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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an 17. 2020

아쉽게도 노력은 딱 그 만큼만 배신하지 않는다?

계산 착오가 부른 나의 마라톤 첫 도전기

 "하, 아휴~. 정말 힘들어 죽겠네. 하프 뛰려고 그렇게 연습해도 힘든 건 마찬가지네요."

 "철수 씨, 하프마라톤 완주한 거 축하해. 다음번엔 춘천 마라톤 풀코스 도전하자고."

  "하하, 그건 좀..."




첫 번째 직장에 근무하던 5년이 나의 사회생활 20년 중 가장 많은 운동을 했었던 것 같다. 그도 당연했던 것이 가장 혈기왕성한 20,30대 초반까지 직장생활을 했을 때라 더욱 체력에 자신이 있었다.  첫 직장을 다니면서 빠른 적응을 위해 선배들과 빨리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같은 팀 선배들이야 함께 매일 일 해야 하니 싫든 좋든 보낼 시간도 많고, 밥도 함께 먹으니 당연히 없던 친분은 자연스레 쌓일 테고, 거기에다 가끔씩 함께 하는 한 잔이 있으니 시간이 걸릴 뿐 자연스레 해결되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다른 팀 선배들과는 함께 할 자리도 적었고, 그나마 가끔 함께하는 식사자리가 생겨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이다 보니 지나다니며 인사를 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내가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동호회 활동을 통해 함께 땀 흘리고, 사적인 모임을 갖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거라는 기대가 생겼고, 특히 농구를 좋아했었는데 농구 동호회 활동에 다른 팀 선배들도 많이 참석한다는 걸 알고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농구 동호회 활동을 했었다. 이렇게 함께 땀 흘리고, 가끔씩 운동하고 먹는 맥주 한 잔 하는 시간이 늘면서 회사에 적응도 수월하게 되었고, 나이차가 좀 있었던 선배들과도 관계가 좋아지게 되었다.


 운동을 하고 난 어느 날 선배 한 분이 한 달 뒤에 있는 마라톤 대회에 함께 참여하기를 권했고, 마침 회사 동호회 중 한 곳에서 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기로 결정을 했다. 난 조금 걱정되었지만 매주 농구하던 체력도 있고 해서 기꺼이(?) 마라톤 대회에 참여 신청을 했고, 종목은 10Km로 결정하고는 별 준비 없이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흘러 마라톤 당일 난 나의 체력을 신뢰하며 10Km 출발선에 섰고, 출발 신호와 함께 가볍게 뛰어 나갔다. 하지만 나의 이 자신감은 얼마 달리지 않아 없어졌고, 완주가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겨우 5Km를 뛰고는 내 다리의 속도는 2배로 느려졌고, 나의 자신감은 백기를 들고 투항을 선언했다. 마지막 3Km 정도는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웃기는 모양새로 마지막 골인점을 들어왔고, 기록 또한 1시간이 넘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준비 과정 없이 체력만 믿고 뛴 결과였고,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이대로 내 체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경기로 그냥 마무리되는 게 싫었고, 회사 내에 저질 체력으로 낙인찍히기도 싫었고, 회사의 젊은 피였던 내가 나름 선전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선배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난 다음 마라톤 대회에 참가를 결정했고, 최종 신청 시에는 기존 목표보다 상향 조정하여 하프 코스(21Km)에 참가를 신청했다. 선배들은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도 했고, 뛰다가 죽는 거 아니냐고 놀리기도 했지만 난 여기서 꺾이기엔 내게 남은 회사생활의 꼬리표에 '저질 체력'이라는 단어는 떼어내야겠다는 일념으로 마라톤을 준비했다.

 

 마라톤 대회를 5주 남겨놓고 난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갔고, 일주일에 3~4회씩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10~15바퀴로 시작해서, 출전 2주 전에는 쉬지 않고 50바퀴씩 뛰고도 체력에 여유가 있음을 알고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다. 정말 이게 뭐라고 그리도 달렸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갔지만 그때는 곧 전국체전이라도 나갈 듯 훈련에 최선을 다했었다.

 결국 마라톤 당일, 조금은 긴장되었지만 난 연습한 만큼 자신이 있었다. 출발 신호와 함께 난 적당히 페이스 조절을 하며 뛰어나가기 시작했고, 10Km 반환점을 돌고서도 체력 저하가 별로 없는 것에 흡족했다. 기록도 40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속도도 만족스러워서 이대로 뛰어나가면 1시간 20분이 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아주 장밋빛 결승점을 잠깐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15Km를 넘는 지점에서 조금씩 체력의 붙임을 느꼈고, 결국 18Km를 넘어서서 현저히 속도가 떨어지며 10Km 때와 비슷한 뛰지도, 걷지도 앉는 자세로 마지막을 뛰어 들어왔다. 숨이 턱 밑까지 왔을 때 순간적으로 나의 패착에 대해 잠깐 든 생각이 있었고, 난 어이가 없어서 멈춰서 웃을 뻔했다. 결국 훈련에 대한 효과는 그대로 나타났지만, 나의 판단 착오 때문에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트랙의 길이는 일반 경기장과 같은 400m, 하지만 초등학교 운동장 트랙은 크게 돌면 200 m 정도였던 것이다. 즉, 400m 트랙을 50바퀴 돌면 약 20Km 정도라는 생각에 난 꾸준히 학교 운동장 연습 바퀴수를 늘려갔고, 마지막 2주에는 내가 목표했던 50바퀴를 쉬지 않고 돌면서 20Km를 예측했던 것이다. 사실 따지고 들면 10Km를 뛴 것에 불과한데 말이다. 결국은 내 몸은 연습한 만큼의  결과를 보여줬을 뿐이다.    

     

     '실제 표준 육상 경기장 트랙 길이는 400m, 400m x 50바퀴 = 20Km'

     '초등학교 운동장 트랙 길이는 200m, 200m x 50바퀴 = 10Km'


 계산 착오였다. 거기에다 운동장 트랙은 평지이지만, 마라톤 코스는 오르막, 내리막 경사가 종종 나오는 복합적인 코스여서 발은 더 피로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 결과는 1시간 40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최종 결승점까지 걷지 않고, 완주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완주 후 선배들과 잔디에 앉아서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했고,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록과 완주 탓에 선배들과 동료들은 지난번 놀리던 목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다만 당황스러운 제안으로 날 놀라게 했을 뿐.


 "하, 아휴~. 정말 힘들어 죽겠네. 하프 뛰려고 그렇게 연습해도 힘든 건 마찬가지네요."

 "철수 씨, 하프마라톤 완주한 거 축하해. 연습 좀 했나 봐. 다음번엔 춘천 마라톤 풀코스 도전하자고."

 "하하, 그건 좀...(운동장을 도대체 몇 바퀴를 돌아야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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