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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Feb 19. 2021

이모가 조카 이마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치아도, 일도 처리해야 할 시기가 있다

지수야, 아직 흔들리지도 않는 이를 벌써 뽑았어?


어릴 적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겪는 경험들 중 하나가 아마 발치(拔齒)의 경험일 것이다. 나 또한 문고리에 실을 묶어서 이를 뽑았던 기억까지는 아니어도 이빨에 실을 묶었던 기억은 어렴풋이 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 이빨 개수가 28개인데 비해 내가 유치를 28개까지 뽑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아픈 기억은 빨리 잊는 것 같다. 아마 치과 가기를 두려워하는 것도 어릴 적 어금니가 썩어서 처음 찾은 보건소에서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큰 마취주사와 무서웠던 발치(拔齒)의 경험 때문에 아마도 긴 시간 트라우마같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아 기억 속 저편에서 끊임없이 그 날의 두려움을 상기시켜주고 있었을 것이다.


이빨 요정은 빠진 이빨을 선물로 교환해주는 요정이다.

출처 : 위키피디아


이빨 요정 관련된 이야기는 동서를 고금 하고 많이 보고 들었던 이야기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소재가 될 만큼 아이들의 발치(拔齒)하는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잊게 해 주기 위해 구전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한 동안 우리 아이들도 이 이빨요정을 많이 믿는 눈치였다. 한 동안 발치(拔齒)한 이를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빠진 이를 손으로 집어 책장 한쪽에 경건하게 모아놓으며 환하게 웃던 둘째 아이의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 발치(拔齒)의 기억중 가장 충격이었던 발치(拔齒) 사건은 아마 일곱, 여덟 살 때였던 것 같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를 뺀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부모님이 시킨 대로 수건을 물고, 조금씩 흔드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좀처럼 흔들리는 이는 빠질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몇 시간을 같은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 당시 집에 잠깐 오셨던 이모가 이에 실을 걸 때만 해도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빨에 실을 걸고 잠시 방심하는 사이 당신의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내 이마를 후려쳤고, 머리에 불빛이 번쩍하면서 몸은 '홱'하고 뒤로 젖혀졌다 다시 돌아왔다. 방심하다 이마를 맞은 서러움에 울음이 날락 말락 할 때 이모는 실에 걸려 있는 이빨을 보여줬고, 난 머리 통증과 놀란 마음에 이가 내 몸에서 빠져나간 줄도 몰랐다. 정말 찰나였고, 잠깐이지만 신기하기까지 했다.


첫째 아이도 유치를 한참 뺄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내에게 조금의 도움만을 받고 스스로 이를 빼서 난 '녀석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를 빼는 일만큼은 우리 집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딸아이가 있었고, 큰아이도 딸아이 앞에서는 평범한 수준의 발치(拔齒) 능력일 정도였다. 아무도 딸아이를 따라갈 수가 없었고, 아예 이를 빼는 일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조금만 흔들리면 1~2시간을 넘기지 않고 이를 뽑아냈으니 거의 달인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히려 뽑지 말아야 할 영구치까지 뽑을까 걱정이 되기까지 했었다. 아직까지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주의를 요할 듯하다.


아이들은 영구치라는 새롭게 바꿀 이가 있으니 이렇게 유치를 빼는 게 당연하면서도, 중요한 일이다. 유치를 제때에 빼주지 않거나 발치를 잘못하면 새롭게 날 이가 자리를 잘못 잡거나 이가 건강하게 나지 못한다. 따라서 한참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이 유치를 제 때에 잘 빼줘야만 어른이 되어서 계속 써야 할 영구치가 건강하고, 바르게 잘 자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이를 뽑게 되면 더 이상 자랄 새로운 이가 없다. 따라서 최대한 청결하고, 상하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한다. 오롯이 자신의 치아 만으로 평생을 살긴 어렵겠지만 최대한 오래오래 자신의 이를 쓰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오복 중 하나를 누리는 것이다.


물이 깊을수록 소리가 없다.  


이처럼 치아도 빼거나 치료해야 할 시기가 있고, 이 시기를 놓치게 되면 많은 어려움을 동반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 치아와 같아 보인다. 멀쩡한 치아를 서둘러 뺄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이 살면서 나서야 할 때와 자세를 낮추고 겸손해야 할 시기가 따로 있다. 나서지 말아야 할 때에 나서는 사람을 보면 한 없이 가벼워 보이기도 하고, 쓸데없이 적을 만들기도 한다. 나서야 할 때가 아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자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과대 포장하기도 하고, 갖고 있는 능력이라고 해도 필요 이상의 과대 포장으로 자신의 능력 이상을 보여주려다 스스로 자멸하며 자신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썩은 치아를 방치하다가 신경까지 손상되어 크게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또 유치 발치할 시기를 놓쳐 영구치가 고르고, 건강하게 나지 않아 나중에 교정이라는 큰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다. 우리 삶에서도 제때에 처리하거나, 바꿔야 할 일들을 조금 귀찮다고, 혹은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다가 놓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렇게 해야 할 일을 제시간에 처리하지 못하면 아주 작은 노력만으로 처리가 될 법했던 일을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해결해야 할 수도 있고, 이미 큰 문제로 번져 수습이 안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일이 그렇다. 늘 때가 있고, 그때를 놓치면 몇 배의 번거로움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후회에 이르게 한다. 당장의 수고스러움과 번거로움이 귀찮고, 불편해도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처리한 일은 두고두고 후회를 낳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처리해야 할,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내일로 미루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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