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동아리를 통해 배운 세상살이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늦여름에서 가을 즈음 해외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연극동아리 선배가 꾸준히 활동하시던 봉사활동 덕에 본과 4학년이던 내게 기회가 넘어와 같이 가겠냐고 제안을 해주셔서 선뜻 가게 되었다.
지역에서 다양한 의사 선생님들과 가족을 데려온 분도 계셨고, 선배와 나 그리고 선배가 아는 분의 딸이 치과팀으로 배정되어 대략 30여 명 되는 사람들이 모여 해외봉사팀으로 꾸려졌다.
난생처음 선배랑 가는 해외 봉사이기도 했고 아직 본과 4학년이라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저 선배님께서 시키는 것만 잘 해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따라가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따라갔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알코올로 기구들 소독해가고 진료를 보고 발치를 하고, 충치치료도 해주고 최선을 다하면서 최대한 많은 환자들을 봐주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도 다른 의사 선생님들 진료보다 항상 치과진료가 제일 늦게 끝났다.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거의 다 와가는데 일행들 중 치과팀만 진료가 늦어져서 주변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 건 아닌지, 환자들을 치료해주는 거니까 괜찮다 싶다가도 괜히 눈치가 보였다.
그러다 같이 갔던 정형외과 선생님의 딸이 이야기해줬다.
"그런데 치과팀은 진짜 멋있는 것 같아요. 원래 사람은 자기 일에 집중할 때 멋있어 보이는 법이잖아요?"
아마도 제일 늦게까지 주변에 누가 왔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환자를 얼른 치료해서 돌려보내려는 우리의 모습을 일찍 끝난 그 친구가 봤던 모양이다.
연극동아리를 하면서 신입생 때 제일 처음 보여주고 싶은 동아리의 모습은 공연도 공연이지만, 동아리방에서 조명 켜고 연습하는 모습일 것이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다른 사람들이 연극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공연을 올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신입생들이 연극 공연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극예술연구회를 소개를 할 때 주로 보게 되는 개강 후에 신입생들이 보는 모습은 캐스트들과 연출이 공연 막바지 연습을 지하 동아리방에서 조명이 켜진 동방 무대 위에서 하고 있는 모습이다.
신입생 때는 그저 선배들 손에 이끌려 오다 보니 몰랐지만 선배가 돼서 안 것은 어느 정도의 쇼 같은 요소도 같이 있다. 멋있고, 특별한 경험이니까. 그런 멋짐을 보여줘야 언제나 인력난인 이 연극동아리에 그 멋으로 들어오게 되는 후배들이 있다고.
특별하고 낯설고 신기해서 동아리방들 중 가장 넓다는 동아리 방에 어둠이 내려있고 배우를 비추는 주황빛 조명과 캐스트의 연기력, 가끔 있는 음향이 어우러져 내는 분위기가 그저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멋있음을 다른 곳에서 느낀 선배, 후배들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후배들이 들어와도 아무렇지 않게 연극을 하던 무대 위 캐스트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와서 그제야 우리에게 반응을 하고 배우가 아니라 그냥 치과대학 선배로서 말을 걸어주는 그 모습이 멋져 보였다고.
자기 일에 빠져서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무대 아래에 반응하지 않는 무대매너도 어쩌면 배우의 멋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연극들 중 관객 참여형 연극이 아마 없겠지만 배우가 전혀 다른 세상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과 무대와 객석의 틀을 깨고 내가 있는 일상에 들어와 나에게 말을 거는 순간 그 멋이라는 게 약간 반감된다. 분명 극의 흐름을 깨지 않게 무대 밑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기도 한데 배우들이 연기하는 세상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동안은 같은 공간에서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까
어린 시절 매력이나 멋의 최고봉은 반전 매력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집중할 때 하고 안 할 때 확 깰 수 있는 반전 있는 매력이야 말로 진짜 멋이 아닐까. 멋은 나 혼자 다른 세상에 빠진 듯 있을 때 생긴다. 마치 무대 위의 다른 세상을 연기하는 배우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