5f3?ixlib=rb-1.2.1&ixid=MXwxMjA3fDB8MHxwaG90by1wYWdlfHx8fGVufDB8fHw%3D&auto=format&fit=crop&w=1000&q=80 끊임없는 기록이 결국 나 자신에 대한 피드백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위의 두 가지 행위를 핵심으로 두고, 그 사이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배치하는 형태로 나의 하루를 프로젝트화 하여 진행할 예정이다. 너에게는 나의 이러한 방법론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방법이라는 것은 실행하는 가운데 조금씩 개선이 되는 성격의 행위이기에 큰 두려움은 없다.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것은 사이사이에 스며들어올 게으름과 나태함일 것이다.


규율 = 자유

“자유의 대가는 영원한 경계다.” ("Eternal Vigilance is the Price of Liberty.")


미 의회 도서관 앞에 새겨져 있다는 이 유명한 문구에서 나오는 Liberty는 정치적 자유에 가까운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구절 속의 Liberty를 Freedom으로 바꾸면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유롭게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영원한 경계를 (적어도 삶의 끝자락에 이르기까지) 의미하며, 이러한 경계는 엄격한 규율을 기반으로만 성립되는 것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너에게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스스로에게 충분히 엄격해졌는지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photo-1490730141103-6cac27aaab94?ixid=MXwxMjA3fDB8MHxwaG90by1wYWdlfHx8fGVufDB8fHw%3D&ixlib=rb-1.2.1&auto=format&fit=crop&w=1000&q=80 완전한 자유는 결국 체계적인 규율 아래에서 달성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다음 편지에서는 이제 내가 가진 꿈을 위해서는 ‘직장’이 아닌 ‘직업’을 향해 나아가야 할 필요성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의 조각들을 너와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그때까지 건강 유의하고 언제나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며 이만 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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