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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약사 May 04. 2022

외모는 중요하다

너 자신을 속이지 말라!

또 한 번의 연애가 끝났다.


나는 연애에 있어서 신중한 편이라 쉽게 시작하지는 않지만, 대신 한번 사귀면 오래 만나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이번 연애는 최단기간이라는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다. 고작 석 달만에 이별을 고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사실 이건 시작부터 내가 나 자신을 속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좀 더 만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일 없어. 더 이상 속이려고 하지 마.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왜 그래?'


마지막까지 두 마음 사이를 오고 가며 며칠 고민해봤지만 사실은 후자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다. 이미 내 마음의 방향은 정해졌고,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정리를 하는 것이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이로운 일이었다.




사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외모가 내 스타일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큰 키는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마른 탓에 전체적으로 길어 보이는 외모였다. 보통의 바지를 통바지로 보이게 만드는 마법을 가진 사람이었다. 얼굴도 내가 좋아하는 동글동글한 스타일이 아니라 뾰족한 느낌이었다.


지난 연애를 돌이켜보면 나는 얼굴 생김새를 따지는 편은 아니지만 외모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체구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키가 큰 편이라 키도 크고 체구도 다소 큰, 듬직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남자를 볼 때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었고 (다른 중요한 요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키는 나보다만 크면 되지 뭐'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구에서 느껴지는 듬직함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허수아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마른 그를 보았을 때 크게 호감이 생기지는 않았고, 그냥 커피 한 잔 마시며 이야기나 좀 하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대화가 너무 재밌었다. 그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었고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었다. 관심사도 비슷하고 편안한 느낌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 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이 이어졌고 예의 바르고 다정한 그의 모습에 나도 점점 마음이 갔다.


'대화가 잘 통하고 다정한 남자'

 

내가 평소에 이런 남자 어디 없냐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외모가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번 만나보자고 생각했다. 만나다 보면 외모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그렇게 몇 번의 만남 후 연애를 시작했다. 봄이 오고 올해는 둘이 함께 벚꽃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렜다.


그런데 벚꽃을 본 바로 그날, 머리에 종이 울렸다. 좋아서 울리는 그런 종 말고, 깨달음의 종이었다. 둔탁한 종으로 머리를 맞는 느낌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 하늘을 가득 메운 눈부신 벚나무를 보며 함께 길을 걷다가 팔짱을 꼈다. 그때 생각했다.


아, 아니구나.



팔짱을 꼈는데 전혀 설레지가 않았다.


'남자랑 팔짱을 꼈는데 설레지가 않다니..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혹시 연애세포가 다 죽은 거 아니야?'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다만 그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팔짱을 끼니 뼈만 남은 것처럼 앙상한 그의 팔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곧이어 든 생각은 여름에 반팔 입으면 나보다 팔이 가늘겠네,였다. 설렘을 느끼는 대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외모는 중요하구나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든 내 눈에는 예쁘고 잘 생겨 보여야 연애가 가능하다. 양심적으로 이런 수식어를 붙이기는 좀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는 있어야 된다.


친구를 사귈 때는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연인이라는 관계는 조금 다르다.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느껴야 관계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외모 역시 중요하다. 그래서 연예인처럼 외모가 객관적 기준에서 뛰어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내 스타일'이어야 한다.


대화가 잘 통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도 외모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면 단순한 호감 이상의 감정, 즉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 눈앞의 이 사람과 스킨십을 하는 게 상상이 안된다면 그건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과는 좋은 관계로 잘 지낼 수는 있지만 연애를 하기는 힘들다.


이성을 볼 때 성격, 가치관,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에는 다들 공감하면서도 외모를 따지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얼굴이 밥 먹여주냐? 처음에나 좋지, 시간 지나면 아무 소용없다'


이런 말을 하며 외모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취향이라는 것이 있고 연애를 할 때도 취향은 중요하다. 만났을 때 전혀 설레지 않거나, 같이 다니기 부끄럽거나,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 외모라면 그 관계는 지속되기 힘들다.

 

예전에 자칭 '얼빠'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대놓고 본인은 남자를 만날 때 외모를 제일 많이 본다이야기했다. 물론 잘 생기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외모가 1순위는 아니었던 나에게도 그 친구의 명언은 공감이 되었다.


"남자가 잘 생기잖아? 그러면 막 화가 났다가도 얼굴을 보면 화가 풀린다니까?ㅎㅎ"


음... 상상해보니 그럴 것 같았다. 잘 생긴 남자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 눈앞에서 웃는다면.. 화가 사르르 녹아 없어질 것 같은 느낌. (물론 약간 티격태격하는 정도였을 때 말이다.)




우리 솔직해지자. 이성을 사귈 때 외모를 보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 중요도가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고, 각자 선호하는 취향이 다를 뿐. 누군가는 파란색을 좋아하고 다른 누군가는 핑크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이성의 외모 역시 다만 취향의 문제다. 취향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 눈에 좋아 보이는, 내 취향의 사람을 만날 권리가 있다. 취향을 포기하지는 말자.  


나이가 드니 주변 어른들은 사람은 인성이 중요하다며 외모 따지지 말라고 말하지만, 감정이 안 생기는 걸 어쩌란 말인가. 나도 안다. 외모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얼굴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니라는 거.


하지만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가장 많이 봐야 될 사람인데 적어도 내 눈에는 멋져 보여야 되는 거 아닌가. 결혼하면 다 똑같다고 정으로 산다고 하지만 그 '정'이라는 것도 그냥 생기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든다고 취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확고해진다. 이번 경험을 통해 외모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면 시작도 안 하는 것이 맞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다른 것들로 타협하려고 해도 결국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니, 너 자신을 속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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