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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끔 아이들을 나무라고 싶은 충동이 인다

두 아이의 배려가 너무 예쁜 어느 날

by 추억바라기

"철수 씨, 지수 영어도 센터에 보내라는데 어떻게 하죠?"


다른 생각에 잠겨 있던 날 깨운 건 다급히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였다. 처음엔 다른 생각에 빠져있다 들었던 소리라 말의 뜻이 정확하게 해석이 안되었지만 이내 딸아이 교육문제임을 깨닫고는 바로 생각을 정리해 아내에게 얘기했다.


"지수 요즘 상태 보면 그게 가능하겠어요? 그리고 일주일에 세 번을 센터에 가고, 하루는 방문수업인데 시간도 여의치 않을 것 같은데"

"그렇죠? 저도 좀 무리이다 싶은데 방문 오시는 선생님이 자꾸 영어도 센터에 보내라고 하시니 조금 적응이 되면 다시 얘기하던가 아니면 겨울 방학 때부터 시작해요"


아내도 나와 크게 생각이 다르지 않은지 추가적인 의견이나 논쟁 없이 대화는 일단락됐다. 게다가 우린 최근 딸아이의 모습을 두고 안쓰러운 마음을 서로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요즘 안색이 안 좋은데 무슨 일이 있냐고 묻곤 한다는 딸아이의 농담스러운 말에 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요즘 딸아이는 저녁만 되면 내려오는 다크서클에 판다가 따로 없어 보인다. 다른 아이들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수업에 단련이 되어있는 것도 아니니 오죽할까 싶다. 열심히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하루에 몇 시간씩 책과 씨름해야 하니 얼마니 힘이 들까 생각하면 그냥 적당히 하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현재 아이의 상태를 고려해서 우린 아이와 충분히 상의해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아이의 영어 교육도 결정하기로 했다. 아이의 의견을 빼고 아내와의 대화에서는 겨울방학에 보내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졌다. 학기 중에는 늘어난 수학 수업 적응을 최우선으로 하고, 겨울방학 때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방학 때쯤 되면 어느 정도 체력도 올라오고, 현재 하고 있는 공부 시간에 충분히 적응이 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우리가 딸아이에게 얘기를 꺼내기 전에 딸아이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엄마, 나 영어도 센터 보내줘. 지금부터라도 다녀야겠어"

"괜찮겠어 딸? 요즘 너무 힘들잖아"

"괜찮아. 더 늦어지면 나만 손해일 거 같아. 다음 달부터 보내줘요. 다음 달부턴 오빠 학원비도 안 들어가잖아"


결국 아내와 난 딸아이의 결정에 못 이기는 척 아이의 뜻을 따라 주기로 했다. 하겠다는 녀석을 시키지 않는 건 우리의 평소 생각과도 맞지 않고, 딸아이가 무얼 해보겠다고 자신의 의견을 내비친 것도 기특해서 더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또,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의 학원비 지출이 많은 것을 딸아이는 잘 알고 있었기에 선 듯 먼저 우리에게 얘기하지 못했던 딸아이의 마음까지 알게 되자 더욱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딸아이가 의욕적인 모습으로 어떻게든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당장의 욕심에 열의를 쏟으며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지칠지도 모르겠지만 당장의 딸아이 마음이 예뻐 보이는 건 부모로서 당연한 마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작하는 마음을 끝까지 잃지 않고 끌고 나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고, 대단한 일인지는 하다 보면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할 수도 있고, 처음의 마음에서 많이 너그러워져 스스로의 결정임을 잊은 채 자신에게 너무도 관대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결정 또한 딸아이 자신의 몫이다. 결국 어떤 결과가 자신을 맞이할지는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것이니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딸아이 스스로가 깨달아야 하는 일이다.


우리 아이들은 두 녀석 모두 욕심만큼은 넘쳐난다. 자신이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 노력보다 더 큰 결과를 원하는 마음이 크다. 특히 딸아이가 조금 더 그런 성향이다. 하지만 두 아이 모두 그런 마음을 터무니없이 갖지는 않는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가 깨우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런 부족함을 채우고자 할 때는 신중하게 판단하고, 결정을 하곤 한다.


큰 아이의 경우만 해도 중학교 다닐 때까지 학원을 보내달라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지만(물론 드럼을 배울 때는 자신이 보내달라고 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영어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수학은 혼자 하기가 조금 버거우니 도움을 받아야겠다'와 같은 말로 학원을 보내달라는 얘기를 시작했다.

'아빠, 영어는 제가 혼자 하기 어렵고, 많은 시간을 들이기에는 좀 아까워요. 그런데 성적은 지금만큼은 유지해야 할 것 같으니 학원을 보내주세요'

'수학 인강 들으며 한 학기 해봤는데 모르는 걸 물어볼 사람도 없고, 지금보다는 높은 성적을 내야 할 거 같아요'


이렇게 시작한 사교육에 아들은 진심으로 책임감을 느꼈다. 고맙게도 이렇게 자신이 시켜달라고 시작한 것들에 대해서는 절대 무책임하게 대충 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드는 학원비나 교재비 사용에 망설이지는 않지만 이렇게 시작했던 일이면 아까워하고, 그래서 더 책임을 느껴왔다. 딸아이도 이런 성향은 큰 아이와 비슷해 보인다. 다만 아직까지는 처음 시작하는 마음에 대해 신중함이나, 계획성 등은 부족해 보이지만 차츰 성장하면서 아이의 그런 마음 또한 성장할 것이다.


난 가끔 아이들을 불러다가 나무라고 싶은 충동이 인다. 아이들이 자신들 앞으로 들어가는 학원비 등으로 습관처럼 가계를 배려한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마치 아이들에게 내가 더 좋은 기회를 줄 수 있는데 알아서 날개를 펼 기회를 뺏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럴 때마다 나를 배려하는 것 같은 두 아이 마음에 아이들에게 '너희들 하고 싶은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아빠가 너희 둘 지원 못하겠니' 하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함을 잘 알기에 두 아이의 마음이 더 예쁘고, 곱게 느껴진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 학교 수업만으로 수능 만점을 받거나, 일찍부터 자신의 길을 잘 선택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신만의 위치에서 자수성가한 젊은 사업가 그리고 자신만의 재능을 잘 개발해 일찌감치 사회 전선에서 프로로서의 멋진 모습으로 20, 30대를 잘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마음을 넘어 경외감까지 든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런 대단한 청춘들과 같이 성장하지는 않지만 다들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하루하루 때로는 열심히 때때로는 아주 더디게라도 성장을 하고 있다.


난 우리 아이들도 가끔은 더디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성장하고 있음을 감사한다. 그것도 아주 예쁜 마음으로 자신이 시작한 일에 대한 책임감은 지금처럼 잊지 않고, 아빠에 대한 배려는 조금은 내려놓고, 욕심은 적당히 부리면서 말이다. 난 오늘도 우리 아이들 커가는 모습에 다 큰 어른인 나도 따라 성장하는 것 같은 생각이 종종 든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너무너무 잘 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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