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디스 댓 플리즈

일본 여행서 생긴 일인데 이게 무슨 일이고?

by 추억바라기

며칠 전 아들이 '가족 여행'을 주제로 수행 과제 에세이를 써야 한다고 최근 다녀온 가족 여행이 어디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다니지 않은지 꽤 시간이 지난 것을 깨달았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 여행조차 제대로 다녀온 게 햇수로 2년이 되었다. 그렇게 다녀온 가족 여행을 생각해보며 문득 우리 가족 첫 해외 여행지인 후쿠오카에서의 즐거웠던 한 때가 생각났다.


때는 바야흐로 2018년 1월. 우리는 처음으로 국내가 아닌 곳으로 여행을 갔다. 아이들은 1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보는 것이 처음이었고, 휴양이 아닌 여행이 목적이라 설렘은 더 컸었다. 두 달 전부터 사전 예약 및 여행 코스에 대한 계획을 모두 세우기는 했지만 나도 해외 자유여행은 처음이라 설렘과 두려움의 감정이 여러 차례 교차했었다. 다행히 일본, 특히 후쿠오카는 한국인이 많이 찾는 여행지여서 그런지 여행자를 위한 안내 표지판이 잘 되어있었고, 여행지에 대한 소개도 여행책자에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특히나 감동이었던 것은 우리가 묶었던 호텔뿐만 아니라 게스트 하우스에도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있어서 그리 불편함을 모르고 숙소에서 지낼 수 있었다.


문제는 후쿠오카 1일 차 여행을 끝내고 신칸센을 타고 이동한 기타큐슈에서부터였다. 후쿠오카와는 다르게 여행자를 위한 안내 표지판 등이 후쿠오카와는 비교되게 부족했고, 특히나 여행지마다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이 있던 후쿠오카와는 달리 영어조차 소통이 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마음 속내야 알 수 없지만 다행히 일본 현지인들의 대부분은 무척이나 친절한 인상이었고, 음식점 메뉴판에도 사진과 함께 음식 메뉴들이 나와 있어서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계획했던 여행지는 편의를 제공하는 도심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우리의 재래시장과 유사한 단가 시장이나 사전에 찾아봤던 음식점들은 골목 구석구석 다운 타운과는 거리가 있는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계획을 했었던 터라 우리는 열심히 그리고 용감하게 기타큐슈 지역을 도보로 구경 다녔고, 재래시장을 구경하며 허기진 배도 채울 겸 맛있게 보이는 먹자골목 내에 어묵가게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한참 일본어에 관심 있어하던 딸아이 덕에 가볍게 일본말로 인사까지는 했지만 이내 음식 주문을 위한 절차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특별히 메뉴판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었고, 벽에 걸려있는 일본말로 된 메뉴들은 우리가 읽거나,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한참을 난감해하며 손으로 네모난 책 모양을 그리며 '메뉴'만을 얘기하던 내게 돌아온 건 인상 좋은 주인장의 어색한 웃음뿐이었고, 어쩔 수 없이 벽에 걸린 음식표를 가리키며 하나씩 '원(One)', '원(One)'을 읊으며 우리 앞에 나올 음식들이 먹을 수 있는 게 나오기를 빌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우리 앞에 놓인 어묵 한 상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맛이었고, 양이 조금 적어 보여서 추가로 주문할 때는 조금 더 수월하게 음식을 시킬 수 있었다. 다행히 음식이 우리 앞에 있으니 먹고 싶은 음식을 가리키며 다시 한번 '원(One)', '원(One)'을 외치면 그뿐이었다. 맛있게 먹고 나오는 길에는 급하게 번역기를 찾아 맛있게 먹었다는 표현의 일본말을 주인장에게 건네고 나왔다.

sticker sticker

'이타다키 마~스~'


그렇게 의사소통이 안될 것 같은 곳에서도 소통을 성공한 이유 때문인지 우리에겐 없던 자신감까지 붙었고, 오후 내내 여기저기를 잘도 다니고, 구경하며 우린 여행 자체를 즐겼다. 하지만 정작 해가 지고 번화가에 있던 식당 한 곳에서 우린 지금도 기억날 만한 해프닝을 겪었다. 날이 어두워져 스마트폰 지도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워낙 눈에 띄는 간판이라 어렵지 않게 우린 식당을 찾았다. 평일이었음에도 식당 안은 제법 손님으로 붐볐고 알아듣지 못하는 직원의 안내에도 불구하고 우린 무사히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식당 직원도 우리가 애초부터 현지인이 아님을 알고 다행스럽게도 다른 질문 없이 메뉴판부터 자리에 가져다줬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메뉴판을 빼곡히 채운건 알아볼 수 없는 일본 말뿐이었고, 난감하게도 음식 사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말로 가득 채워진 메뉴판은 이 음식이 밥인지, 술인지, 음료인지조차 알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간단한 영어로 물어보기 위해서 직원을 불러 영어를 시도하려고 했으나 직원 또한 난감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우리를 바라보며 어색한 웃음으로 일관했다. 이렇게 난감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우리 테이블로 어떤 남자가 다가왔고, 그가 내게 건넨 것은 영어로 되어있는 메뉴판이었다. 그는 건너편 테이블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한국인 여행자였고, 다행히 영어로 된 식당 메뉴판을 내게 건네주었다. 다행이다 싶어 메뉴판을 들여다봤지만 사진이 없기는 마찬가지였고, 요리 이름 자체만 봐서는 어떤 요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 이 요리가 밥인지, 음료인지, 고기인지 정도는 알아볼 수가 있었다.


아쉽지만 우린 앞에 수식어는 생각지 않고 '~프라이드 라이스', '~덤플링'등의 알만한 단어로 조합되어 있는 음식들을 손가락을 가리켜가며 주문했다. 다행히 손가락으로 꼽는 원, 투 등의 영어 소통은 가능한 듯 보여서 주문이 제대로 들어갔음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온 음식을 보며 우린 또 한 번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적으로 주문했던 일본 음식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양이 많이 적은 편이었다. 그 부분을 간과하고 주문한 것이었다. 채워지지 않은 위장을 데리고 숙소로 이동하기는 싫었지만 그렇다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메뉴판을 다시 들여다 보기는 더 싫었다. 갑자기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다가 옆 테이블에 차려진 눈에 띄는 익숙한 음식을 봤고, 난 홀에 있는 직원을 보며 손을 들어 자리로 불러 바로 주문을 시도했다.


"익스큐즈 미, 스터 프라이 호스트(숙주 볶음쯤이라고 생각하고)!"

"......(역시나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알아듣지 못하는 직원에게 옆에 테이블의 음식을 직접 가리키며 나는 다시 한번 외쳤다. 물론 눈으로는 옆 테이블 일본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는 인사를 건넸다.

"디스, 디스 원 플리즈~!(손가락으로 멀찌감치 있는 숙주볶음을 가리키며)"

"아~ 코레('아 이것'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옆 테이블 다른 음식을 가리키며)"

"노! 노! 노~, 그러니까 낫 디스, 댓 플리즈 원, 원~!(다시 한번 뻗었던 손을 더 길게 뻗어 숙주볶음을 가리키며)"

"아~아~, 오케이!!!"

그제야 직원은 우리에게 활짝 웃으며 앞니를 보였다. 그도 무언가 큰 거사를 성공한 사람같이 주방까지 의기양양하게 잰걸음으로 한달음에 걸어가 주문을 넣었다. 그제야 주문했던 나도 편한 마음으로 테이블 위에 음식과 맥주를 곁들여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에서 우린 첫 해외여행을 성공리에 즐길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제대로 즐기려고 했었던 마음에서부터였을 것 같다. 같은 동양인이지만 생김새도, 취향도 많이 다른 두 나라여서 그런지 해외에 나왔다는 생각이 생각보다 짙게 났었다. 다행히 어딜 가나 웃음을 보여주는 일본 사람들 덕에 그래도 조금은 위화감이나, 언어의 장벽 때문에 생겼던 답답함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의 속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본 일본 보통 사람들도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뉴스나 기사를 보며 풀리지 않는 숙제와 같은 한일관계의 문제 때문에 늘 불편했던 일본이었기에 가까이서 경험한 일본이란 나라의 모습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판단이 서질 않지만 작금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그들도 조금은 현명하고, 멀리 내다보는 원시안적인 시선으로 앞으로를 풀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코로나가 해결되고, 한일 관계가 좋아지게 되면 일본은 다시 한번 찾고 싶은 곳이다. 우리의 소중한 4일이라는 시간을 추억하고 왔으니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여행지라는 생각이다.



그나저나 그날 그 식당에서 직원이 득의양양하게 주문을 받아 들고 내어놓은 음식은 메뉴는 정상적으로 숙주 볶음 요리로 들어갔으나 아쉽게도 '원(One)'을 제대로 경청하지 못한 듯싶었다. 2인분이 나왔으니. 원을 두 번 외쳐서 투(Two)로 이해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음식을 먹으면서도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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