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음식이 제시간에 오지 않아도 괜찮아

크리스마스 추억이 됐네요

by 추억바라기

항상 같은 시각, 같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길. 항상 출근은 앉아서 하는 터라 잠깐이라도 난 책을 보곤 한다. 그날도 같은 열차에 몸을 싣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평온한 일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방과 맞닿은 허벅지가 조금 축축해진 느낌이 들었고, 가방을 들어 확인하니 바지 허벅지 에 조금은 넓은 얼룩이 생겼다. 처음엔 바지가 젖은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고, 왜 젖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바지와 맞닿았던 가방을 만져봤다. 역시 가방도 조금 젖은 느낌이 들었고, 난 아내가 싸준 도시락에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아!!! 도시락 반찬 중 하나에서 국물이 샜구나.


아마 바지에 자욱을 남긴 반찬의 정체는 두부 간장절임의 간장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코로나로 인해 주변 승객들 모두가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이었다. 지하철을 내리자마자 도시락을 확인했고, 도시락 가방과 맞닿은 가방 안쪽에 티슈를 깔아서 급하게 수습 후 출근길 발걸음을 서둘렀다. 혹시나 가방의 젖은 부분이 재킷에 닿아 재킷에도 흔적을 남길까 봐 출근길에 가방을 들고 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난 2020년 12월 24일을 그렇게 시작했다.


난 아들 기말고사도 끝났고, 크리스마스 이브라 오늘 맛있는 음식으로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코로나로 바깥 외출은 힘든 상황이지만 크리스마스 홈 파티로 기분을 내자고 아내와 미리 얘기까지 했었다. 아내는 저녁에 먹을 음식을 만들기 위해 마음이 바빴고, 미리부터 만들 음식 준비를 위해 온라인으로 식재 주문을 마쳤다. 하지만 많은 배송물량으로 식재료 일부가 전날까지 오지 않았고, 아내는 아침부터 고민하는 눈치였다. 난 아내의 이런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할 해결책이라는 생각에 가끔 이용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 온라인 주문 배달이 가능한지 확인했다.


"혹시 오늘 두 시간 정도 전에 주문하면 시간 맞춰서 배달이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배달 앱으로 주문하지 마시고 직접 전화 주세요."

"네, 그럼 조금 있다가 전화해서 주문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패밀리 레스토랑과 직접 통화한 내용을 아내에게 전했고, 아내는 저녁에 음식 장만을 안 해도 된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기뻐했다. 가족끼리 축하할 일이 있을 때면 자주 찾던 곳이고, 아이들이나 아내도 무척 좋아하는 식당이라 더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저녁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오후를 보냈고, 주문을 약속했던 시간(오후 5시 30분)에 맞춰 난 전화를 걸었다.


"아, 오전에 확인했었는데 배달받기 두 시간 전에 전화 주문하면 배달이 가능하다고 해서요."

"네? 손님 잘 안 들리는데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7시 30분에 음식 배달받고 싶은데 지금 주문하면 된다고 해서요."

"네, 메뉴 말씀하세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손님맞이 준비로 바빠서인지 전화를 받은 직원은 전화 목소리에 집중하지 못했고, 주소도 몇 번을 얘기하고 나서야 제대로 받아 적은 듯싶었다. 하지만 오늘 같이 특별한 날에는 배달 주문이 폭주할 듯해서 통화 후 10분 뒤에 재차 확인 전화를 했다. 다행히 주문받은 쪽에서 주소를 잘못 적어놓은 상태여서 확인 전화를 하길 잘했다 싶었다. 난 7시 30분까지 '꼭' 배달해달라는 요청에 대한 답변을 재차 확인 후 안심하고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내내 '혹시'라는 걱정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퇴근 전까지 그 불안감은 내 머릿속을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퇴근길에 올라 잠시 그 불안감에 대한 생각을 잊었고, 서둘러 집으로 가는 길에 홈 파티 음식을 사 가지고 가느라 평소 퇴근시간보다 조금은 늦은 시각에 집으로 귀가하게 되었다. 시간상 이미 음식이 도착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집에 도착해보니 퇴근 무렵까지 들었던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약속했던 시간이 이미 10분이 지났지만 음식은 도착하지 않았고, 매장으로 전화를 해봐도 응답 없는 통화 수신음이 내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주문 음식만을 믿고 아내는 '까르보나라 떡볶이'와 '연어 초밥' 1인분씩만 준비했다. 갑작스러운 날벼락에 우리의 저녁 식탁은 조촐하게 차려졌다.


10여 차례 통화 시도 끝에 드디어 주문했던 식당과 전화가 연결되었고, 시간은 어느덧 8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전화 연결이 되었으니 자초지종을 확인하고, 사과와 함께 음식을 지금이라도 출발시키겠다는 말을 기대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전화를 받은 직원은 연신 '잠시만요'를 외치면서 통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전화를 피하고 싶어 하는 걸로 느껴졌다. 통화가 연결될 때까지만 해도 들었던 안도감은 이내 당혹스러움으로 바뀌었고, 아내가 들고 있던 전화기를 건네받은 난 직원을 향해 초조하게 기다렸던 내 마음과 전화를 피하려는 직원의 태도에 대한 분노를 목소리에 담아서 쏟아냈다.


"저기요, 혹시 주문이 누락되었다는 얘긴가요?"

"아, 잠시만요. 고객님......"

"저기요!!! 주문이 누락되었으면 사과하시고, 어떻게 해 줄 수 있는지를 말씀해 주셔야죠."

"아.... 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혼자 결정하기 어려우시면 책임자 바꿔주실래요. 주문하고 확인 전화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지금이라도 주문 넣어서 음식 배달해 주세요."

"고객님, 지금 음식을 만들어서 보내려면 라이더를 불러야 하는데 빨라야 50분에서 한 시간이나 되어야 라이더가 픽업이 가능합니다. 지금 음식 주문하면 한 시간 이상 걸릴 거예요."

"식당 측 과실이니 다른 주문보다 무조건 먼저 오더 해서 한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배달 보내주세요."


전화를 받는 직원의 태도와 식당의 적극적이지 못한 대응에 화가 나서 전화받은 직원분에게 평소와는 다른 흥분 상태로 큰소리를 냈고, 그렇게 주문한 음식은 1시간이 조금 넘어서야 도착했다. 음식은 맛있게 먹었지만 그 전화 통화로 우리 가족 홈파티는 무척 가라앉아 버렸다. 즐거워야 할 크리스마스에 우린 제시간에 배달되지 않은 음식 때문에 불쾌한 기분까지 들고 말았다. 하지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배달이 늦어진 일 때문에 난 우리 홈파티 분위기가 계속 가라앉아 있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오늘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이브였고, 내 불편함을 쏟아부어 상한 감정을 고스란히 들어야 했던 그 직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하루는 그들도 '행복하길 바랬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드니 쏟아냈던 내 감정이 부끄러워졌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바쁜 식당 풍경을 그려보니 주문 누락과 식당의 태도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아내는 음식이 늦게 온덕에 자주 먹지 않는 야식을 먹게 됐다고 오히려 특별한 날임을 상기시켰다. 더군다나 음식이 식지도 않고 따뜻하게 배달되고, 맛도 식당에서 먹을 때와 큰 차이가 없다고 좋아했다. 아침부터 도시락 반찬 국물이 흘러 바지를 버린 일 때문에 당황했던 일도, 저녁 배달 음식이 사소한 사고로 늦어져서 홈 파티가 늦어진 일도 생각해보니 내 기분을 망칠 만큼 큰 일도 아니었다. 2020년 한 해동안 있었던 어떤 문제들보다도 결코 심각하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됐다. 평소와 같이 흘러가는 그런 일상 중의 사소한 하루로 내게 그냥 들어왔다. 그냥 아주 조금 정도의 특별한 하루로.


모든 일이 웃어넘기고, 지나고 나면 화낼 일도, 심각한 상황도 아님을 알았다. 오늘은 바로 그런 날이니까. 오늘은 모두가 행복해야 할 12월 24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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