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Feb 24. 2020

절박한 사람의 부탁은 쉽게 거절해서는 안된다

한 번의 거절이 돌이킬 수 없는 관계의 끝을 가져올 수 있다

 "쉽지 않은 부탁을 좀 하려고 해. 다시 예전 팀을 맡아주면 안 되겠어? 내가 좀 많이 힘들어서, 지금 김 팀장이 돌아와 주면 든든할 거 같은데."

 "죄송해요, 상무님. 상무님도 알다시피 지금 있는 팀도 7개월이 안되었고, 제가 예전 팀에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잘 아시잖아요. 전 지금이 너무 좋아요. 남아있는 박 차장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예전 직장에서의 일이다. 일은 늘 많았고, 잦은 야근에 지쳐가며 늘 직장생활에서의 어려움에 하루하루를 보낼 때였다. 그나마 믿고 의지했던 매니저가 퇴사를 하게 되었고, 이직을 하면서 그는 나를 챙겨주려고 애를 많이 썼다. 퇴사하기 전 술도 사주고, 밥도 사주면서 본인이 함께 하자고 불러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 회사로 이직해준 나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일하다 자신이 먼저 떠나는 미안한 마음을 함께 보이며, 평소와는 다른 감성적인 모습을 그 무렵 자주 보였다.

 

  이렇게 퇴사 전까지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당시에는 나를 대했고, 어느 날 자신의 방으로 나를 불렀다.

 "김 팀장,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해."  조금은 망설이며 꺼낸 그의 말에 난 조금은 놀랬고, 그의 제안이 무엇인지도 궁금해하며 입을 뗐다.

 "괜찮다니까요. 왜 이렇게 많이 미안해하세요. 앞으로 안 볼 사람처럼." 그의 마음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말을 했더니, 그는 조금은 수월하게 말을 꺼냈다.

 "내가 지금 나가고 나면 아마 김 팀장 혼자 꽤 힘이 들 거야. 그래서 말인데, 내가 김 팀장에게 힘을 좀 실어줄까 하는데. 지금 팀 하고, 연구소를 합쳐서 팀을 꾸려줄 테니 통합 팀장 자리 어때?"  난 그의 제안이 의외였고, 한 편으로는 솔깃하기까지 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개발까지 김 팀장이 끌고 갈 수 있으면 영업하고도 맞서서 일하기 수월하고, 개발팀 하고도 어렵게 커뮤니케이션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난 그럴싸한 제안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정작 마음은 지금 있는 팀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했고, 그에게 제안과는 다른 부탁을 했다.

 "상무님, 그렇게 말씀하시니 편하게 말씀드릴게요. 제가 지금 팀에서 많이 힘들었던 거 아시죠?"

 "알지. 내가 제일 가까운 곳에서 봤잖아." 그는 내 입에서 나올 말을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렸고, 내게서 나온 말이 더 놀랍고,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저 영업본부에서 일할 수 있게 대표님께 얘기해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주세요. 아마 기존 영업들하고 겹치지 않는 포지션 정도면 좋을 것 같아요."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본인이 대표님과 상의해 보겠다고 하고는 그 자리 대화는 끝이 났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뒤에 영업본부장이 내게 면담을 요청했고, 영업본부에서 내가 맡을 새로운 조직에 대한 계획 및 부서 구성원들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얘길 꺼냈지만, 정말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의 퇴사와 맞춰 그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난 새로운 조직으로 인사 발령되고, 내가 생각한 대로는 아니지만 팀의 구색은 갖춰지게 됐다. 처음에는 업무에 적응되지 않아 영업회의도 어색했지만, 차츰 어색했던 회의도 익숙해졌고, 새로운 팀에서도 조금씩 성과도 나고 재미도 생겼다. 이렇게 6~7개월이 흘렀고, 그렇게 떠났던 그와는 가끔씩 안부 전화만 하고 지낼 정도로 그와 나는 바쁘게 지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기 시작한 어느 날 그는 조용히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나는 그의 복귀가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이직했던 회사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 들으면서 그가 했을 마음고생에 마음이 아팠다. 그가 재입사 후 출근한 어느 날, 난 그의 호출로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나 차를 마셨고, 그는 조금은 심각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김 팀장, 좋은 모습으로 다시 봤어야 하는데 이렇게 다시 돌아오게 되었네." 왠지 그의 어깨가 많이 처져 보였고, 그가 나를 불러낸 진짜 이유가 더 궁금해졌다. "에이, 상무님 답지 않게 왜 이렇게 기분이 다운되셨어요. 뭐 하실 말씀이?"  난 그가 그냥 돌아온 기념 인사치레가 아님을 잘 알았고, 형식적이진 않았지만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가 나올 듯한 이 시간이 빨리 지났으면 했다. "음, 쉽지 않은 부탁을 좀 하려고 해. 다시 예전 팀을 맡아주면 안 되겠어? 내가 좀 많이 힘들어서, 지금 김 팀장이 돌아와 주면 든든할 거 같은데." 난 그의 표정에서 절박함을 봤지만, 그 순간 난 내가 봤던 그의 표정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거절의 뜻을 단호하게 말했다. 

 "죄송해요, 상무님. 상무님도 알다시피 지금 있는 팀도 7개월이 안되었고, 제가 예전 팀에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잘 아시잖아요. 전 지금이 너무 좋아요. 남아있는 박 차장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그는 나의 거절에 꽤나 상처를 받은 표정이었고, 그 날 이후로 왠지 모르게 나와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 버렸다. 예전에는 가끔 술도 하고, 차도 자주 마시면서 서로를 의지했던 사이였는데, 그 거절 한 번으로 많은 게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 우리 둘 모두 다니던 회사가 바뀌고, 가끔씩 OB 모임을 하면서 얼굴을 볼 일은 있었지만 함께 일 할 때와 같이 관계가 편해지거나, 부드러워지진 않았고  무언가 어색한 분위기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커졌다. 어느 날 술기운을 빌어 그 날의 변명과 단호하게 거절한 나의 행동에 대한 사과도 해봤지만 그는 조용히 웃으며 어깨만 다독이며 그 시간은 지나갔다.

  난 그 날의 선택으로 내 인생에 꽤나 중요했던 한 사람을 잃었다. 그와 함께 일할 때 많이도 따랐고, 그와 같은 매니저가 되겠다고 마음으로 늘 고개 숙였지만, 난 그의 절실함을 보고도 외면했고, 그 잠깐의 선택으로 난 5년을 믿고 따랐던 그에게 지워졌다. 그 날의 교훈은 꽤나 무겁고 커서 그런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일만 생각하면 내 마음은 지금도 많이 무거워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클레임에도 예의가 필요한 법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