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오해가 불러오는 사건들은 우리의 삶에 다양하게 나타나고, 다양한 방향으로 영향을 준다. 오해를 살만한 일들의 대부분은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는 일이 많다. 실제 오해로 인해 둘도 없는 사이에서 철천지 원수가 되기도 하고, 별로라고 생각했던 관계가 연인 사이나, 부부의 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끔은 이런 오해가 일으키는 파장으로 그냥 그런 평범한 직장인을 능력자의 반열에 올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한 번의 오해가 불러오는 실수 때문에 끝이 없는 불신으로 이어져 실수한 당사자의 이름이 마치 실수한 사건의 대명사인 것처럼 꼬리표가 되어 긴 시간을 괴롭히는 경우도 더러 생기고는 한다.
많은 오해들은 오해가 될만한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가 많다. 혼자 오해를 하는 경우보다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나, '에이 설마'하는 조금은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이 오해를 할 만한 상황이 만들어지거나, 오해가 될만한 사건들이 생기고는 한다. 이런 때에는 어김없이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오해의 떡밥을 덥석 무는 사람들을 여러 차례 봐왔다.
관심을 조금 갖고 있었던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거나,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미리 그려놓고 그런 상황들에 의미 부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부정도, 긍정도 아닌 애매한 답변을 흘리면서 등 떠밀기식 결정을 내릴 때면 십중팔구 관심 있는 사람에게 '추파(秋波)'를 던지거나, 없던 용기를 짜내어 적극적인 구애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오해에서 비롯되었고, 좋은 결과로 결실을 맺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누구세요', '아뇨' 등과 같이 여지가 남아있지 않은 거절을 당하기 십상이다. 잘못된 시도나 용기는 아니지만 부끄러움은 분위기를 돋운 지인이나 친구들 몫이 아닌 용기 낸 자신의 몫이 된다. 게다가 받았던 마음의 상처 또한 치유를 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게도 그런 오해를 살만한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다. 요즘은 워낙 오래되어서 아내가 더 이상 놀리지는 않지만 결혼하고 얼마 전까지 생각날 때마다 날 곧 잘 놀리곤 하던 얘기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대학을 다닐 때 일이다. 군대를 가기 전이라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놀기에 급급했던 시절이었다. 친구가 좋았고, 이성에도 관심이 많을 때였다. 참고로 난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남중, 남고를 다녔다. 그래서 대학에 가면 가장 하고 싶은 것들이 다들 생각하는 그 뻔한 것들이었다. 미팅, 소개팅 등등. 하지만 생각처럼 내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가끔씩 있는 미팅에서도 번번이 커플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집에 내려와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렇게 어울려 놀던 사이에 자연스럽게 어울린 여자 후배들이 있었다. 잘 알지도 못했지만 스물한두 살 시절에는 그 당시 술집이나, 락카페(클럽 같은 곳)에서는 합석이 자연스러운 문화였었다. 그곳에서 알게 된 후배 한 명을 난 자연스럽게 연락을 하며 지내게 됐고, 그렇게 알고 지낸 후배와는 두, 세 번 정도 만났었다. 후배와는 첫 번째 만남부터 생각해보면 조금은 재밌는 상황이었다.
"철수 선배 나한테 뭐 '오빠' 이런 호칭 기대하는 건 아니지?"
"하하, 꼭 그런 건 없지. 근데 내가 너희 학교 선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등학교 동문도 아닌데"
"그건 그렇지. 그럼 그냥 이름 부를게"
"........(하하, 그건 아니지 싶은데)"
당황했지만 설마 그냥 이름을 부를까 싶어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시간은 지났다. 하지만 그 후배는 워낙 시원시원한 성격이었고, 한 번 뱉었던 말은 꼭 지키는 그런 성미였던 듯 싶다. 후배는 설마라고 생각했던 내 이름을 불렀다. 딱 두 번 보고서는. 하지만 그 당시 난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불편하게 들리지도 않았다. 아마 그런 그 후배의 태도가 오히려 내게 관심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했었던 듯싶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런 후배의 태도가 내게 이성으로서의 관심보다는 고향이 아닌 타향에서 고향 친구 같은 편한 마음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줄었고, 생각했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더니 호기심이나, 관심마저 사라져 갔다.
꽤 시간이 지나 난 군대를 다녀왔고,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와 열심히 연애를 할 때였다. 길을 걸어가다 아내를 붙드는 소리에 돌아섰던 아내는 반갑게 한 친구와 인사하며 얘길 나눴고, 난 아내와 얘길 하는 친구가 누군지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군대 가기 전 내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그 후배였고, 후배는 아내와 같은 학교를 졸업한 동문이었다. 후배는 예전처럼 내게 손을 들어 인사했지만 난 어색하게도 목을 꺾으며 인사를 했다. 그날 이후 아내는 가끔씩 장난 삼아 내게 자신의 친구인 그 후배 얘길 꺼내곤 했다.
"오빠, 소리가 오빠 안부 묻던데? '철수'랑 잘 지내냐고 하면서"
아내 앞에서도 그 후배는 내 이름을 불렀다. 아내는 특별히 그 후배와의 일로 내게 물어보거나,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아마 후배의 성격상 나와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확신이 들어서일 듯싶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뭐 얘기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아내의 확신이 조금은 서운하게 느껴진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오해들이 중요한 결정과 생각의 정리에 혼선을 가져올 때가 많다.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날 때도 많지만 간혹 심각한 결과들을 가져오는 일도 적지 않다. 오해는 끊임없이 오해를 낳는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나 편견들이 오해의 씨앗이 될 수도 있으니 정확한 상황과 정황에 맞춰서 이해를 넓혀가는 것이 오해를 줄이는 방법임을 잊지 말고, 생각에도 신중을 기해야 함을 명심해야겠다.
가끔 금요일 오후에는 일을 하기 싫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난 종종 금요일 오후 개인 연차 휴가를 사용하고는 한다. 오늘도 개인 연차 휴가를 쓰고, 집에 일찍 퇴근해 행복한 오후 한때를 즐기고 있었다. 아내와 거실 소파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오늘도 딸아이의 눈높이 수학 선생님이 오셨다. 금요일 오후 5시면 매주 우리 집을 찾아 딸아이의 수학을 봐주시는 선생님이다. 아내는 평소와 같이 선생님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어머니 안녕하세요. 아버님도 계셨네요"
"아,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이 오시는 날마다 남편이 집에 있어서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저희 남편 집에서 노는 사람 아니에요"
"그럼요, 어머니 저도 알아요. 작가님이시잖아요"
하하, 아마 딸아이가 브런치 작가라고 했던 말을 선생님이 조금 오해하신 듯하다. 오늘도 누군가가 날 오해하는 작은 사건이 생겼다. 세상 사는 게 오해의 연속이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