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있는 당직실은 자취방과 비슷하다. 한쪽 구석에는 간이침대 하나와 그위에 작동이 되는지 안되는지 알 수 없는 황토 전기장판 그리고 그걸 덮고 있는 어딘가 투박하면서 촌스러운 꽃무늬 가득한 침구세트가 한 구석에 있다. 그 발치에는 하얀 장롱 두 개가 있는데 한 칸에는 언제 빨래했는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불더미가 노끈에 묶인 채로 있고 옆 장롱 한 칸에는 매주 청소 아주머니께서 빨래해주시는 새 이불과 베개가 차곡차곡 쌓여 놓여있다. 침대 옆 다른 구석에는 나무책상 위 번쩍번쩍한 큰 모니터와 언제 마지막으로 썼는지 모르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유선전화기, 그리고 그 아래 전화기 받침 역할을 하는 귀 기울여 들어야 들리는 스피커가 자리 잡고 있다. 책상 옆은 가슴까지 오는 중형 냉장고, 그리고 지금은 작동을 멈춘 최소 10년은 돼 보이는 프린터기가 위에 놓여있으며 각종 쓰다만 컴퓨터 본체, 키보드, 스피커 등의 전자기기가 문까지 양 옆을 장식하고 그 중간에 화장실까지 나름 자취방의 구색을 꽤 갖춰 3-4달은 족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다. 화장실에 변기가 없다는 점만 빼면 나름 이 당직실에서 먹고사는데 큰 문젠은 없는 곳이다.
당직실이 하나여서 내 자취방인 것 마냥 사용을 하지만 병원 내에 샤워실이 여기밖에 없는 관계로 당직인 윗년차 선생님 그리고 경비아저씨와 함께 샤워실을 사용한다.
한해의 마지막 날이든 새해의 첫날이든 나에겐 그저 응급실 환자가 더 많았던, 적었던 하루 정도로 밖에 기억되지 않는 날, 새해의 첫날 늦은 밤에 온 응급실 환자를 다 보고 당직실로 올라와 컴퓨터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 목적도 없이 그냥 환자들을 보고 나서 든 생각, 새해 목표 등 새해니까 응당해야 할 것 같은 것들을 써 내려가기를 한창 하는데 문이 열렸다.
“어. 있었어?”
“네”
“어 씻으려고”
경비 아저씨께서 들어오셨다. 각 과별로 감염성 폐기물 처리를 하시고 땀을 많이 흘리고 오신 듯 보였다. 대중목욕탕에 갈 때 챙길법한 목욕바구니에 각종 세면도구들로 금방이라도 씻으러 들어갈 사람처럼 들어오셨다. 평소라면 오후에 내가 없을 시간에 자연스럽게 씻으러 가셨을 텐데 오늘은 시간이 많이 늦어 내가 있었던 것이다.
샤워기 물을 틀고 내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어 침대 발치에 두고선 나체의 씻으러 가셨다. 일 년 가까이 날마다 얼굴 마주치고 인사해서 내가 편한 사람이 된 걸까, 아니면 나이를 들면 부끄러움이 없어지는 걸까를 생각하는 중 반갑지 않은 벨소리가 울렸다. 당직 폰의 전화 벨소리는 몇 번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 전화를 받으며 진료실로 내려가 환자 약 처방 내용을 보고 환자분 상태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주치의 선생님께 물었다. 이후 주치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뒤 올라와 다시 의자에 앉으니 곧 물이 꺼지고 아저씨가 나왔다.
또 아무렇지 않게 나와 몸을 닦고, 나에게 자연스럽게 물으셨다.
“선생은 클럽 뭐 했어?”
갑자기 클럽을 물어봐서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아저씨 께선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게임을 안 하고 있어서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이 게임 안 하면 뭘 했는지 궁금하셨나 보다.
전에 당직실에 조이스틱도 있었다고 이야기하며 게임을 안 좋아하냐고 물으시는데 대학교 1학년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게임을 찾아보자며 친구들과 PC방에 가 오랜만에 한 온갖 종류의 게임에서 전부 꼴찌를 한 이후 게임은 나와 맞지 않음을 확신했다.
대학교 때 내 거의 모든 학점과 몸을 바쳐 열심히 했던 연극동아리 그리고 운동 동아리를 했다는 말에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연극. 인생 공부지 그게, 그 사람의 인생에 심취해서 연기하고……”
맞다. 연극은 배역에 심취해 연기를 하고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면서 간접경험을 생생하게 하는 재미가 있다. 이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극의 재미이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연극의 진짜 재미, 그리고 가장 어려운 부분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몸 담은 연극부는 치과대학의 과 동아리다. 아마도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배워야 할 과목이 워낙 많은 탓에 고등학교처럼 시간표가 대부분 짜여서 중앙동아리를 하기 어려워서 과 동아리가 중앙동아리만큼 활성화가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아저씨와 그 이후로 약간의 담소를 나누고 새해 안부 인사를 드리며 아저씨는 떠나셨다.
6년간 11편의 공연을 올리며 수많은 사람의 인생공부를 했는데 정작 나에 대해서는 다 아는 듯 하지만 아는 게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더 이상은 집단이 모여 연습을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연극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동아리의 구호? 같은 게 있다. 술자리가 끝나고 나면 20-30명 되는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둥글게 모여 좌우로 흔들거리면서 부르는 노래. 그 노래의 일부분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태어나서 무엇을 하나.
…(중략)
누가 인생을 묻는다면
우리는 조용히 대답하리 우리는 무대 위의 배우 같다고. 기도하는!”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각자 연기하는 배우이다. 이제 제1막 1장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이제 2막, 3막으로 넘어가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나의 인생도 이제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내 아름다운 인생의 제2막 1장.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