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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즉문즉설] 5. 떠난 이를 보내는 법

상실을 견디는 마음

by 이안

질문) “몇 해 전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냈습니다.
그때부터 제 안의 시간은 멈춰버린 것 같습니다.
사진을 보면 아직도 눈물이 나고,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이 너무 낯섭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그리움이 깊어집니다.
그 사람을 잊지 못하는 건 잘못일까요?
어떻게 해야 이 상실의 마음을 견딜 수 있을까요?”


대답) 그리움은 죄가 아닙니다.
그건 사랑이 남긴 향기이자,
마음이 아직 사랑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집착으로 바뀌면,
그리움은 고통이 되고, 상실은 감옥이 됩니다.


불교에서는 ‘상실’을 ‘변화의 완성’으로 봅니다.
《법구경》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사라짐을 슬퍼하지 말라.
그것은 모든 것이 다다를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떠난 이를 잃은 것이 아니라,
인연이 다한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 인연이 내 곁에 머물던 시간이 끝났을 뿐,
그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질문) “그래도 너무 보고 싶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저립니다.”


그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리움 속에서 한 가지를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가,
아니면 그 사람이 있었던 ‘나의 시간’을 붙잡고 있는가?”


상실의 고통은 ‘사람’을 잃은 데서 오지 않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살던 나의 한 시절을 잃은 데서 옵니다.
즉, ‘그때의 나’를 잃은 슬픔이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常)의 진리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그 변함 속에서 우리는 다시 태어납니다.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 “세상의 모든 것은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


이 말은 허무가 아니라 위로입니다.
그림자는 사라지지만,
그 빛이 남아 있음을 아는 사람만이
눈물 속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상실을 다섯 단계로 설명합니다.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많은 이들이 마지막 단계인 ‘수용’에 이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잊는 것이 배신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하지만 불교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사랑은 붙잡을 때가 아니라, 놓을 때 완성된다.”
놓는다는 건 잊는 게 아니라,
그 존재가 내 안에 살아 있음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 사람의 존재는 몸으로 떠났지만,
그 인연의 흔적은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걸 ‘잊음’이 아니라 ‘내면화’라고 합니다.


질문) “그럼 어떻게 해야 그를 평화롭게 보낼 수 있을까요?”


첫째, 그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세요.
하루에 한 번, 조용히 앉아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세요.
‘고맙다, 함께해 줘서.’
그 짧은 한마디가 슬픔을 감사로 바꿉니다.


《유마경》에서는 말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그대의 고통을 등불로 바꾼다.”


둘째, 그 사람의 삶을 이어 사세요.
그가 사랑했던 일, 그가 웃던 순간,
그 마음을 오늘의 당신 삶 속에 다시 심으세요.


그 사람이 좋아하던 꽃을 한 송이 놓고,
그 향기를 맡으며 이렇게 말하세요.
“당신의 삶은 아직 내 안에 있습니다.”

그게 진정한 추모이자 수행입니다.


셋째,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관(觀)하세요.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돌아감입니다.


《대반열반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은 머물다 가고, 다시 돌아온다.
그러므로 슬퍼하되, 붙잡지 말라.”


그 사람은 당신의 기억 속에서 부처의 빛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빛을 바라볼 줄 알면,
상실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닙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움의 모양은 바뀔 수 있습니다.


처음엔 눈물이지만,
나중엔 기도가 되고,
그 다음엔 고요한 사랑이 됩니다.


《법구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자,
그는 이미 평화를 얻은 자다.”


그 사람을 잊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떠난 이를 보내는 법입니다.


이제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해 보세요.

“나는 그대를 잃은 것이 아니라,
그대가 내 안에 남긴 빛으로 살아간다.
내 마음이 그대를 품고,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 다짐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 사람은 비로소 떠나가면서도
당신 안에 머무릅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한 말씀을 전합니다.

“汝等比丘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여등비구 지아설법 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황비법.
“내가 설한 법조차 강을 건너는 뗏목과 같으니,
법조차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들이랴.”


떠난 이를 향한 집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뗏목을 내려놓는 순간,
당신은 강을 건너 새로운 강가에 서게 됩니다.
그곳에서 다시, 사랑은 다른 형태로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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