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때문에 십 년을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어요

10년 전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by 추억바라기

대학 4학년 때 이모집에서 독립해 혼자 자취를 시작했다. 근사한 독립을 꿈꿀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지만, 고작 3평 남짓한 방에 구옥식 부엌이 전부였다. 그래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눈치를 보던 시절에서 벗어났음을 자축하며 한 동안은 그 독립에 취해 살았다. 늦으면 늦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주말이면 지금의 아내인 당시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도 편하게 즐길 수가 있었다.


가재도구라고 해봤자 1인용 이동 버너와 몇 개의 밥공기 그리고 냄비 하나가 전부였다. 갖춰진 주방은 아니었지만 내겐 그 집기면 충분했다. 게다가 동네 중고 가전 마트에서 마련한 5~6년이 넘은 냉장고가 있어서 이모가 해줬던 반찬이나 먹다 남은 찌개를 보관하기에도 넉넉했다. 나 혼자 살던 자취방 집기로 들어왔던 냉장고가 결혼하고도 그렇게 10년을 우리와 함께 살았다. 몇 년 정도만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던 녀석이 결혼 후에도 신혼살림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할 줄은 그땐 정말 몰랐었다.


결혼을 준비하던 시기에 우리에겐 결혼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정확히는 아내는 오랜 직장생활로 결혼을 위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아내와 반대로 짧은 직장 경력 탓에 내 주머니에는 저축해 놓은 돈이 전혀 없었다. 당연히 무모하다는 얘기들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아내와 빨리 결혼을 하고 싶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고, 아내도 그렇게 시작하는 것에 큰 이견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는 게 전부였고, 직장을 다닌 지 1년도 안됐던 터라 받을 수 있는 대출도 반지하 전세방을 구하는 것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다행히 아내가 모아놓은 돈을 전세를 구하는 자금으로 일부 보탰더니 둘이 들어갈 수 있는 반지하 전세방이 있었고, 그 덕분에 아내는 갖고 싶은 가전들이나 가구들을 많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영희야. 신혼 가구나 가전 사고 싶은 것들도 많을 텐데 전세자금으로 보태게 해서"

"아냐 오빠, 어차피 집도 작아서 더 넣을 때도 없어. 냉장고랑 장은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사줘"


그렇게 아내에게 냉장고를 사주겠다고 큰소리까지 치며 약속까지 했지만 살다 보니 그 작은 전세방을 우리가 생각했던 넓은 곳으로 탈출하기까지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내 자취방에서부터 함께 동거를 시작했던 내 작은 냉장고는 본의 아니게 우리 가족을 위해 11년을 일해야만 했다. 중고라고는 해도 처음에는 백색 겉표면에 윤기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깨끗했던 외형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누렇게 바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능 또한 현저히 떨어졌다.


누가 뭐래도 그 작은 냉장고는 우리 네 식구, 아니 정확히는 함께 살던 처남까지 다섯 식구의 식자재 창고로서의 역할을 11년은 톡톡히 한 셈이었다. 볼품없고, 조금은 촌스럽게 변했지만 그래도 담을 수 있는 용량이 적다는 것 말고는 불편함 없이 사용했었다.


결혼한 여자들의 선호 가전 중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냉장고이지 싶다. 아내는 주부들의 프라이드인 그 냉장고를 포기하고 11년을 살았던 셈이다. 그 사이 입버릇처럼 '바꿔야지'를 되뇌었지만 한, 두 푼 하는 가전도 아니었고, 막상 냉장고 구매를 욕심낼 때마다 집안 대소사와 매번 겹치는 통에 그 구매 욕구를 누르고 또 누르고 살아왔다. 아내에게 늘 미안했고, 늘 감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11년 만에 우린 오래된 다세대 살이에서 빌라로 이사를 하게 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사는 많이 다녔지만 큰 냉장고를 들이기에는 작은 집이었거나 조금 큰 집으로 이사 갔을 때에는 오래된 구옥이라는 핑계로 아내와의 약속을 마음으로 미뤄왔다. 사실 정확한 이유야 당연히 큰돈을 들이는 게 부담이 컸었기 때문이지만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새로 이사 간 집에서는 아내가 갖고 싶어 하는 양문형 냉장고를 들일 수 있는 주방 구조였고, 결혼하고 TV를 제외한 제대로 된 가전을 사지 않았던 나로서는 아내를 위해 양문형 냉장고를 너무 사주고 싶었다.


마침 다녔던 전 직장에서 밀렸던 급여도 들어오고 해서 아내를 위해 처음으로 큰돈을 썼던 것 같다. 두 배에 가까운 용량 때문인지 처음에 냉장고가 들어왔을 땐 아내는 너무 텅 빌 것 같은 냉장고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행복한 고민도 했었다. 난 그런 아내의 행복한 고민을 듣는 게 너무 좋았고, 한편으로는 진작에 이런 고민들을 할 수 있게 못했던 것 같아 미안했다.


조금 큰 집, 새 집으로 이사도 오고 해서 이사 선물로 동생이 김치 냉장고를 때마침 사줬고, 우리가 샀던 양문형 냉장고에 김치 냉장고까지 한 번에 생긴 우린 냉장고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김치는 냉장고의 작은 용량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을 처가에서 택배로 필요할 때마다 받아서 먹었다. 좁은 우리 냉장고가 보관할 만큼만의 김치를 택배로 받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집으로 이사한 그 해 겨울부터 우리에게는 음식뿐만 아니라 김치까지 저장을 할 수 있는 냉장고가 생겼다. 냉장고가 우리 집에 들어온 날은 늦은 봄에도 아삭하고 잘 익은 김치를 먹을 생각에 너무 좋았고, 너무 행복했다.


"철수 씨, 냉장고가 이렇게 커졌더니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어요. 이를 어째 소비가 늘겠는걸요"

"그까짓 소비 조금 늘면 어때요. 미안해요 영희 씨. 내가 냉장고를 너무 늦게 사줬네요"


살면서 기억이 두고두고 남는 물건들이 있다. 켜켜이 쌓인 해묵은 먼지 때같이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고, 너무도 아프고, 슬퍼서 잊히지 않는 상처처럼 잊으려고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는 그런 오랜 내 기억 속의 물건이 있다. 우리에겐 그 오래된 냉장고가 그런 기억이 남은 물건이다. 아내를 향한 내 마음을 고스란히 기억으로 담고 있는 그런 내 오래된 상처와 같은 물건이다. 나와 아내에게는 냉장고에 대한 마음이 진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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