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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재 Oct 09. 2020

시집갈 수 있을까?
(feat. 커피소년)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버린 소개팅



찜닭을 보면, 그날의 짧지만 강렬했던 그와의 만남이 생각난다.  


“내일 저녁 7시, 이수역 괜찮으신가요?” 


‘이수역’이라, 환승 통로를 걸어보긴 했지만, 역 밖으로 나간 적 없는 생소한 동네다. 거기 소개팅에 좋은 카페라도 있는 걸까? 퇴근길의 혼잡한 지하철에서 나는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남편 회사 선배인데, 부모님은 아프리카에 계신대. 네가 결혼을 아직 안 해봐서 모르는데, 이거 정말 중요하다. 시댁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아니?” 


이수역 13번 출구로 나오자 멀리서 걸어오는 그가 보였다. 


“회사에서 오시는 거죠? 전 집에서 나오는 길이라. 저희 집이 이쪽이에요. 뭐 좋아하세요?” 

“(아.. 집이 이곳에...?) 아, 뭐든 괜찮아요.”



골목을 걷다가 눈에 보이는 찜닭집으로 들어갔다. 어색한 분위기가 길지 않게 바로 주문한 찜닭이 나왔다. 나는 좋아하는 닭 가슴살을 앞 접시에 올렸다.  


“이거 참 이상하지 않나요?” 


그는 찜닭 위의 토핑처럼 놓인 오이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들어 올렸다. 


“이 오이. 찜닭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데, 오이와 찜닭은 너무 궁합이 안 맞아요. 그렇죠?” 

“아, 그래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당근은 뭐- 그럭저럭 괜찮은데, 오이는 정말 아니에요. 다른 채소도 있지 않나?” 


나는 앞접시에서 식어가는 가슴살에 따뜻한 양념을 한 스푼 넣었다. 다시 따끈해진 고기를 입으로 넣으려는 순간, 그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엇. 지금 고기 드시면 안 되죠! 당면부터 먹어야 해요. 이거 불어버리면 맛이 없어요. 당면부터 어서 드세요.” 


그의 당면 전도(?)는 찜닭을 먹는 내내 계속됐다.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찜닭이 아닌 당면을 계속 먹었고, 쉼 없이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은 아프리카 가나에서 사업하셨는데, 지금은 함께 살고 계세요.” 

“아, 그러시구나. (친구야, 듣고 있니?)” 

“아프리카 돕는 구호단체, 투명한 기부금 운영? 전 안 믿어요. 차라리 개인에게 맡기지.” 

“그러실 수도 있죠. (근데 제가 구호단체 홍보팀에서 일한다고 말했는데...)” 


그는 왜 이 자리에 나를 만나러 나온 것일까? 뱃속에서 불어나기 시작한 당면 탓인지 불편한 대화 때문인지 금세 배가 불렀다. 그도 배가 부르다고 했다. 


“아주머니, 여기 남은 것 좀 싸주실 수 있나요?” 



이쯤 되면 ‘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게 확실하다. 그런데, 이 남자 후식도 함께 먹자고 한다. 우리는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로 자리를 옮겼다.  


“전 레인보우 샤베트요.” 

“아, 찜닭을 드셨으면 샤베트는 아니죠. 체리쥬빌레 드세요.” 

“(단호한 목소리로) 전 샤베트가 좋아요. 레.인.보.우.샤.베.트. 주세요.” 


당면부터 시작된 그의 지속적인 취향 강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포인트로 결제하겠다는 그를 간신히 말려 내가 계산을 했다. 쏟아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때 내 귀를 의심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말에 저희 또 만날까요?”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소개를 주선한 친구는 이야기를 듣더니 ‘남은 음식 포장’에 분개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상하네, 남자들 사이에서 참 괜찮다던데...”



바라는 게 많아서 못 만나는 걸까? 


32살 전후로 소개팅을 많이 했다. 결혼한 친구들은 그들의 인맥 사전을 열어, 한 다리, 두 다리 건너 형제님들을 나에게 소개했다. 외주 작업으로 만난 파트너는 자신의 남사친을, 지방에 사는 고모는 나의 신상정보를 모교회에 뿌리더니 ‘서울에서 자기 할 일은 하는데, 혼기가 꽉 차서 고향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어버린 아들들’의 정보를 내게 끊임없이 보냈다. 한 번은 소개받기로 한 남자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이유인즉 ‘목소리를 한번 듣고 싶어서’ 라는데 호칭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했다. 여사님? 선생님? 어.. 머.. 님? 나는 다시 또 전화가 올까 봐 그녀의 번호를 ‘소개남 맘’으로 저장했고 메신저에도 소개남 맘이 떴다. 오 마이 갓.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고 몇몇 친구들은 말했다. 


“네가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남자 다 거기서 거기야. 눈을 좀 낮춰.” 

“일단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해. 너는 키를 포기해.” 

(내 키는 169cm, 나보다 1cm만 더 큰 분을 바라는 건 아주 큰 욕심일까?)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며 수긍이 갔던 조언은 “처음엔 별로여도 세 번은 만나봐. 처음엔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찾기 힘들더라.” 소개팅으로 만나 결혼하고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였다. 



세 번을 만나라, 나를 알아가는 ‘세 번의 기회’ 


첫 만남에서 본인의 매력을 온전하게 보여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연애도 학습의 축적이라 과거 연인의 좋았던 점을 찾거나 그와 반대인 이에게 끌리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가진 결핍 때문에 상대의 모습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까? ‘세 번을 만나라’는 것은 상대뿐 아니라 진짜 나를 알아가는 ‘세 번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 또한 그와 나의 ‘다음 약속’ 이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친구의 청첩장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의 라디오에서 커피소년의 ‘장가갈 수 있을까’가 흘러나온다. 누구야? 누가 내 마음 저기 옮겨놨어? 


누굴 만난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남들처럼 그렇게

나도 시집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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