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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an 22. 2020

나 때문에 죽은 건 아니죠?

갑질 해서 미안하다는 건가요?

"김철수 씨, 혹시 지난주 지원했었던 그 친구 지금 진행하는 우리 사업 때문에 죽은 건 아니죠? 그렇?"




10년도 지난 이야기다.  팀장을 맡고 나서 나의 대부분의 업무는 세일즈 지원이었고, 구축은 대부분 팀원들이 책임자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당시 사업 책임을 맡아야 할 과, 차장급들이 모두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고, A기관은 제품 소개부터 데모까지 모두 내가 진행하기도 했었고, A기관 담당부서 팀장의  요청까지 있어서 직접 사업 총괄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제안한 솔루션의 특성상 A기관 직원들이 사용하는 전체 컴퓨터가 대상이었던 터라 프로젝트 규모가 만만치가 않았고, 기존 인프라와의 연계 사업이라 사업처인 A기관의 요구사항을 적절하게 반영하면서 진행하여야 해서 사업 초기부터 업무상 협의는 빈번하게 일어났고, 커뮤니케이션이 어느 정도는 되어야 사업이 수월하게 진행되는  구조였다.

 

  처음 영업 지원 단계부터 A기관 담당 팀장과 대화를 해왔었던 터라 합이 맞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처음에는 삐걱거림 없이 사업이 진행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간과했던 문제가 가까이서 불거졌고, 사업을 수월하게 진행해 오던 나는 당황스러움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이 사업 담당 간의 불화(?)가 가장 큰 문제였,  골칫거리였던 거다. A기관 부서 팀장과 실제 이 일을 수행하는 담당자 생각의 차가 너무 컸고, 가장 큰 문제는 사업 주관처 책임자인 팀장보다 업무를 수행하는 담당자가 훨씬 나이가 많은 게 가장 큰 문제라면 문제였다.  팀장은 경력직으로 젊은 나이에 팀장 직책을 맡아 조금은 깨어있고, 합리적인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사였다. 반면에 담당자는 기관의 가장 아래 급수부터 시작하여 해당 부서에서 제법 잔뼈가 굵어 있었고, 합리적인 것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앞뒤가 꽉 막힌 인사였다.  

  갑자기 나이도 어린 팀장이 부서의 책임으로 온 것만 해도 맘에 들지 않는데, 업무 수행 절차나 의사결정 시에 비교적 많은 부분 자신과는 다른 의견을 지시하는 것이 늘 맘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조심스럽지만 내 생각으로는 '자격지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난 눈치도 없이 이런 관계 사이에서 줄타기도 아닌, 대놓고 A기관 팀장과 주로 업무를 협의하였다. 정말 눈치도 없이. 개인적인 생각이었겠지만 업무 협의 시에 기관 팀장과 대화도 편했고, 사업 주관처 책임자인 분이라 의사결정도 바로바로 해 줄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성공적 사업 완료에 적임자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일방적 업무 처리에 대한 난항은 생각보다 빨리 사업에 영향을 끼쳤고, A 기관 팀장과의 업무협의 결과를 담당자에게 보고하는 과정이 오히려 A기관 팀장의 의견을 담당자에게 전달하는 모양새로 비치면서 문제가 되었다. 담당자는 본인의 팀장과 가까이 지내고, 본인 팀장의 부하 직원인양 본인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것 같이 생각하는 듯했다.

 

 그 이후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괴롭히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함께 사업 구축에 들어갔던 우리 팀원들 앞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지를 않나, 사업을 진행하면서 생기는 사소한 이슈나 문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민감하게 굴기도 했으며, 작은 이슈들을 꼬투리 잡고는 해당 이슈들을 협의하는 과정에서도 사업 총괄인 나를 대놓고 배제하고, 무리한 요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한 마디로 사업 주관처에서 할 수 있는 '갑질'을 한 것이다.

 이런 피해는 단순히 나 개인에게만 온 것이 아니고, 사업에 참여하여 투입된 인력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업무용 컴퓨터에 설치, 운영되는 솔루션이다 보니 구축 초기에는 많은 인원들이 '레디(ready)' 상태였고, 심할 때는 층별로 인원을 배치하여 프로젝트 룸으로 연락이 오면 해당 층에 대기하던 엔지니어가 클레임이 온 부서로 출동하여 업무용 컴퓨터를 AS 해주는 식의 업무 처리가 진행되었다.

 

 많은 사업들이 그러하겠지만 유독 해당 사업은 사업처 담당자 사이의 관계를 모르고 프로젝트를 수행한 나의 책임이 컸었고, 프로젝트 중반까지 해당 사업에 투입된 인력들 대부분은 담당자의 꼬장꼬장하고 까탈스러운 성격 탓에 업무 외적으로도 많이 힘들어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사업을 지원했었던 개발자 한 명이 개인 사정으로 '자살'이라는 불미스러운 선택을 했고, 이 사건으로 회사는 꽤나 많이 혼란스러웠었다.

 자살한 A라는 친구는 사업 지원을 위해 며칠 파견을 나왔었던 동료였고, 지원 중에 생겼던 일이라 많은 친분이 있지는 않았지만 어린 친구의 잘못된 선택에 나도 마음 아파했었다. 개발자의 장례절차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 잘 상대도 안 하던 A기관 담당자가 나를 잠깐 보자고 호출을 했다. 조금 의아했지만 심각한 목소리로 불러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난 그를 쫓아 나갔다.


  창문 너머로 시선을 두고 한 숨을 쉬던 그가 쭈볏쭈볏 말문을 열었다.

  "김철수 씨, 지난주에 회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으로 들었는데요. 그 친구 맞죠?"  속으로는 지난주 자살한 회사 동료를 이야기하는구나 생각은 들었지만,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가 궁금해서 못 알아듣는 척 연기를 해봤다.

  "무슨 말이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어떤 불미스러운 이야기를 얘기하시는지요." 그는 조금 더 불안한 눈빛과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되물었다.

  "지난주에 회사 직원 한 명이 자살했다고 들었어요. 지난주 지원했었던 그 친구 맞죠?"

  "어떻게 아셨어요? 네, 지난주 본관 3~4층 지원했었던 그 친구가 맞습니다."  그 순간 흔들리는 그의 눈빛과 조급해서 떠는 그의 입을 보면서 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김철수 씨, 혹시 그 친구 지금 진행하는 우리 사업 때문에 죽은 건 아니죠? 그렇죠?"  당연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조금 화가 났었고, 자살한 A가 지난주 지원 왔을 때  그를 세워두고 짜증 내던 그의 모습이 생각나 한 마디 하려고 '미안은 한가 보네요'라는 말이 턱 밑까지 올라왔었다. 하지만 죽은 A를 두고 화풀이를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양반이 무척이나 걱정하는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기도 해 그 말만은 말았다.

   "자세한 상황까지는 모르겠지만 가족 간에 문제로 아마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 같아요. 지금 이 사업하고는 상관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니 젊은 친구가 그만한 일로 그런 선택을 하고 그래. 안됐네요. 에휴~"  말은 죽은 A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도였지만, 내가 봐서는 자신의 탓이 아님을 안도하는 한숨 같았다.


  그 일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크게 꼬투리를 잡을 게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담당자와의 마찰은 없어졌고, 예전같이 민감하게 굴거나, 직원들에게 까탈스럽게 트집 잡는 일은 없어졌다.

  돌이켜보면 마음 아픈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한 행동이나 말들로 다른 사람들이 상처 받거나 , 피해를 입었을 때 자신을 반성하고, 후회하는 게 일반적이다. 자신이 할 말과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뱉기 전', '실행하기 전'에 하면 상처 받거나, 피해를 입을 일이 많이 줄텐데 항상 그런 판단은 하고 난 뒤 결과에 따라서 시시비비를 논하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세상일이 다 내 맘대로 안 되는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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