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아이 마주하기

by 글짓는약사

자신의 내부에 있는 상처나 욕구불만 때문에 자라지 않는 아이를 '내면아이'라고 한다.


과거에 무시당하고 상처 받은 내면아이가 사람들이 겪는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평소에는 그 존재를 모르고 살다가도 스트레스 상황,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불쑥 나와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그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면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슬프고 억울한 사정을 알아주는 것이다.


내면아이를 만나서
그 아이를 잘 돌보아주라.
그러면 당신의 문제가
대부분 해결될 것이다.

-브래드 쇼-



예전에 어떤 책을 읽으며 내면아이라는 용어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로 나름 '어른스럽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씩 튀어나오는 '미성숙한' 태도에 스스로 놀랐던 적이 있었다. 지나고 나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렇게 화를 낼 일은 아닌데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던지,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인데도 기분 나빠하며 토라지는 경우들이 있었다.


내면아이의 존재를 모를 때는 단순히 '아직 어른이 덜 됐구나'하며 스스로를 다그치며 책망했다. 하지만 그렇게 후회와 반성의 시간을 가져도 어김없이 그런 일은 반복되었다.


내면아이의 존재를 알고 나서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내면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확히 몇 살 때였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인 것 같다. 요즘처럼 풍요로운 시대는 아니었기에 학용품 하나도 아껴 쓰던 시절이었다.


나에게는 선물로 받은 아끼는 노트가 있었다. 아낀다고 쓰지도 못하고 책꽂이에 고이 넣어두었던 건데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오니 남동생이 그걸 꺼내 낙서를 하고 있었다. 화나고 속상한 마음에 내 거라고 소리치며 노트를 뺏으려고 하니 어린 남동생은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 울음소리에 놀란 엄마가 달려왔다.


"동생이 갖고 노는데 그냥 좀 주지. 그게 뭐라고 동생을 울려? 누나가 돼가지고!"


아끼던 물건을 빼앗긴 건 나인데 엄마는 도리어 나를 야단쳤다. 그 때 나도 아직 어린아이였는데, 고작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게 그렇게 억울하고 분하고 서러웠다.(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좀 서럽다...) 남동생은 어려서 뭘 모르니 그럴 수도 있지만 적어도 엄마는 내 마음을 알아줬어야 했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지금 내 나이 정도의 엄마 역시 엄마가 처음이라 서툴렀겠지만 말이다.


엄마와 남동생은 기억도 못 하겠지만, 나에게는 몇 안 되는 어린 시절의 기억 중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어쩌면 그 영향으로 예쁜 노트에 대한 애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뭐든 손글씨로 쓰는 것을 좋아해서 지금 당장 쓰지 않더라도 예쁜 노트만 보면 사모으는 습관이 있다.


그때 만약 엄마가 속상한 내 마음을 알아주고 다독여줬다면, 성인이 된 후에도 상처 받은 내면아이가 내 속에 웅크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기에 엄마를 탓할 생각은 없다. 대신 내면아이의 존재를 알고나서는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위로를 해주었다.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얼마나 속상하냐고 괜찮다고, 더 좋은 걸로 사주겠다고 달랬다. 그랬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그때의 내가 된 느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서 마음이 좀 풀렸다. 상처 속에 갇혀있던 나의 내면아이가 풀려난 기분이었다.




그동안 상대의 일방적인 요구에 유난히 불편해하고 거부감을 느꼈던 것, 내 소유의 뭔가를 누군가(그게 가족일지라도) 허락 없이 가져갈 때 울컥하고 어른스럽지 못한 대처를 했던 것도 지금 생각하니 내면아이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내 것을 빼앗긴다는 느낌, 내가 원치 않는 요구를 들어줘야 되는 상황이 그때의 상황과 겹쳐졌기에 내면아이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이제 내면아이가 튀어나오는, 즉 스위치가 켜지는 상황을 알게 되었고 그 내면아이를 위로하고 달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같은 상황이 또 생기더라도 좀 더 어른스럽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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