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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 May 04. 2016

육아 같은 계절, 봄

마음은 행복하고, 몸은 고된

 작년 가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 이 집을 고른 여러 가지 조건이 있었지만, 남편과 동시에 "여기다!"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조경 때문이었다. 아파트 동 간격이 널찍한데다 그 사이를 울창한 나무가 메우고 있어 마치 콘도에 놀러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마다 창문을 열면 싱그러운 나무 냄새와 새소리에 기분까지 청량해졌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니 사방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벚꽃 나무인 줄도 몰랐는데, 깜짝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몸살로 벚꽃 구경 시기를 놓쳐 아쉬웠지만, 집에서 창밖만 내다보아도 시야를 가득 메우는 꽃들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벚꽃이 지니 철쭉이 만개하여 눈을 즐겁게 해주어 이사오길 참 잘했다고 흡족해했다.




 지난 20년 가까이 봄은 '사랑하고 싶은 계절'이었다. 유난히 계절을 타느라 봄엔 조증에 걸린 사람 마냥 들뜨고 설렜다. 겨울 옷을 벗고 살랑살랑 가벼운 봄 옷을 걸치고, 예쁘게 피어나는 꽃들을 구경하며 걷고, 무엇보다도 -엄청 유치하지만- 내 생일을 맞는 기분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봄은 나에게 막 연애를 시작한 사람 같은 기분을 선사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봄과 함께 알레르기가 같이 찾아왔다. 황사에 미세먼지, 송화가루까지 날리기 시작하면 눈과 코가 간지럽고 괴로워서 미칠 지경이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시기가 돌아왔는데, 꽃과 나무가 잔뜩 있어 너무 좋다고 감탄하던 아파트 조경이 한몫을 더하고 있다.




 요금을 추가해서 광택까지 내고 세차한 차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그 잠깐 사이에 샛노란 송화가루를 뒤집어쓰고는 레오퍼드 무늬가 되었다. 창문 밖으로 흩날리는 꽃가루들 때문에 집안을 환기시키기도 망설여진다. 끊이지 않는 재채기와 콧물 때문에 결국 이비인후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왔다.


 그 와중에 비가 내리는 게 반가웠다. 고인 빗물에 씻겨 내려간 꽃가루들이 뭉쳐있었다. 잘 가. 철쭉도 절반쯤 떨어졌다. 어머, 이렇게 봄이 가는구나. 갑자기 더워지며 여름이 오겠지. 유독 호되게 앓은 이번 봄이 가는 게 유난히 더 아쉬운 거 보면 이제 좀 살만한가 보다.




 이제부터 나의 봄은 사랑하고 싶은 계절 대신 '육아 같은 계절'로 명명하기로 했다. 마음은 즐거운데 몸은 고되고, 찾아와서 반갑다 했는데 정신없이 혼을 쏙 빼놓고는 즐기려니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그 고생을 하고도, 매년 돌아오는 걸 알아도, 이 계절이 지나가는 건 한없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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