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아이를 변화시킨 선생님의 한 마디

그 시절 나의 선생님 이야기

by 추억바라기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삶에는 배움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일을 배울 수도 있고, 공부를 배울 수도 있고, 인격과 인성을 배울 수도 있다. 우리는 살면서 그 배움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접하는 때가 학창 시절일 듯하다.


모든 사람들이 학교에서 자신의 평생 잊지 못할 은사님이나, 잊히지 않는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평생 영향을 주는 선생님을 만나는 것 또한 자신의 복인 것 같다. 좋은 사제 지간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막상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영향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식을 둔 부모 입장에서 이렇게 아이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선생님을 만난다는 건 무척이나 행운이다. 우리 아이들도 학교를 다니면서 이렇게 만난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도 초등학교 5, 6학년 때 만났던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합리적, 논리적 사고와 자기주장 및 표현력이 좋은 아이로 커 갈 수 있었던 것도 그 2년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들에게뿐만 아니라 부모인 우리에게도 오랜 시간 잊히지 않는 멋진 아들의 스승님으로 기억 속에 머물 것 같다.


어릴 적 내게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나는 학창 시절 선생님이 계셨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다른 또래 애들보다 작았던 내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사에 포기가 쉬웠던 내게 적당한 승부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내기를 걸어오시기도 했었고, 4학년 때까지 학업 성적이 그다지 우수하지는 않았던 내게 공부하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다른 애들보다 일찍 학교를 입학했던 내겐 같은 반 친구들이 동급생임에도 불구하고 한 살 많은 형, 누나나 다름이 없었다. 평소 외향적인 성격도 아니었고, 이런 나이차까지 한몫 더해져 조금은 더 주눅 든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었다. 이런 내겐 리더십은 내 속 어딘가를 모두 뒤져도 나올 것 같지 않았던 성향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런 내게 늘 '할 수 있다'를 말씀해 주셨고, 친구들을 많이 배려하는 좋은 어린이로 착한 어린이 상도 추천해 주셨다.


이런 선생님 덕에 학급 부반장의 소임도 맡았던 나였지만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사건은 따로 있었다. 남들 앞에 서는 게 늘 자신 없었던 내가 선생님의 추천으로 교내 웅변대회에 나가게 됐다. 학급에서 반장이 빠지면 반장을 대신해 조회, 종례 인사도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던 나였다. 그런 내가 전교생 앞에서 웅변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원고 작성까지야 어떻게든 했지만 웅변대회에 나갈 생각을 하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웅변대회 연습 시간보다 오히려 웅변대회 날에 학교를 빠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을 정도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날 교실에 남겨 직접 웅변 지도를 해 주셨고, 결국 웅변대회 당일까지 선생님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대회 당일 전교생 앞에 서게 됐다.


단상에 선 나는 긴장감에 머릿속이 아득해지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기까지 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내 다리가 떨리는 게 들키지 않도록 전교생들과 나 사이에는 큰 단상이 놓여있었다. 다리를 전부 가려준 단상 덕에 사시나무 떨듯 다리는 떨렸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떨리는 목소리까지는 감출 수가 없었고, 그렇게 떨리는 목소리는 마이크를 따라 학생들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정말 어디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때 우연히 고개를 돌리다 선생님을 바라봤고, 선생님은 입모양으로 '자신 있게 해(그때는 그렇게 보였다)'와 오른손 엄지 척 포즈 취했다. 이런 선생님 덕에 긴장했던 내 마음이 조금씩 자신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이 연사 힘차게, 힘차게 두 손 모아 외칩니다~"


그렇게 내 생애 첫 웅변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요즘이야 웅변 학원이나 스피치 학원들이 있지만 1984년 그 시절에는 특별히 돈을 받고 사설로 웅변을 가르쳐주는 곳이 흔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내게 웅변대회를 추천한 것도 선생님이셨고, 지도하셨던 것도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의 지도와 배려로 교내 대회지만 첫 웅변대회에서 입상까지 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많은 학생들 앞에 서거나 발표를 할 때에도 부끄러워하거나, 떠는 일이 없어졌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한동안은 선생님과 연락을 하면서 지냈다. 내 어머니께서도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달라졌던 아들을 지켜봐 왔기에 10여 년을 선생님과 연락을 하고 지낼 정도로 감사의 마음을 항상 갖고 계셨다. 내가 군대에 갔을 때도 어머니는 선생님과 연락을 하고 지내셨다고 했다. 다 큰 제자가 늘 기특하고 대견하셨던 선생님은 어머니를 통해 내 소식을 늘 전해 들었다.


선생님이 정년 퇴임을 하고 나서는 연락이 끊겼지만 숫기 없고, 수줍음 많이 타던 열한 살 그날부터 내겐 늘 감사하고, 고마운 스승님이셨다. 살아계신다면 이젠 일흔이 훌쩍 넘으셨을 듯싶다.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그 시절 선생님의 온화한 미소와 아낌없이 엄지 척을 보내주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난다. 스승의 날 의미가 많이 퇴색하기는 했지만 5월 중심의 어느 날 빨간색 카네이션을 가슴에 한가득 달고 활짝 웃으시던 그날의 선생님 얼굴이 생각난다.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사회나 직장에서 만나는 어떠한 멘토보다 가장 먼저 만나는 멘토다.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시기의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이다. 요즘 같이 아이들 인성보다는 성적만이 우선시 되는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이 진정으로 스스로가 존경하는 선생님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설사 훌륭한 멘토인 선생님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교육 환경에서는 그런 가르침을 받아서 성장을 하기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좋은 스승이 사라진 시대라고 할 정도로 우리의 현재는 입시와 성적으로만 학창생활을 얘기한다. 난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내 나이쯤 되었을 때 스승의 날이 되면 행복하게 기억되는 선생님 한 두 분이 떠올랐으면 한다. 지금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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