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의 현실적인 웨딩홀 고르기
한 줄 문장으로 읽으면 이렇게 낭만적인 이야기가 없다. 이미 많은 연예인들이 일생 한 번뿐인 본인의 결혼식을 제주도의 푸른 자연에서 프라이빗하게 치렀고 SNS와 언론을 통해 대중에 전해지면서 제주 야외 웨딩에 환상적인 이미지가 더해졌다. 그러나 평범한 신랑, 신부라면 어떨까. 평생 쓸 운과 상당한 예산을 끌어다가 ‘올인’해야만 완벽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제주에서 야외 결혼식을 준비해 보니,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넘어야 할 산들이 많았다.
우선 제주가 가지고 있는 변수들이다. 제주도의 날씨는 변화무쌍하여 예보가 무용지물인 경우도 있다. 물론, 야외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비 정도는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하겠지만, 제주도에는 또 다른 복병이 있다. 바로 바람이다. 바람과 돌과 여인이 많아 삼다도라 하지 않았나. 바람은 예상하기 어렵고 포토월이나 웨딩 아치를 쓰러트리고 신부의 베일을 뒤집히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또, 무서운 것은 태풍이다. 요즘 태풍은 요지경이라 야외 웨딩을 하기 좋은 9월과 10월에 불쑥불쑥 들이닥친다. 이런 변수는 하늘의 뜻이니 모든 걸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장애물은 제주도가 '섬'이라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행기가 기본 교통수단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걸림돌이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나는 틈날 때마다 결혼식을 할 만한 장소를 돌아보러 다녔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직장 생활하거나 연차와 주말이 소중한 신랑 신부라면 베뉴 투어나 숙소 답사, 스드메 계약 등을 위해 제주에 드나드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제주도로 하객을 모시는 문제에 이르면 비행기 티켓과 숙박과 제주도 내에서 이동할 교통편까지 고민할 부분이 더 많아진다.
이런 어려운 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예 직계가족 위주의 초스몰웨딩을 하는 커플들도 늘었다. 제주도민이고 하객 대부분이 제주에 있는 나로서는 제주의 결혼 문화까지 고려해서 200명 규모의 식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중고가 있었다. 고로, 결혼 준비의 첫 단계인 결혼식을 치를 장소를 선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요즘 결혼식이 많이 간소해졌다고 해도 제주도의 결혼식은 기본적으로 피로연을 하루 종일 진행한다. 예식은 대개 10시 30분이나 11시에 치르고, 이어지는 피로연은 4~5시는 되어야 마무리된다.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방문하는 하객들에게 안정적으로 따끈한 식사를 대접하려면 펜션이나 카페 등은 1차로 선택지에서 제외해야 했다. 공항에서 지나치게 멀리 떨어진 시외 지역도 선택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오는 하객이 꽤 있을 예정이고 제주도 하객 상당수가 제주 시내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식대부터 여러 조건과 서비스가 굉장히 흡족했던 리조트가 이 부분에서 최종 선택을 받지 못했다.
대관료나 식대가 너무 비싼 곳도 선택할 수 없었다. 제주도 결혼문화 특성상 동시 예식이나 코스요리를 제공하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대부분 뷔페나 한상차림인데, 식사 퀄리티도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했을뿐더러 투자 비용 대비 퀄리티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회사 동료나 지인의 결혼식을 꽤 다녔지만, 제주도내 예식장들이 같은 업체에서 출장뷔페를 불러다 쓰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가짓수나 맛이 비슷비슷했다.
뷔페가 나름 괜찮은 도내 모 호텔이 리뉴얼 후 웨딩을 진행한다고 해서 야외 웨딩을 포기하고서라도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면 좋을 것 같은 마음에 투어를 가기도 했다. 그러나 호텔 내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뷔페에 실망하고 식사에 대한 미련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매우 고급 호텔이나 리조트는 식대가 서울 내 호텔 웨딩 수준이니 퀄리티도 그에 준하리라 생각되지만, 나는 럭셔리 웨딩을 할 만한 자본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견적만 알아보고 후보에 올리지는 않았다. (스몰웨딩이라면 예쁘고 맛있는 케이터링 업체나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악천후를 대비한 실내 공간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야외 예식 공간은 하나같이 예뻤으나, 실내 공간이 없거나 너무 아쉬운 곳이 많았다. 나는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마음 편하게 지낼 성격이 못되고 비가 와도 어바웃 타임처럼 환하게 웃을 자신도 없었으므로 타협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이 없는 곳은 모조리 탈락시켰다. (저와 같은 성격인 분이 있으시다면 야외 결혼식은 피하세요. 10년 늙습니다.)
그래서 결국 완벽한 곳을 찾았느냐고? 완벽은 없었다. 야외 결혼식을 진행하는 제주도내 리조트, 카페, 펜션, 컨벤션, 웨딩홀, 호텔 17곳에 견적 문의를 하고 7곳을 직접 방문하고 1곳을 계약했다가 취소한 끝에 최종 선택한 내 결혼식 장소는 뜬금없게도 골프장이다.
회사와 제휴가 되어 있어 식대와 음주류 할인을 받을 수 있고 (그나마) 식사가 괜찮다는 평이 있으며, 야외예식과 실내 예식 모두 가능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도 요금이 만 원 선일 정도로 접근성도 괜찮았다. 골프장 클럽하우스 내의 연회장을 이용하므로 적당히 고급스럽기도 했다. 비가 오면 식사 장소에서 예식을 해야 하므로 번잡스러울 것 같고 야외에서 예식을 할 때 골프장 이용객들이 있어 프라이빗하지 않을 것 같다는 걸리는 점들이 있으나, 모든 조건이 타협할만한 수준이었던 곳은 이곳이 유일했다.
제주도의 푸른 하늘 아래 진행하는 야외 결혼식이든, 웅장한 호텔 웨딩이든, 아기자기한 하우스웨딩이든, 누구나 꿈에 그리는 결혼식이 있다. 그리고 웨딩홀 투어를 시작하면서 그 꿈을 상당 부분 내려놓고 현실과 타협해 나간다. 베뉴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결혼할 곳은 바로 여기야!’라며 감격에 차 계약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여러 조건들을 따져가며 최선의 선택지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유난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그 모든 예식장 후보들을 알아보는 동안 나는 의외로 매우 행복했다. 힘든 과정이지만, 결혼식의 큰 틀이 잡히고 결혼식의 그림이 분명 해지는 단계라는 점에서 설렘이 더 컸다. 웨딩홀 선택의 늪에 빠진 신랑, 신부가 이 글을 본다면,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로망을 이룰 수 있는 바로 그 베뉴를 곧 만날 수 있길 바란다.
핑거 프린세스, 프린스들을 모십니다 ˚✧₊⁎( ˘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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