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신을 맞이하는 자세
'쇼핑 데이'를 정해놓는 습관
예전의 나는 불현듯 뭔가 사고 싶으면 적은 금액일 경우 큰 고민 없이 바로 사버리곤 했다. 심지어 요즘은 편리한 인터넷 쇼핑을 위해 카드사와 쇼핑몰들이 열일하는 덕분에, 귀찮게 카드 번호를 일일이 입력할 필요도 없다. 카드를 한 번만 등록해놓으면 쉽고 빠르게 간편 결제가 가능하다. 지름신의 부름에 즉각 응하는 나 같은 소비자들이 큰 고민이나 귀찮음 없이 소비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결제를 하기 위해 카드번호를 일일이 입력해야만 했던 과거에는 그 과정 중에 살까 말까 한번 더 생각을 해보거나 귀찮아서 사는 것을 미루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럴 시간 자체가 없다.
문제는 소소한 소비가 모이면 다음 달 카드 결제금액은 결코 소소하지 않다는 것.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고 카드 결제 내역을 하나하나 살펴보지만.. 잘못된 게 있을 리 없다. 다 과거의 내가 산 것이 맞다. (과거의 나 뭘 이렇게 많이 질렀니...)
지름신이 올 때면 온 마음을 다해 맞이하다 보니, 살 때는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산 것인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내가 이걸 왜 샀을까'하고 후회한 적도 많았다.
그렇다. 나는 그저 지름신의 부름에 응하여 '뭔가 사고 싶은 기분' 때문에 산 것이었다. 그렇게 크게 쓸모도 없고 애착도 느껴지지 않아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많아지면서 마음의 불편함도 커져만 갔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었다. 자주 들어가는 쇼핑몰에 습관적으로 들어간 어느 날, 메인 화면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꼭 필요한 머플러'라는 카피가 나를 이끈다. 홀린 듯이 클릭해보니 소재도 괜찮아 보이고 색상도 내가 좋아하는 파스텔 톤, 게다가 가지고 있는 니트와도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가격도 합리적이다!
이런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건 정말 필요한 거라고 생각하며 순식간에 결제 버튼을 누른다. 5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막상 택배를 받고 보니 머플러가 예쁘긴 했지만 이미 집에 비슷한 머플러가 몇 개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의 나는 그저 감정적으로 그 머플러가 사고 싶어서 일련의 합리화 과정을 거쳤을 뿐이었다.
이런 사소한 소비가 쌓이다 보면 뭔가 비싼 걸 사지도 않았는데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 찍힌 카드 명세서를 받게 된다. 돈도 돈이지만 늘어가는 물건들로 불편한 마음을 커져만 가던 어느 날,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다.
쇼핑 데이를 정해놓고 한 달에 한 번씩만 쇼핑을 할 것!
욕구에 의한 소비, 사치품,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갖고 싶은 것을 사는데 약간의 제약을 걸어둔 것이다. 지름신을 방어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물론 생필품이거나 당장 필요한 것은 중간에 사기도 했지만 되도록이면 정해진 날 쇼핑을 하려고 노력했다. 매달 월급날을 쇼핑 데이로 정하고 그전에 사고 싶거나 필요한 것이 생기면 일단 메모를 해놓고 쇼핑 데이까지 기다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의외로 메모를 하는 것만으로도 사고 싶은 기분이 많이 진정되었고, 쇼핑 데이에 메모한 목록을 다시 살펴보면 객관적인 시각에서 안 사도 될 것들이 눈에 보였다. 메모를 할 당시에는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빨리 사고 싶어서 동동거렸던 물건도,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메모를 들여다봤을 때는 사지 않아도 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경우 다음 달 쇼핑 목록으로 연기하거나 아예 삭제하기도 한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이 습관을 통해 소비를 제어할 수 있었고 꼭 필요한 것만 사게 되었다.
결국 대부분의 소비는 순간의 충동, 욕구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소비는 필요보다 욕망에 의한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것들은 대부분 필요해서라기보다 갖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비란 감정적으로 먼저 결정한 후 이성적으로 합리화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시발 비용'이라는 것이 있다. 소비는 감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이면 보상심리로 무언가를 사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건강한 방법으로 감정을 해소하고 순간의 욕구에 제동을 걸어 잠시 지연시키면 생각보다 쉽게 소비 욕구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나의 경우 단지 시간을 좀 가졌을 뿐인데 소소한 소비를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었다.
요즘도 여전히 지름신은 자주 오시지만 대부분 쇼핑 데이라는 강력한 성벽을 뚫고 들어오지는 못한다! (물론 아주 가끔씩은 뚫고 들어오시기도 한다.. 그럴 때는 그냥 겸허히 받아들인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