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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ol K Sep 27. 2018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의 단상

걷는다는 것

인간의 DNA 속에 오랜 시간 녹아져 있는 생존본능. 

인간은 골반뼈가 발달하고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뇌 용량이 커지고 손이 발달하게 되었다. 특히, 손이 자유로와지면서 인간이 다른 유인원에 비해 탁월한 진화를 하게 되었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면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생존을 위해 내딛는 걸음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의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걸음을 걷게 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연유로 배낭여행이나 도보여행을 떠나고, 또는 극한의 여정을 감수한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저마다의 길로 안내하는 것일까? 추측 건데 그 이유는 매우 다양할 것이다. 삶의 공허함을 채울 무언가를 여행을 통해 얻기를 희망하거나 단순히 힘든 세상을 등지고 싶어서, 아니면 잠시나마 흔한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즐기고 싶어서 일수도 있고 또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나서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가 4,300km라는 머나먼 여정을 선택한 이유도 단순했다. 단순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만큼은 특별하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걷고 싶었했던 길이었고, 또 그러길 바라던 꿈이었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 

꿈에 그리던 4,300km의 긴 여정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 즐거움만 가득할 것 같은 그 길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이상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현실을 맞닥뜨리는 것은 늘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보이지 않는 사소한 걱정거리까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고, 그 과정이 사실 로맨틱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엔 접해보지 못한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사막을 걸을 때는 미쳐 알 수 없었던 환경의 텃세에 몸과 정신이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PCT의 사막 구간은 대부분의 하이커가 PCT에 적응하기도 전에 뜨거운 태양과 부족한 물로 사투를 벌여야 하는 어렵고 힘든 지역고, 날씨가 더운 만큼 땀을 많이 흘려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평소보다 많게는 5배의 물을 필요로 했고, 그 때문에 특정 구간에서는 6-7리터의 물을 한꺼번에 짊어지고 걷기도 했다. 처음 접해본 트레일의 환경에 적응도 하기 전, 전부터 가져온 자만과 욕심 때문에 고욕을 치러야만 했다. 길진 않지만 440km의 나름 장거리 트레일인 스웨덴의 '쿵스레덴'도 보급 없이 종주했었고 다른 여러 나라의 짧고 긴 트레일을 많이 경험해본 터라, 사전 계획된 일정을 소화해내기 위해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처음부터 무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예상보다 많이 짊어진 물의 무게가 고스란히 무릎으로 전해져 트레일 초반부터 무릎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다른 부위에 힘을 쓴다는 게 발목으로 통증이 이어져 결국은 트레일을 중단하고 마을로 돌아가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길을 잘 못 들어 꼬박 한 시간을 되돌아가기도 했고, 식량을 얻기 위해 왕복 20km를 걸어갔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되돌아왔던 일도 있었다. 보급품이 일정이 맞지 않아 무작정 기다리기도 했고, 건조 식량과 초코바나 육포 몇 조각으로 끼니를 때워야만 했다. 수일째 비를 맞으며 젖은 신발로 걷다 젖은 채로 젖은 텐트에서 잠을 잤고,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악몽 같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기도 했다. 

 

비록 순간은 즐겁지도, 유쾌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모든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했다. 지치고 목마르고 추위에 떨고 하면서도,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했다는 게 미친 소리 같기도 하겠지만 실제 그랬다. PCT는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우정

나는 혼자서 이 길을 나섰다. 이전에 동행과 함께 트레일을 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혼자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황량한 멕시코 국경 뜨거운 태양 아래 홀로 쓸쓸히 걷기 시작했지만, 남은 거리가 점점 줄어들수록 내 주변에는 많은 하이커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그들과 함께 외롭지 않은 길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외모가 비슷한 토니와 스케치라는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한 달간 길을 걸었고, K-POP을 좋아하는 순수한 눈망울의 케이티라는 미국 여자애와도 길을 걸었다. 트레일의 중반을 접어든 무렵에는 마음이 맞는 푸른 눈의 친구들과 함께 'HBG'라는 크루를 만들어 마지막까지 걸었다. 혼자 시작한 여정의 마지막은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걸었던 15년도가 한국인 하이커들이 처음 PCT를 종주한 해이기도 하고, 그 수가 나를 포함해 4명밖에 되지 않았기에 트레일에서는 한국인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오레곤 구간이 끝나는 캐스캐이드 락에서 열리는 'PCT DAYS'에서야 나보다 먼저 출발한 희종과 희남 군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다른 말을 사용하고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외국인들과 함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정서는 달랐어도, 하이커로써 만난 푸른 눈의 친구들과도 다른 차원의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매끼를 함께 먹고 같은 곳에서 잠을 자는, 우리는 점점 '식구'가 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내가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동행이 있었다면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야만 했을 것이고, 둘 사이에 다른 누군가가 끼어드는 것조차 서로의 의견을 물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 걷는 것과 함께 걷는 것, 어느 게 옳다고 감히 말할 순 없다. 다만 어느 선택이든 함께 고생한 만큼 서로의 우정은 깊어질 것이다. 과정이 다르고, 비록 순탄하지만은 않을지라도 말이다. 

 

 

내리사랑  

PCT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목소리로 칭찬하는 것이 바로 트레일 엔젤, 또는 트레일 매직의 고마움이다. 트레일 엔젤은 하이커들을 위해 자신의 집을 개방해 숙식을 제공해주시는 사람들을 말하고, 트레일 매직은 하이커들을 위해 트레일 중간중간에 먹을 음식이나 음료 등을 두거나 직접 해주는 것을 말한다. 트레일 엔젱의 경우, 숙식에 드는 비용을 받지는 않지만 보통 이용하는 하이커들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낸다. 거지꼴의 하이커들에게 자기 집 안방 화장실까지 내어주는 트레일 엔젤을 경험해보고 나면,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참으로 궁금해진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 행하는 헌신이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만약 누군가 시켜서, 일의 일환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표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내가 경험한 트레일 엔젤분들의 얼굴 표정과 모습은, 말 그대로의 천사였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인 이주영 선배님과 상기형에게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미국에서 소개로 만나 트레일 준비할 때 몇 번 인사했던 것이 다였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트레일 초반 발목 부상으로 트레일에서 벗어나 잠깐 쉬어야 했을 때 트레일까지 와 나를 픽업해서 본인의 집에서 일주일을 쉬게 해주었다. 당신의 시간을 쪼개어 한의원에 데려다주고, 식사까지 베풀어 주셨다. PCT를 통해 이주영 선배님과 상기형, 그리고 형수님은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그들과 난 아무런 인연도 없었다. 그저 당신들이 산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같은 산을 내가 좋아한다는 것 만으로 내게 친절을 베풀어 준 것이다. 한 번은 내가 받은 친절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분들이 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있다. 

 

"네가 받은 친절을 나한테 다시 되갚으려면 그 값을 정하기도 어렵고 이치에 맞지도 않다. 네가 되갚아 주길 원해 한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느끼는 고마움을 나중에 너와 같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베풀어라. 대가를 바라지 말고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조금 더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이 길에는 특별한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세상에 수많은 트레일이 있고, 아직 안 가본 곳이 많지만, 이 길은 길을 걸을수록 그 안에서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한국의 정과 비슷한 무언가 애틋하고 끈끈한 것. 시간이 지나고 걸은 길의 거리가 늘어갈수록 그것에 빠져들었다. 

 

 

오랜 시간 꿈꿔왔던 길에서 난 무엇을 느꼈을까?

애초에 퇴사를 하지 않고는 떠날 수 없던 길이었기에, 7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났다. 처음에는 마냥 좋아 다 내려놓고 그 순간을 즐기려 했으나, 이 여정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갔을 때의 걱정과 두려움 때문인지 이 길을 통해 무언가를 자꾸만 얻으려 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극한의 도보여행이라는 타이틀 아래 스스로를 높이고 주목받고 싶은 욕심에, 있는 그대로를 즐기기보다 무언가를 자꾸 찾아내려 애를 썼던 것이다. 그 결과 몸은 물론 마음까지 망신창이가 되었고, 순수한 목적의 여행은 오염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부상 치료차 들린 지인의 집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었고 그간의 욕심을 다 내려놓음으로써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씩 가벼워질 수 있었다. 일주일의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간 트레일의 첫날밤, 텐트 밖으로 머리만 내어놓고 밤하늘을 수놓은 별을 올려다보며 이런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내 안에 담을 수 있는 여유와 이를 허락해 준 자연에 감사했다. 그동안 같은 길 위에 있었지만 허영을 쫒으며 놓쳤던 것들, 순수한 아름다움과 자유 그리고 나 자신.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하나둘씩 느낄 수 있는 게 눈에도 보였다.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처럼.

 

내가 4,300km에 이르는 이 길의 마지막에서 느꼈던 것은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이 길을 걸으며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지난날 그저 당연하다 생각하고 잊고 지냈었던 작은 일상의 소중함이었다. 이전에는 항상 당연함 속에 묻혀 잊힌 일상의 소중함 대신, 다른 자극에서 오는 짜릿함을 쫓기만을 원했던 것 같았다. 그러다 그 다른 자극이 되려 일상이 되어버린 순간, 그제야 잊고 지냈던 그 작은 일상들이 참 소중한 행복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벗어나려고만 했던 무료한 일상들을 오히려 갈망하게 되는 경험을 통해, 행복이라는 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작은 것 하나에서 소중함을 느끼고, 지금 이 순간 만족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오롯이 나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들.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나에 대해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이 길을 걸으며 느끼고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했던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이 길을 통해 가질 수 있었고, 5개월이라는 여정 속에서 보냈던 나와의 시간은 나를 더욱 값지게 만들어 주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어떤 여행을 떠나거나 긴 길을 걷더라도, 단순히 그 여정을 통해 무언가 나에게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는 안 하는 것이 좋다. 다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깨달음은 얻을 수 있고, 그 깨달음을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 없이 무언가 변화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단순한 이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생에 한 번쯤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꼭 무언가 변화되거나 얻을 수 없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홀로 걸으며 나를 알게 되는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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