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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 Apr 30. 2016

엄마의 선택과 집중

육아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것을 덜어내기

미니멀리스트


 마크 주커버그가 공개 질의응답에서 '왜 매일 똑같은 티셔츠만 입고 다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최대한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가능한 한 다른 모든 의사결정을 최소화하고 우리 커뮤니티를 위한 일에만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심리학 학설들은 말한다. 심지어 사소한 의사결정들 뭘 입을지, 아침에 뭘 먹을지 등에 대한 것들도 피로가 쌓이게 하고,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나는 행복에 겨운 삶을 살고 있다. 그 속에서 매일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을 위한 일에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내가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철없이 사소한 개인사에 낭비한다면 그건 내 본분을 다 하지 못한 거라 생각한다.


 주커버그는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미니멀리스트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두하기 위해 나머지 행위를 극소화한다는 개념이다. 일에 집중하기 위해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닐 신념까진 없지만, 선택과 집중의 측면에서 그의 의견을 이해하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난 4년간 육아하며 내 삶이 딱 그랬다.




공간의 정리


 아빠는 물건을 버리질 못하신다. 30년째 들여다볼 일이 없는 젊은 날의 추억 상자는 여전히 베란다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좀 정리해서 버리라고 이야기하지만 들은 척도 안 하신다. 아마 거기에 무슨 보물단지라도 들은 모양이라고 못마땅해하시는 엄마는, 정리를 잘 못하신다. -정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 이 차이를 최근에야 깨달았다. 아마도 정리나 수납을 탁월하게 잘하는 사람들은 공간지각력이 뛰어난 게 아닐까.- 예쁘다고 사서는 아깝다고 쓰지 못하며 집안 여기저기 모셔둔 살림살이들이 여럿 있었다. 가끔씩 꺼내 들여다보며 혼기가 되려면 한참 먼 우리에게 시집갈 때 가져가라고 하셨다. 그럴 때면 나 결혼할 땐 더 좋은 거 나올 테니 걱정 말고 엄마 쓰라고 심드렁하게 대꾸하곤 했다.


 이에 반해 나와 동생은 정리를 기똥차게 잘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동생은 물건을 버리질 못하고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기를 즐기며, 나는 불필요하다 느끼는 걸 최대한 갖다 버리는데 초점을 둔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원래 성격이 그랬는지, 자라면서 형성된 성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학창 시절에 아빠의 근무지를 따라 몇 번의 이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내 공간에 정리해야 했던 내 짐'에 대한 개념이 생긴 게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굳이 이사가 아니라도 버릇처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는 옷은 갖다 버리고, 남은 옷은 다시 세탁해 정리했다. 학기가 바뀔 때마다 책상과 책장을 뒤집어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간직할 건 박스에 넣어 책상 아래 보관했다. 반복되는 일련의 행위들로 심리적 안정을 얻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도 내 짐은 늘지 않았다. 딱 내 생활과 방 크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범주를 넘지 않았다.   


 집에서의 생활이야 남들은 어찌 사는지 알바가 없으므로, 이러한 성향을 인지하기 시작한 건 회사를 다니면서부터였다. 바탕화면에 아이콘이 하나도 나와있지 않아서 작업 중에 열어놓은 창들이 아니라면 새 컴퓨터라고 생각할 법한 모니터, 구석에 놓인 가방과 물이 채워져 있는 컵이 아니라면 빈자리이거나 잠시 상주하는 외주 개발자의 자리라고 생각한 책상. 나한텐 그게 당연했는데 모두 나를 신기해했다. 휑한 내 책상을 빗대어 "내일 퇴사할 거냐?"고 농담하던 동료는 스티브 잡스처럼 매일 같은 터틀 풀오버를 입고, 커피 마신 종이컵을 책상에 수북이 쌓아두었다. 공간의 효율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같은 옷을 여러 벌 사서 돌려 입는 게 얼마나 합리적인지 아느냐는 동료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보면 행위의 효율을 추구하는 그와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지점이 달랐을 뿐이다.




돈의 활용


 그 '합리적인 지점'이 얼추 비슷한 남자를 만나 결혼 준비를 하면서 공간뿐 아니라, '돈'에 대한 선택과 집중도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결혼 절차라는 게 어찌나 비합리와 비효율의 극치인지 공감하며, 가급적 간소하게 준비하자고 양가에서도 의견이 모아졌다. 그럼에도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해야 하는 건 '내 결혼식'이 아니라 '양가의 결합'이라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선택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둘 중 하나였다.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걸로 하거나, 생략하거나.


 신혼집은 대부분의 가전, 가구가 빌트인 되어있는 주상복합 오피스텔이었는데, 이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고작 1년 만에 대형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집 크기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가전과 가구들을 새로 구입했다. 나는 요즘 결혼하는 지인들에게, 자녀가 생겨도 관계없는 넉넉한 크기의 집에서 이사하지 않고 쭉 살 거라면 상관없지만 절대로 곧 이사할 좁은 신혼집에 맞춰 고가의 혼수를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10년 전 참석했던 사촌 조카의 돌잔치에서 정작 주인공인 아기는 피곤해서 칭얼거리고, 참석한 친인척들은 먹고 떠드는데 정신없었던 장면에서 의문이 들었다. 이걸 아기가 원할까? 출산한 병원에서 권하는 스튜디오의 성장 앨범도, 조리원에서부터 영업이 시작되는 유아 교육 프로그램도, 결혼식 못지않게 준비할 거 많은 돌잔치도 하지 않았다. 한 철 쓰고 버리게 될 아이들의 장난감과 옷은 거의 물려받아 사용했다.


 대신 먹고 싶은 건 실컷 먹고, 가고 싶은 덴 어디든지 가고, 가끔씩 꼭 쓰고 싶은 것에 아낌없이 쓴다. 이런 소비패턴은 양육 방침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들의 유초등 시절에는 의미 없는 사교육 지출을 최대한 지양하고 여행을 많이 다니기로 했다.

   



시간의 분배


 20대엔 여가 시간에 뭐라도 하는데에 의미를 뒀다. 주 2~3회 운동을 하고, 연간 50~100권의 책을 읽고, 매주 마사지를 받고, 네일케어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모임을 나가고, 쇼핑을 하고, 가끔 소개팅을 하고, 경조사에 참석하고, 여행을 떠났다. 그러고도 비어있는 일정에는 없던 약속을 만들거나 보고 싶은 미드를 몰아보는 걸로 시간을 채웠다. 그땐 내면과 외모를 가꾸는 자기계발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러길 참 잘했다.


 아이를 낳고 보니 육아와 가사라는 게 끊임없는 연속성을 가진지라 쉬는 시간도 퇴근도 주말도 휴가도 없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때에는 주어진 시간 안에 스스로 스케줄을 조정하는 일이 가능했다. 헌데 이건 화장실에 볼 일을 보러 가거나,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원초적인 순간 조차도 방해를 받는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육아를 힘들어하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면 잠깐은 편안하지만, 그 누구도 엄마의 기준으로 아이를 돌봐주지 못했다. 그리고 흐트러진 패턴을 다시 맞추는 데에 몇 배의 노력을 더 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건 죽으나 사나 같이 있으며 나를 아이에게 맞추는 것이었다. 아이가 잘 때 자고, 밥 먹을 때 같이 먹고, 놀 때 같이 놀았다. 나가고 싶어 하면 나가고,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같이 들여다봤다. 짬이 나면 책을 읽었다. 좀처럼 진도는 나가지 못해 한 달에 한 권 읽기도 쉽진 않았지만, 어쨌든 지난 4년간 한 일이라곤 아이를 키우고 책을 읽은 것뿐이다. 일을 그만두면서 커리어에 쌓을 기회비용을 아이들에게 투자하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조금 크고 나니 이렇게 틈틈이 글 쓰는 일도 시도해본다. 3년 남짓 지나니 첫째 아이는 유치원엘 가고, 둘째 아이도 기관에 갈 날이 머지않았다. 그렇게 되면 반나절의 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해 쓸 수 있게 된다. 고작 3년, 둘째까지 생각해도 5년. 본인이 원해서 낳은 아이를 양육하는 데에 그 정도 시간을 집중하는 것쯤은-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희생과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해줄 수 있다. 20대에 이것저것 실컷 서 여한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아이들 위주로 보내는 시간이 마냥 힘들고 괴롭지만은 않은 걸 수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못하거나, 집중일을 시시때때로 방해받는다면 엄청 초조하고 화가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집중


 아이들 위주로 4년을 지내다 보니 만나게 되는 사람은 가족뿐이었다. 오로지 가족, 가족, 가족. 몇 달에 한번 친구. 일 년에 한두 번 조리원 동기 모임. 참석했던 대부분의 모임은 자연스레 해체되었고, '아는 사람' 정도의 어정쩡한 관계들은 모두 전화번호부에서 삭제되었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단독의 인간관계가 아닌 첫째 아이 친구의 엄마로 재편되었다. 아이들 때문에 만나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면 할 말이 없는데, 만나는 자리에선 아이들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배려하지 않는 게 불편했다. 나름의 확고한 양육 방침 때문인지 대도 공감하기 어려웠다. 첫째 아이를 끼워 그룹을 만들고 싶다는 제안들도 아이가 아직 낮잠을 자서 당분간 힘들겠다는 핑계로 돌려 거절했다. 적어도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계획하지 않은 사교육을 시키고 싶진 않았다.


 마치 물속의 기름이 된 듯했다. 아예 물 위에 동동 뜬 기름은 아니고, 섞여는 있는데 묘하게 섞이지 못하는 수용성 기름쯤.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긴 걸까 진지하게 고민스러운 날도 있었다. 이제껏 아무 문제없이 잘 살아왔는데 서른 넘어 이런 고민을 하게 되다니 당혹스러웠다.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만남에 시간, 돈, 에너지를 쏟는 것보다 현재 내 핵심 업무인 양육에 매진하고 잔여 시간에는 자기계발에 힘써야 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고민은 끝이 났다.

 

 여전히 대부분의 날들을 가족과 함께 하고, 어쩌다가 친구나 조리원 동기들을 만난다. 더 이상 할애할 시간도 에너지도 없는 지금으로선 딱 좋다. 사실 절친은 보다 더 자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아이들이 크면 같이 여행을 다니는 걸로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 믿는다. 또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그건 그때 가서 필요하다면 하면 되는 거니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살림을 간소화하면 삶이 정돈된다


 성향과 상황이 맞물려 비효율적이거나 소모적인 일에 시간과 돈,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해졌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므로 이사하며 가장 고려한 것은 생활 패턴에 맞는 공간 배치와 동선이었다. 이동을 최소화하고, 목적에 맞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게 목표였는데, 현재 생활이 제법 만족스러운걸 보니 적절히 달성했나 보다. 

 

 집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는 여백의 미다. 사람이 짐에 치이거나, 사람끼리 부대끼게 되면 집도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없다. 살림을 잘 못하는 나로선 덜 사고, 더 버리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여백이라 하면 넓은 집만을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물론 가족 수만큼의 일정 공간은 필요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어느 정도로 불필요한걸 덜어내고 수납하는지가 관건이다.


 계절마다 옷장 정리를 해서 지난 2년간 입지 않은 내 옷은 버린다. 아이들의 작아진 옷은 물려주고 있는 집으로 보낸다.

 도서관에 다닐 여력이 되지 않아 책은 사서 읽고 소장할만한 것이 아니면 중고서점에 되판다.

 화장을 하지 않아 색조 화장품은 없고, 기초 화장품은 다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제품별 유효기간에 따라 6~12개월이 지나면 버린다.

 냉장고에는 이번 한주에 먹을 음식만 넣어두고, 일주일마다 비우고, 장 봐서 채우기를 반복한다. 냉동실은 한 달 주기로 정리한다.


 우리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손님맞이를 위해 정리를 한 거냐 아니면 원래 이렇게 깨끗하냐고 묻는다.

 어른들은 아직도 가끔 우리 집 냉장고가 텅 비어 너희 뭐 먹고 사느냐고 걱정을 하신다.

 옷장에 옷이 가득 차 있다고 옷 잘 입는 게 아니고,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 차 있다고 밥을 잘 차려먹는 게 아니다.

 

 뭐든 적기에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사서 잘 쓰고 불필요해지면 버리는 것, -정리할 때 아쉽지 않으려면 고가의 사치품은 지양하는 게 상책인데, 이건 가끔 난제다.- 중요한 것을 위해 나머지는 싹 접어두는 것, 그게 현재 내가 고수하는 삶의 방식이다. 이 방식은 '나'와 '내 삶'에 보다 홀가분하고 여유 있게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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