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by Felix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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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떠나기 직전 시작한 블로그에 올렸던 첫 번째 독후감입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리뷰하게 된 첫 번째 책은 최근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이다.


0.


사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소설가에 대해 잘 모른다. 기본적으로 일본 소설이나 콘텐츠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배울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따로 취향과 입맛에 맞게 읽는 걸 선호하는 나에게 있어, 일본 소설은 취향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국적을 불문하고 에세이, 수필 등의 장르를 선호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물론 최근에는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이에 관한 수필과 에세이 등을 많이 읽게 되었다.) 하루키의 책을 읽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한 사람의 자전적 에세이를 넘어서 '자기의 업을 사랑하는 이들' 혹은 '자신 나름의 비전을 쫒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훌륭한 지침서 역할을 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확실하다.


1.


하루키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사랑하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들에게 가이드를 준다. 물론 그는 '소설가'라는 자신의 직업을 비유하여 모든 에세이를 썼으나, 중요한 건 소설가라는 그의 언급을 이 책을 읽는 개개인이 자신의 직업 또는 상황에 얼마든지 대입하여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두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적인 혼돈을 마주하고 싶다면 입 꾹 다물고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혼자 내려가면 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과묵한 집중력이며 좌절하는 일 없는 지속력이며 어떤 포인트까지는 견고하게 제도화된 의식입니다. 아울러 그러한 자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체력입니다. 그것이 소설가로서의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누구나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혹은 어떤 상황을 마주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1)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2) 역량이 무뎌지지 않도록 하는 날카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키는 마치 대규모 회전을 앞둔 군사를 이끄는 사령관처럼 자신이 지닌 내적인 혼돈을 정리하고 바라보는 능력(집중력)과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역량(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


또한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자신만의 '오리지날리티'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그의 메시지 또한 매우 깊이가 있다.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정보 과다라고 할까 짐이 너무 많다고 할까, 주어진 세세한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자기표현을 좀 해보려고 하면 그런 콘텐츠들이 자꾸 충돌을 일으키고 때로는 엔진의 작동 정지 같은 상태에 빠집니다. 그러니 어떻게도 뛰어볼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우선 필요 없는 콘텐츠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정보 계통을 깨끗하게 해두면 머릿속은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것입니다.



그는 창의성과 오리지날리티의 발견은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아닌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빼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한다. 모더니즘과 미니멀리즘을 신봉하는 이들이 금언으로 삼는 "Less is more"와 그 맥락이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외부로부터의 정보와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지만, 그중 무엇이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혼란을 느낀다. 그렇기에 하루키는 이러한 혼란함을 정리하고 자기 자신의 고유의 콘텐츠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정보 등을 정리할 것을 권유한다. 이것은 글을 쓰는 것을 넘어 일을 조직화하고 맥락을 만드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역량이라고 볼 수 있다.



3.


마지막으로 인생을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의 경험으로서 모든 일을 쉽게 예단해서는 안된다는 그의 조언은 어떠한 일을 도모하거나 상황을 마주하였을 때, 섣불리 결정을 내렸다가 낭패를 보거나 곤란한 어려움에 처할 것을 경계하게끔 해준다.


"..... 이를테면 '이건 이렇다'라는 결론이 머릿속에서 내려지더라도, 혹은 자칫 내려질 것 같더라도, '아니, 잠깐, 어쩌면 이건 나 혼자만의 억측일 수도 있어'라고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보는 사람입니다. '세상일이란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나중에 뭔가 새로운 요소가 불쑥 튀어나오면 얘기가 백팔십도 달라질지도 모르잖아'라는 식으로.... 어느 시점에 조급하게 결론을 내렸는데 나중에 보니 그때 내렸던 결론이 올바르지 않은(혹은 부정확한,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되는 씁쓸한 경험을 지금까지 수없이 되풀이했기 때문입니다. 그 바람에 몹시 창피하거나 식은땀을 흘리거나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의 결론을 즉각 내리지 않도록 하자' '가능한 한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자'라는 습관이 서서히 내 안에 형성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건 타고난 성향이라기보다 오히려 후천적으로, 경험적으로 따끔한 일을 겪어가며 몸에 밴 습관입니다."


정말로 살면서 어떤 것을 손에서 놓고 다른 것을 쥐어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때 쉽사리 흥분하여 결정을 했다가, 나중에 낭패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글쓴이도 현재 다니고 있는 안정적인 직장을 접고 새롭게 유학생활을 하는 방향으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쓴이도 다니는 직장을 최대한 늦게 그만두고 조직에서 챙겨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챙겼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검토하고 고민하고 있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내가 한 선택이 과연 옮은 것인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서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글을 쓰게 되면서 나만의 수필을 쓰게 되었다는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이외에도 하루키가 생각하는 삶을 어떻게 경영하여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자신이 지닌 시간을 관리할 것인지 등에 대한 다양한 고찰은 자신만의 업을 찾는 이들 또는 오리지날리티에 대한 고민 등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